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물을 주고 받는 것은 행복한 일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누군가를 위해 선물을 고르기 위해 고심했던 일들, 그리고 받은 사람의 기뻐하는 순간들에 관한 추억들을 하나씩은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좋은 선물은 주는 사람의 정성과 받는 사람의 기쁨이 함께 맞닿는 지점이고 두 사람의 마음이 하나가 되는 소중한 순간입니다.
선물이 단순한 추억이 아니라 누군가의 미래를 열어주는 열쇠가 될 수는 없을까요? 저에게는 여섯 살 위의 형님이 주었던 두 가지 귀한 선물이 있습니다. 가난한 형편에 많은 가족들이 살던 시절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했듯이 우리 육 남매 중에 위로 세 분의 누님과 한 분의 형님은 어려서부터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 했습니다.
노란 런닝셔츠와 ‘대추장 제로니모’
바로 위의 형님은 진주에서 공업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부산에 있는 염색공장에 현장 실습을 나갔습니다. 제가 초등학교(당시에는 국민학교) 다닐 때니까 70년대 후반쯤이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그 당시 공장의 근로환경은 살인적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했습니다. 정식 직원조차 몇 만원의 급여로 주야간 교대 근무와 철야근무를 밥 먹듯이 해야 하는 상황이었으니, 고등학교를 아직 졸업하지 않은 실습생이 어떻게 생활했을지는 짐작조차 힘이 듭니다.
노랗게 물든 셔츠는 그 시절 형님을 기억하게 하는 것입니다. 옷을 빨아 입을 시간조차 없어서 셔츠를 노란색으로 염색을 해서 입고 다닌다고 이야기하는 형님의 미소 뒤에 숨어있는 그 힘든 생활을 그때는 몰랐습니다. 첫 월급을 받고 집에 온 날 형님은 저를 데리고 진주에서 제일 큰 서점으로 데려갔습니다. 그리고는 제가 원하는 만큼 책을 고르라고 했습니다. 책을 좋아했지만 늘 친구들에게 빌려서 읽고 있는 처지에 그 상황은 볼을 꼬집어 볼 정도로 믿기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한 권의 책만을 골랐습니다. 어쩌면 그 돈의 귀중함을 느꼈는지도 모릅니다. <대추장 제로니모>, 예쁜 양장본의 그 책 한 권은 제가 받은 첫 선물이었고, 선물로 받은 첫 번째 책이었습니다. 그 선물은 제가 평생 책을 무엇보다 먼저 사야 할 것으로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 이후에 책은 삶의 중심이었고, 결혼한 이후에 저의 가족들에게도 소중한 가치가 되었습니다.
새로운 세계, 소니 워크맨
제가 중학교 3학년 때 형님은 군 입대를 하여서 준사관으로 강원도 원통에서 장기복무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근무지가 ”인제 가면 언제오나 원통해서 못 살겠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교통이 불편한 지역이어서 서로 얼굴 보기가 쉽지가 않았습니다. 제가 대학을 입학해서 서울에 올라올 때까지 휴가 때 한 두 번 본 것이 전부였습니다.
83년도에 형님은 동생이 대학에 입학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 해 4월에 기숙사로 찾아왔습니다. 전화도 불편할 때라서 연락이 쉽지 않았는지 1박2일의 긴 여정을 마치고 새벽에 기숙사 문을 두드렸습니다. 형님은 깜짝 놀란 저를 데리고 인근에 있는 신림시장에 가서 해장국과 함께 막걸리 한잔으로 대학 입학을 축하해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세운상가로 저를 데리고 갔습니다. 80년대 세운상가는 우리나라 전자제품 판매의 메카였습니다. 한참을 돌아본 후 제 손에 쥐어준 것은 소니 워크맨이었습니다. 그 당시 워크맨의 가격은 13만원으로 중사 월급의 2달치는 넘었을 것입니다.
손바닥보다 작은 카세트테이프 레코드에서 뿜어 나오는 소리는 새로운 세계였습니다. 최첨단 기기에서 받은 충격과 감동은 컴퓨터로, 인터넷으로 이어지면서 IT 세계에서 살아온 제 인생의 첫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형님에게 받은 두 번의 선물은 추억이 아니라 미래였습니다. 이제 60을 앞두고 있는 형님과 간혹 소주잔을 기울이면서 그 선물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 선물을 받을 때 내가 무엇을 느꼈는지, 그 선물이 나의 인생이 어떤 의미였는지를 말할 때마다, 형님은 항상 “그때 그랬었나?”하고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지만 보일 듯 말 듯한 미소 속에서 좋은 형님으로서의 작은 자부심과 행복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풍족해진 세상 탓에 누구나 쉽게 선물하고, 또 받는 것을 당연히 생각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온갖 디지털 기기들이 필수품처럼, 때로는 소모품처럼 받아들여지는 디지털 세상에서 우리 아이들에게 그것을 사준다는 것이 서로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가고 있을까요?
선물할 책 한 권 고르기 위해 몇 시간을 서가를 뒤지고, 마음에 들어 할 옷을 찾기 위해 많은 가게들을 돌면서 들었다 놓았다를 반복했던 우리가 수 십 만원이 넘는 디지털 기기를 아이들에게 선물할 때는 너무 쉽게 던지듯 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지금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주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것을 알게 해주는 그 무엇’을 줄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참된 선물, 최고의 선물이 아닐까요? 저에게 형님의 두 가지 선물이 최고의 선물이었듯이, 형님에게도 최고의 선물이었을 것입니다. 형님은 저에게 ‘미래’를 주었습니다.
















소중한 선물입니다~ 예전엔 정말 선물을 할 대 많은 고민을 했던거 같은데, 요샌 너무 쉽게 고르는 것 같기도 합니다. 바쁨을 핑계로 잊혀져가는 그 고민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