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티켓의 가격은 대략 무대와의 거리에 반비례한다. 가성비 좋은 좌석을 구하기 위해 컴퓨터 앞에서 ‘손가락품’을 팔아 R석에 붙어 있는 S석을 구한다거나 알람 맞춰 놓고 티켓 오픈 시간을 노리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무대와 근거리에 앉아 적절한 시야각을 확보하는 것은 관람 경험의 질에 큰 변수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대에 가까이 앉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무대 위에서 공연을 지켜볼 수 있다면 어떨까? 배우의 근육이 떨리는 순간을 포착하고 곁에서 배우의 눈빛까지 읽을 수 있다면? 

 <‘삶의 순환’ 360도 영상(‘Circle of Life’ in 360º)>(2015)은 <라이온 킹(The Lion King)>의 브로드웨이 뮤지컬 도입부를 VR 버전으로 만든 것이다. 사자인 심바가 왕이 되기까지의 모험을 담은 <라이온 킹>은 동명의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원작으로, 뮤지컬 제작 초기부터 화제를 모았다. 동물 서커스도 아닌 마당에, 사바나 초원을 휘젓는 온갖 날짐승과 길짐승을 어떻게 무대 위로 불러낸다는 말인가?

 뮤지컬 <라이온 킹>의 연출가인 줄리 테이머(Julie Taymor)는 인도네시아의 가면극과 인형극, 일본의 분라쿠(文楽) 인형극 등에 심취했던 이력을 갖고 있다. 테이머는 배우가 꼭두각시 같은 무생물을 조종하여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처럼 움직이게 만드는 장면에서 연극적 재미를 만끽할 수 있다고 보고, 배우가 가면, 인형과 함께 관객에게 모습을 드러내는 이중적 이미지를 구축한다. 실제로 배우들이 인형을 조종하여 동물들의 몸짓을 정교하게 재현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인간, 동물, 무생물의 구분이 무상하게 느껴질 지경이다. 

  <‘삶의 순환’ 360도 영상>은 <라이온 킹>의 뮤지컬 무대 위로 이용자를 불러낸다. 이용자는 객석과 무대를 가르는 제4의 벽 너머로 나아가 배우의 시점으로 공연을 지켜보게 된다. 덤으로 객석에서 보기 어려운 무대 바닥 장치나 무대 옆에서 대기하고 있는 배우의 모습을 엿볼 수도 있다. 특히 무대 위로 솟아오르는 프라이드 락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부감 시점은 VIP석에서도 경험할 수 없는, VR 공연 고유의 시각 체험을 제공한다.

  <‘삶의 순환’ 360도 영상>은 기존의 공연을 VR 영상에 담는 수동적 관점에 머물렀음에도 VR 영상에 특화된 공연의 가능성을 상상하게 만드는데 부족함이 없다. 무대와 객석의 이분법을 뛰어넘어 각 이용자에 맞춤형으로 제공되는 공연의 문법과 연출은 어떻게 가능할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기존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대가족이 아무리 복닥거리더라도 카메라를 가리지 않기 위해 식탁의 세 면에만 몰려앉던 풍경은 VR 영상에서 사라질 것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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