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밤에 제주의 한 초등학생이 구글 프리젠테이션으로 매일 만들어 가는 영어 단어장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그 친구가 자신만의 영영(English-English) 사전을 만들기 시작한 지 이제 한 달 남짓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watermelon’ 같은 간단한 명사의 뜻을 영어로 쓰고, 관련 이미지로 장식하였습니다. 물론 그 이미지의 출처를 링크하는 세련된 모습도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단어장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소파 방정환에 관한 기사를 올리더니, “Why Do We Take Selfies?(셀피를 찍는 이유)”,”RAW VEGETABLES VERSUS COOKED VEGETABLES(생야채와 조리된 야채)”와 같은 관심 있는 주제의 내용으로 변해갔습니다. 이제는 단어장이 아니라 멋진 스토리북 혹은 아트북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제가 그 문서에 접속했을 때 마침 그 친구가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데 갑자기 채팅으로 “Hello”라고 인사를 해왔습니다. 간단한 영어로 나도 인사를 나누었지만 순간 당황하고 긴장했습니다. 그런데, 단어장 작업을 하면서 계속 영어로 말을 이어갔습니다. 다른 볼 일이 있어서 인사를 남기고 나왔지만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요즘에 아이들하고 종종 외국어로 대화하거나, 공유하는 클라우드 문서에 메시지를 남기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주로 영어를 사용하지만, 일본어나 중국어, 때로는 라틴이나 태국어등 많이 사용되지 않는 언어들도 즐겨 씁니다. 그럴 때 마다 놀라는 것은 아이들이 외국어를 정말 편하게 받아들이고, 그런 대화를 즐긴다는 사실입니다.
번역기를 활용하는 친구들은 외국어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어떤 내용도 바로 의미를 알 수 있는 상황에서 외국어는 그들에게 단지 익숙하지 않은 모국어일지도 모릅니다. 번역기와 함께 하는 아이들은 전라도 사투리를 원단으로 구사하는 할머니와 프랑스 원어민과의 대화중에서 어떤 것을 더 힘들다고 느낄까요?
인공지능 번역기는 모국어 교육과 외국어 교육의 경계를 허물고 있습니다. 유튜브와 인터넷은 다양한 언어에 대해 그 사회에 사는 것과 비슷한 수준의 노출을 경험하게 해주고, 번역기는 오랜 시간의 학습이 없어도 외국인과의 소통을 가능하게 해줍니다. 이제는 특정 외국어 교육이 아니라 다양한 언어들의 공통점과 차이를 아는 언어교육이 필요합니다.
간혹, 번역기가 아직 오류가 많아서 아이들이 그것을 믿고 사용하는 것을 걱정하는 부모들이 있습니다. 그런 부모들에게는 우리가 일상에서 글이나 말을 사용할 때 정확한 문법과 적절한 표현을 할 가능성이 훨씬 낮다는 사실을 환기시켜줍니다. 아이들의 언어 능력은 학습과 사회생활을 통해서 길러지고, 인공지능 번역기도 매 순간 발전합니다. 모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주는 것보다 더 큰 학습의 동기부여는 없습니다. Solum fac 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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