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에 낙성대 부근에서 열렸던 연구모임에 강의를 하러 갔다가 중고서점에 들렀습니다. 중고서점을 찾는 습관은 중학교 때부터 시작되어서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돈이 없어서 가기 시작했는데, 나이를 먹으면서는 간혹 괜찮은 책을 만나게 되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평소에는 중고서점 구석에서부터 살펴봅니다. 경험에 의하면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서 보물이 발견된 적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날은 시간이 넉넉지 않아서 서점 앞 매대를 살펴보는데 책 한권의 제목에 눈길이 멈추었습니다. <TV쇼크, 내 아이의 두뇌가 위험하다>.

요즘 아이의 두뇌가 위험하다는 말을 워낙 많이 들어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특히 전두엽이 위험하다지요? ^^

페이지를 넘겨보았습니다. “평생TV보고 살 우리 아이, TV 사용법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어지는 문장 “TV사용법도 모르는 부모가 너무 많다.” 출판사에서 보도 자료로 배포한 서평의 첫 문장은 더욱 자극적입니다. “1인 1TV 시대, TV가 아이들의 수명을 단축시킨다!”, “1시간의 TV 시청은 흡연자와 유사한 건강의 역효과를 유발한다!” 이 정도면 책의 내용은 충분히 상상이 갑니다. 궁금하시면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찾아서 목차를 보세요. ^^

TV의 등장은 문화적으로 큰 충격이었습니다. 문자보다 더 풍부한 정보전달과 강렬한 자극으로 빠르게(?) 우리 생활 속으로 들어왔습니다. 한국에서는 50대가 TV에 노출된 첫 세대였습니다. 어릴 때 마을에 한두 집에 있는 TV를 얻어보기 위해 저녁 시간에 눈치 밥 먹으면서 그 집을 기웃거렸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오후 다섯 시에 애국가로 시작되는 방송은 밤 11시경에 종료가 될 때까지 좀처럼 눈을 떼기가 힘들었습니다. TV가 바보상자라는 말이 나올 만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것의 부작용에 대해 걱정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90년대 후반에 그 당시 막 선을 보였던 케이블 TV의 한 채널에서 일을 했습니다. 이제는 하루 종일 원하는 장르의 영상을 골라서 보게 된 것이 꿈만 같았습니다. 영화 채널(OCN)과 음악 방송(Mnet)이 가장 선호하는 방송이었습니다. 그런데 세 번째 선호하는 채널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만화영화 채널 투니버스였습니다. 당시 협회에는 어린 아이를 자녀로 둔 부모들의 항의 전화가 심심치 않게 오고, 전통 미디어에서도 많은 비평들이 쏟아졌습니다.

그리고 20년, 이제 부모가 된 그 때의 아이들은 유튜브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자녀들을 보면서 같은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유튜브에 비하면 TV의 자극과 유혹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하루에 10편 내외의 프로그램을 재방, 삼방, 사방하는 케이블 TV는 익숙해지면 금방 식상해지고 거실만 벗어나면 그나마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유튜브는 어디에서든 볼 수가 있고, 콘텐츠는 무한하고, 한편을 보고 나면 다음 것을 보여주는 과도한 친절도 있습니다. TV가 <바보상자>가 맞는다면 유튜브는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돌이켜 보면 새로운 기술로 인해 사람이 바보가 되어간다는 생각의 역사는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위대한 현인 소크라테스는 문자가 인간이 외부적 기억에 의존하게 만들어 점점 더 망각에 빠져들 것을 우려했고, 송대의 중국학자들은 인쇄술로 인해 너무 많은 책들이 쏟아져서 집중하지 않는 현실을 개탄했습니다. TV는 미국 소아과학회에서 매년 미디어가이드를 발표할 정도로 그 정신적, 육체적 폐해에 대한 두려움이 컸습니다. 그 모든 것을 다 합친 것보다 강력한 영향을 주는 디지털 미디어는 어떨까요?

아직 답을 얻기에는 그 시간이 너무 짧았고, 그것을 차분하게 생각하기에 변화는 너무 빠릅니다. 그런데 이런 질문을 스스로 던져보면 어떨까요? TV와 함께 성장해온 우리는 지금 바보가 되었나요? 인간은 늘 변화를 두려워합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이 늘 변화에 적응해왔다는 사실입니다. 기술과 그것이 가져올 부정적인 영향에 대한 우려와 비판이 있다는 것은 인간이 단순히 기술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주는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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