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내놓은 숫자가 서늘하다.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10월까지 1년 동안 사이버 성범죄 혐의로 검거된 이는 3557명. 그중 딥페이크 허위영상물 관련 피의자의 61.8%가 10대다. 20대까지 합치면 90%를 넘는다. 사건 건수는 전년 대비 35% 늘었고, 딥페이크는 전체 사이버 성범죄의 35.2%를 차지해 단일 유형으로는 가장 큰 비중이다.

숫자 뒤에 있는 장면을 떠올려본다. 교실의 한 아이가 친구의 사진을 SNS에서 내려받아 무료 생성형 인공지능(AI) 앱에 올린다. 몇 분 뒤 합성된 나체 영상이 익명 채팅방에 떠돈다. 그 방에는 같은 반 친구, 선배, 심지어 교사도 있다. 지난해 전국 40여 개 중·고등학교에서 확인된 풍경이고, 올해에도 반복되고 있는 풍경이다.

어른들은 이 사태를 놀라워하지만, 정작 아이들은 ‘놀이’라고 부른다. 법무부·여성가족부·민간단체 조사에서 10대들이 공통적으로 쓴 표현이 ‘장난’, ‘밈’, ‘구경’이었다. 친구 얼굴을 합성해 돌려보는 일이 범죄라는 감각 자체가 희미하다. 도구가 너무 쉬워졌고, 도구를 다루는 윤리는 너무 늦게 따라붙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기술 탓, 플랫폼 탓, 텔레그램 탓을 하기 쉽다. 물론 단속은 필요하다. 경찰은 2026년 10월까지 집중 단속을 이어가겠다고 밝혔고, 애플은 그록(Grok) 같은 챗봇이 부적절한 합성을 못 막으면 앱스토어에서 내리겠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생성형 AI가 손안으로 들어온 지 3년이 넘었는데, 학교는 여전히 ‘금지’와 ‘주의’ 말고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지 묻고 싶다.

교육부는 2026년부터 초·중·고 정규 교육과정에 AI 리터러시 교육을 단계적으로 넣겠다고 했다. 그러나 현장을 들여다보면 교사는 부족하고, 교재는 낡았고, ‘디지털 시민성’ 수업은 여전히 한 학기 두어 시간짜리 특강으로 처리되곤 한다. 한편에선 한 중학생이 교실 뒷자리에서 친구의 얼굴을 합성하는 동안, 다른 한편에선 그 학교가 ‘AI 선도학교’라는 현판을 달고 있다. 이 기이한 공존이 지금 우리의 디지털 교육 현실이다.

딥페이크 범죄는 기술의 문제이기 이전에 사람의 문제다. 타인의 얼굴과 몸을 가져다 쓰는 일이 왜 폭력인지, 화면 속 이미지가 왜 현실의 고통이 되는지, 내가 만든 합성물이 누군가의 삶을 어떻게 부수는지 — 이 질문들은 코딩 수업으로도, AI 앱 활용 수업으로도 가르칠 수 없다. 문학, 철학, 사회, 미술, 그리고 무엇보다 교사와 부모가 아이와 나누는 일상의 대화를 통해서만 겨우 전해진다.

부모로서, 교육자로서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질문이 있다. 우리는 아이 손에 쥐여진 도구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아이가 그 도구로 무엇을 만들 수 있는지뿐 아니라, 무엇을 만들어서는 안 되는지 이야기해본 적이 있는가. ‘AI를 잘 쓰는 아이’를 키우는 일은 쉽지만, ‘AI 앞에서 품위를 지키는 아이’를 키우는 일은 훨씬 느리고 어렵다. 느린 쪽을 포기한 교육이 지금의 61.8%를 만들었다.

기술은 앞서가는데 윤리는 뒤처져 있다는 탄식은 이제 그만하자. 뒤처진 것은 윤리가 아니라 우리 자신이다. 아이들이 ‘장난’이라고 부르는 일을 ‘범죄’라고 단호히 말해줄 어른, 금지 이전에 이유를 설명해줄 어른, 그리고 무엇보다 스크린 너머의 사람을 보게 해줄 어른이 지금 이 자리에 있는가. 그 질문에 답하지 못한 채 또 한 해의 통계를 마주하는 일이 나는 가장 두렵다.

인쇄하기

이전
0

소요 사이트를 방문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액수에 관계없이 여러분의 관심과 후원이 소요 사이트를 유지하는 데 큰 힘이 됩니다. 후원금은 협동조합 소요 국민은행 037601-04-047794 계좌(아래 페이팔을 통한 신용카드결제로도 가능)로 후원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