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는 불가피하다’는 말에 맞서는 사람들의 지도
인공지능을 둘러싼 산업계의 언어는 대체로 단호합니다. AI는 이미 오고 있으며, 멈출 수 없고, 늦추려는 시도는 시대착오적이라는 것입니다. 벤처투자자 마크 앤드리슨은 2023년 「기술 낙관주의 선언」에서 “AI의 어떤 감속도 인명을 희생시킬 것”이라고 썼습니다. 오픈AI의 샘 올트먼은 AGI의 도래를 거의 확정된 미래처럼 말했고, 엔비디아의 젠슨 황은 오픈AI가 다음 수조 달러 규모의 하이퍼스케일 기업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이 메시지는 단순한 전망이 아닙니다. 그것은 정치적 언어입니다. “AI는 불가피하다”는 말은 기술 개발의 방향과 속도, 비용 부담, 피해 책임에 대한 논쟁을 미리 닫아버립니다. 선택의 문제를 자연법칙처럼 보이게 만들고, 소수 기업의 결정에 사회 전체가 적응해야 한다는 분위기를 만듭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페트라 몰나르가 주목한 프로젝트가 등장합니다. 2026년 5월 21일 공개된 ‘AI 저항 목록(AI Resist List)’입니다. 이 목록은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AI 산업에 대한 저항을 모은 공개 데이터베이스입니다. 법적 소송, 노동조합 운동, 지역사회 캠페인, 예술적 개입, 기술적 도구, 공급망 문제 제기까지 포함합니다.
핵심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AI는 저항할 수 없는 운명이 아닙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저항하고 있습니다.
누가 AI 저항을 기록하는가
AI 저항 목록은 분산형 AI 연구소(DAIR), 위 앤드 AI(We and AI), 요크대학교 난민법연구소의 지원 아래 연구자, 언론인, 비판적 학자들이 함께 구축한 프로젝트입니다. 특히 초기 조사에는 이주와 국경 감시 문제를 취재해 온 언론인들이 참여했습니다.
시리아 출신 언론인 와엘 카르시피는 감시 기술이 사람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보도해 왔고, 미국-멕시코 국경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베로니카 마르티네스는 국경 감시와 군사화의 현실을 기록해 왔습니다. 이들이 프로젝트의 출발점에 선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AI와 감시 기술의 피해는 대개 가장 취약한 공동체에서 먼저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이 목록은 특히 ‘글로벌 다수’, 즉 서구 중심 기술 담론에서 주변화되어 온 지역의 사례에 주목합니다. AI 시스템은 종종 규제가 약하고 피해 가능성이 큰 지역에서 먼저 실험됩니다. 동시에 가장 창의적인 저항도 그곳에서 나타납니다.
저항은 소송만이 아니다
AI 저항 목록은 저항의 방식을 네 가지로 나눕니다. 저항하기, 거부하기, 되찾기, 다시 상상하기입니다. 이 분류가 중요한 이유는 저항을 단순히 시위나 소송으로만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미국 뉴멕시코에서는 주민들이 오픈AI의 ‘스타게이트 이니셔티브’와 관련된 대형 데이터센터 프로젝트에 반대하며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주민들은 지역 정부가 공공투명성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고, 환경과 공중보건 위험에도 불구하고 막대한 공적 자금을 투입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우루과이에서는 구글 데이터센터 건설을 둘러싸고 시민들이 대기질, 물 사용, 지역 일자리, 희토류 공급망 문제에 대한 정보를 요구했습니다. 일본에서는 노동조합 JMITU가 IBM이 임금 결정에 사용한 AI 데이터를 공개하라고 요구했고, 결국 노동위원회에서 유리한 합의를 이끌어냈습니다.
이 사례들은 비교적 익숙한 저항입니다. 법과 제도, 노동조합과 지역사회가 나서는 방식입니다. 그러나 목록에는 더 흥미로운 사례도 있습니다.
