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4월 중순, 애플이 일론 머스크의 AI 챗봇 ‘그록(Grok)’을 앱스토어에서 퇴출하겠다고 경고했다. 이유는 하나였다. 그록의 ‘스파이시(Spicy) 모드’가 실존 인물의 성적 딥페이크 이미지를 무분별하게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피해자 가운데는 미성년자로 추정되는 얼굴도 섞여 있었다. 머스크는 개선안을 제출했고, 애플은 조건부로 승인했다. 그리고 기사의 한 줄이 남았다. “여전히 우회할 수 있다.”
뉴스의 주인공이 머스크라는 이유로 이 사건을 먼 나라 이야기로 읽기 쉽다. 그러나 물음을 가까이 당기면 풍경이 달라진다. 우리 교실 속 열네 살의 프로필 사진 한 장이, 오늘 밤 누군가의 화면에서 벗겨지고 있을 수 있다. 교육부가 배포한 딥페이크 대응 매뉴얼은 두툼해졌지만, 생성 속도는 매뉴얼의 속도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 한 장의 이미지, 오 초의 시간이면 가해자와 피해자가 함께 만들어진다.
안전장치를 강화하겠다는 약속이 몇 번째 반복되고 있는지 세기도 어렵다. 앱이 사라져도 웹사이트가 남고, 서비스가 막히면 오픈소스 모델이 떠돈다. 기술은 물처럼 흐른다. 둑을 높이는 것만으로는 막을 수 없다. 진짜 물어야 할 것은 따로 있다. 우리는 이 기술을 ‘쓸 줄 아는’ 사람을 기르기에 앞서, 이 기술 앞에서 ‘사람답기를 선택하는’ 사람을 기르고 있는가.
학교가 지금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묻는 자리에서, 가장 쉽게 나오는 답은 ‘AI 리터러시’다. 딥페이크를 판별하는 법, 신고하는 법, 피해를 복구하는 법. 모두 필요한 교육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아이들이 먼저 배워야 하는 것은 프로그램이 아니라 감각이다. 타인의 얼굴을 함부로 다루지 않는 감각, 내 얼굴 또한 그 누구도 함부로 다룰 수 없다는 존엄의 감각. 이 감각은 버튼처럼 설치할 수 없다. 가정과 학교가, 어른이, 살아 있는 말과 관계로 오래 전해줄 때에만 아이 안에 자리잡는다.
기술은 질주할 것이다. 규제는 따라잡지 못할 것이다. 그 간격을 메울 수 있는 것은 결국 한 사람의 양심이고, 그 양심을 빚어내는 교육이다. 에듀테크 예산과 AI 교과서 이전에, 우리가 아이들에게 어떤 ‘사람의 얼굴’을 먼저 보여주었는지 돌아볼 일이다.
오늘 저녁, 아이에게 한 번만 물어보자. 네가 만약 친구의 사진을 이상하게 바꾸는 앱을 알게 된다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이 ‘어떻게 쓰지’일까, ‘왜 쓰지 말아야 하지’일까. 그 질문 앞에서 아이가 어떤 답을 하는지가, 우리가 만든 교육의 현주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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