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의 꿈(Dreams of ‘O’)>(2017)은 최근 한 통신사 광고에 나와 유명세를 탔다. <’오’의 꿈>은 캐나다의 세계적 공연단인 ‘태양의 서커스(CIRQUE DU SOLEIL)’가 ‘펠릭스와 폴 스튜디오(Felix & Paul Studios)’와 합작하여 만든 VR 공연이다. 태양의 서커스는 이야기, 음악, 무용, 디자인 등의 요소를 서커스와 결합시켜 종합예술공연의 극치를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 30여 년 동안 6대륙 450개 도시에서 공연을 이어오며 연 매출이 8.5억달러, 연간 티켓판매량이 550만장에 이르는 서커스 대표 브랜드로 성장했다.

 <‘오’의 꿈>은 태양의 서커스가 미국 라스베가스에서 1998년부터 장기공연 중인 수중테마공연 <오(O)>의 VR 버전이다. ‘오’는 프랑스어에서 물을 뜻하는 ‘eau’와 같은 발음이기도 하다. <오>는 “물의 무한성과 우아함”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제작진의 표현이 무색하지 않게, 고공다이빙,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 공중곡예를 통해 물의 효과를 극대화한다.

<‘오’의 꿈>에서 얼룩무늬 광대들은 이용자를 발견하자 반갑다는 몸짓으로 물을 찰방거리며 다가온다. 이들과 더불어 불기둥을 휘두르는 차력사, 우산을 배처럼 타고 물 위를 떠도는 신사, 향로를 흔드는 광대 등이 이용자를 에워싼다. 이들은 이용자의 눈을 들여다보며, 마치 이용자의 존재감을 인식하는 듯 행동한다. 배우들의 움직임은 슬로모션으로 촬영되어 초현실적이고 몽환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이에 더해, 3D 영상의 입체감을 극대화한 소품들은 이용자의 몰입감을 극대화한다. 차력사의 불기둥은 이용자의 앞머리를 그슬릴 기세이고, 향로의 연기는 코끝에 닿을 것 같다.

 5G 시대의 콘텐츠 사례로 <‘오’의 꿈>을 활용한 통신사 광고에서는 “우리집 소파를 공연장 VVIP 석으로” 바꾼다는 카피를 내세웠다. 이 표현은 사실 정확하지 않다. VVIP석에 앉아도 배우들이 내 주위를 둘러싸고 오롯이 나 혼자만을 위해 공연한다는 느낌을 받기는 어렵다. 무대는 극적 환상이 구현되는 인위적 공간으로 관객이 집단적으로 앉아있는 객석과 물리적으로 구분된다. 배우가 아닌 사람이 공연 중 무대에 오른다면 무대 ‘난입’ 사건이 되는 이유다.

 뮤지컬 <라이온 킹(The Lion King)>의 도입부를 VR 버전으로 만든 <‘삶의 순환’ 360도 영상(‘Circle of Life’ in 360º)>(2015)에서 객석, 무대, 무대 뒤 공간은 명확하게 분리되어 있다. 부감 시점이나 무대 뒤 모습을 통해 VR 공연에서만 가능한 시각체험을 선사하는 장면들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 작품은 이용자의 자리를 무대 위로 올려놓았을 뿐 실제 공연의 기록에 가깝다. 

 반면, <‘오’의 꿈>에서 배우들은 이용자와 눈을 맞추며, 마치 이용자 개인을 위해 맞춤형 공연을 벌이는 듯 움직인다. 슬로모션과 극대화된 입체감은 실제 공연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한 감각적, 정서적 경험을 선사한다. 즉, <‘오’의 꿈>은 실제 공연을 복제하는 데에서 나아가, VR 공연으로만 체험 가능한 미감과 효과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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