칠레 산티아고 외곽의 노동자 계급 지역 킬리쿠라에서는 주민들이 하루 동안 ‘인간 챗봇’이 되었습니다. ‘Quili.ai’라는 웹사이트는 AI처럼 보였지만, 사용자의 질문은 실제 주민들에게 전달되었습니다. 12시간 동안 주민들은 전 세계 68개국에서 온 2만 5천 개의 질문에 답했습니다.
이 실험은 인간이 AI보다 낫다는 단순한 주장을 하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AI에 질문을 넘길 때 무엇을 포기하고 있는지, 그 시스템이 누구의 물과 전기와 노동 위에 세워지는지 묻기 위한 예술적 개입이었습니다.
AI의 밑바닥에는 노동이 있다
AI 산업은 흔히 모델, 알고리즘, 데이터센터의 언어로 설명됩니다. 그러나 AI 저항 목록이 집요하게 보여주는 것은 그 밑바닥에 있는 노동입니다.
캘리포니아의 의료기관 카이저 퍼머넌트 정신건강 노동자들은 의료 현장에서 AI가 돌봄을 대체하거나 진료를 조립라인처럼 만들 위험에 항의했습니다. 이들은 AI가 임상적 판단을 알고리즘적 분류로 바꾸고, 노동자들에게 더 짧은 시간 안에 더 많은 환자를 처리하라는 압박을 강화한다고 보았습니다.
필리핀에서는 디지털 노동자들이 ‘AI 디지털 노동자 연합’을 결성했습니다. 이들은 고객 서비스와 백오피스 업무에 AI가 도입되면서 생기는 피해를 기록하고, AI 정책 결정 과정에 노동자의 목소리가 반영되어야 한다고 요구합니다.
나이로비의 데이터 라벨러 협회는 약 900명의 회원을 바탕으로 공정한 계약, 투명한 근로조건, 정신건강 지원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AI 모델을 훈련시키는 데 필요한 인지적·정서적 노동을 제공하지만, AI 산업의 화려한 성공담에서는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또 다른 중요한 사례는 전직 콘텐츠 모더레이터이자 임상심리학자인 카우나 이브라힘 말그위의 활동입니다. 그는 데이터 노동자와 콘텐츠 모더레이터를 위한 심리치료, 예술치료, 동료 지원, 공동체 치유 모델을 실험하고 있습니다. AI를 가능하게 하는 노동이 정신적 상처를 남긴다면, AI 윤리는 모델 성능만이 아니라 그 노동의 상처까지 다뤄야 합니다.
데이터센터에서 광산까지
AI 저항은 사무실과 플랫폼 안에서만 벌어지지 않습니다. 데이터센터를 짓기 위한 물과 전기, 반도체와 배터리에 필요한 광물, 서버를 돌리는 에너지까지 AI의 공급망 전체가 저항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아마존 직원 1,000명 이상은 회사의 공격적인 AI 전략이 기후 약속을 훼손하고, 감시와 군사화에 기여할 수 있다며 공개서한을 냈습니다. 이들의 요구는 세 가지였습니다. 더러운 에너지로 만든 AI는 안 된다. 직원의 목소리 없는 AI는 안 된다. 폭력과 감시, 추방을 위한 AI는 안 된다.
콩고민주공화국에서는 ‘콩고의 친구들’이 코발트, 금, 구리, 콜탄 채굴과 연결된 착취와 환경 파괴를 문제 삼아 왔습니다. AI 산업은 깨끗하고 비물질적인 기술처럼 포장되지만, 실제로는 광산, 물, 전기, 노동, 폐기물의 세계와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목록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AI를 단지 챗봇이나 생산성 도구로 보면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습니다. 누가 데이터를 정제하는가. 누가 서버를 식히기 위해 물을 내주는가. 누가 광물을 캐는가. 누가 감시당하는가. 누가 해고되는가. 누가 결정에서 배제되는가.
