ChatGPT를 교실에서 금지하지 않아야 하는 마지막 이유는 그것이 학생들이 그것을 통해 그들이 살아갈 미래를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아날로그 세대로서 부모들은 <데미안>을 읽고 몇일을 고민해서 독후감을 쓰거나, 잘 풀리지 않은 수학 문제를 마주하고 고민하는 대신에 기계에게 그것을 해달라고 요청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편치 않을 수 있다.

그리고 ChatGPT에 거의 즉각적으로 반대를 하는 교사들이 비이성적인 것도 아니다. 교사들에게 학생들의 학습은 네트워크 어디인가에 연결되어 있는 컴퓨터 속이 아니라, 사람의 두뇌 안에서 일어나는 것이어야 한다. 지금까지 교실에서 이루어져 왔던 일과, 오랜 관행들을 순식간에 무력화시키는 인공지능은 파괴적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판도라의 상자는 열렸다. ChatGPT와 같은 도구는 쏟아져 나오고 있고, 그것이 사라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들은 이제 우리가 매순간 의존하고 상호작용하는 관계의 대상으로 확고히 자리잡았고, 인간이 나태한 순간에도 그들은 발전하고 개선되고 있다.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와튼 스쿨의 에단 몰릭Ethan Mollick 교수는 “(ChatGPT와 같은) 대규모 언어 모델은 향후 몇 년 동안 기능이 저하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러한 도구를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도구에 적응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라고 말한다.

사실 그것이 교실에서 ChatGPT를 금지하지 않아야 하는 가장 큰 이유이다. 오늘날의 학생들은 졸업 후에 모든 것을 알고, 무엇이든 만들 수 있는 인공지능이 가득 찬 세상으로 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인공지능과 함께 작업하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러한 도구들의 기능과 위험, 강점과 약점을 알아야 한다.

미래 사회의 훌륭한 구성원이 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유형의 AI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어떤 유형의 편향을 포함하고 있는지, 어떻게 오용되고 무기화될 수 있는지를 이해하는 실제 경험이 필요하다. ChatGPT는 앞으로 아이들이 만나게 될 인공지능의 원형으로 그것을 통해 미래를 체험하게 해줄 것이다.

인류가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했던 무서운 속도의 기술적 발전에 적응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인간의 인식은 늘 변화의 뒤에 온다. 경제학자 루디거 돈 부시는 “여러 현상이 일어나는데 걸리는 시간은 예상보다 훨씬 길 수 있지만, 막상 어떠한 현상이 일어나면 예상보다 더 빠르게 진행된다.”고 변화에 적응하기 어려운 현실을 설명했다.

어쩌면 ChatGPT는 이미 눈앞에 닥친 거대한 변화를 미리 경험할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 10년 전부터 보편적 인공지능 교육을 외쳐온 소요가 ChatGPT 출시를 보고, 즉시 제주 겨울캠프를 열었던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아프리카에는 “나무를 심기에 가장 좋았던 때는 10년 전이고, 두 번째로 좋은 때는 지금이다.”라는 속담이 있다. 인공지능 교육에 좋은 두 번째 기회는 지금이고, 세 번째 기회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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