언어와 이미지도 저항의 전장이다
AI에 대한 저항은 물리적이고 제도적인 차원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언어와 이미지도 중요한 전장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자사 제품에 AI 기능을 대거 통합하자 사용자들은 저품질 AI 생성물을 조롱하며 “마이크로슬롭(Microslop)”이라는 말을 만들어냈습니다. 회사가 이 표현을 금지하려 하자 오히려 더 빠르게 퍼졌습니다.
위 앤드 AI의 ‘더 나은 AI 이미지’ 프로젝트는 AI 보도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빛나는 로봇 두뇌, 푸른 회로망, 인간형 로봇 이미지를 바꾸려 합니다. AI를 어떻게 그리느냐는 사람들이 AI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영향을 줍니다. AI를 신비로운 지능처럼 보이게 할 것인가, 아니면 사람과 자원과 노동이 얽힌 사회기술 시스템으로 보이게 할 것인가. 이미지는 이미 하나의 정치입니다.
예술가 샘 라빈의 ‘느린 LLM’도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이 브라우저 플러그인은 AI 챗봇의 응답 속도를 일부러 느리게 만듭니다. 빠름을 미덕으로 삼는 AI 산업 앞에서, 사용자가 “나는 지금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장치입니다.
AI 거버넌스가 놓치고 있는 것
AI 저항 목록이 보여주는 요구는 크게 네 가지로 압축됩니다.
첫째, 투명성입니다. 어떤 AI 시스템이, 누구에 의해, 어떤 자원을 써서, 누구의 부담으로 만들어지는지 알아야 한다는 요구입니다. 데이터센터, 임금 결정 알고리즘, 공공서비스 AI, 의료 AI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둘째, 참여입니다. AI 도입의 영향을 받는 노동자와 지역사회가 단순한 의견 청취 대상이 아니라 실제 결정권을 가져야 한다는 요구입니다. 지금 AI에 관한 결정은 너무 빠르게, 너무 사적으로, 너무 소수의 강력한 행위자들에 의해 내려지고 있습니다.
셋째, 공급망 책임입니다. AI의 비용은 종종 콩고의 광산 공동체, 동아프리카의 데이터 노동자, 동남아시아의 하청 노동자에게 전가됩니다. 이들을 제외한 AI 윤리는 반쪽짜리입니다.
넷째, 인프라 통제입니다. 데이터센터가 필요로 하는 토지, 물, 전기, 에너지는 공공 자원입니다. 그런데 AI 산업은 이를 사적 성장의 기반으로 삼고 있습니다. 누가 허가하고, 누가 감시하며, 피해가 발생했을 때 누가 구제받을 수 있는가. 이 질문은 앞으로 AI 정책의 핵심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불가피한 것은 AI가 아니라 논쟁이다
AI 저항 목록은 AI 개발이 곧 멈출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저항이 언제나 성공한다고 주장하지도 않습니다. 기업 권력과 자본의 규모는 여전히 거대합니다.
하지만 이 목록은 중요한 사실 하나를 증명합니다.
AI는 민주적 논쟁 바깥에 있는 자연현상이 아닙니다.
세계 곳곳의 노동자, 주민, 예술가, 연구자, 변호사, 활동가들은 이미 AI의 속도와 방향, 비용과 책임을 묻고 있습니다. 그들은 기술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기술이 누구를 위해, 누구의 부담으로, 어떤 조건에서 작동해야 하는지를 묻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이 목록은 단순한 사례집이 아닙니다. 그것은 AI 시대의 권력 지도를 다시 그리는 작업입니다. 산업계가 “AI는 멈출 수 없다”고 말할 때, 이 목록은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답합니다.
세계는 이미 멈춰 서서 묻고 있습니다.
누구의 AI인가. 무엇을 위한 AI인가. 그리고 그 대가는 누가 치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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