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라는 호칭으로 불리우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 된 일은 아닙니다.
소요의 어린 친구들이 저를 ‘디지털 할아버지’라고 편하게 부르기 시작했죠.
그래도 제 귀에는 ‘할아버지’라는 말은 흘러가고 ‘디지털’만 들려서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제 ‘진짜 할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점심 시간에 건강식을 하겠다고 오피스텔 1층에 새로 개업한 샐러드 전문점을 찾았습니다.
들어갈 때 입구에서 주문을 하는 키오스크 시스템이더군요.
문제는 그 키오스크였습니다.
겨우 손바닥보다 큰 크기의 화면이 낮은 책상 위에 덩그러니 하나 놓여 있었습니다.

안경은 벗어서 키오스크 오른쪽에 두고 왼쪽에 스마트폰을 내려놓은채, 허리를 잔뜩 구부리고 주문 절차를 밟아갔습니다.
메뉴를 고르고 카드 결제를 시도하는데, 사달이 났습니다.
넣어도, 긁어도 에러가 납니다.
2~3분 동안 헤매고 있는데, 뒤에서 예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할아버지, 도와드릴까요?”
돌아보니 20대쯤 되어 보이는 아가씨가 딱하다는 표정으로 서 있었습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카드를 고이 내밀고 뒤로 물러섰습니다.

한 번만에, 나하고 똑 같이 긁었는데…
결제가 되더군요.
순간, ‘디지털 할아버지’에서 ‘디지털’이 떨어져 나가는 소리가 천둥처럼 들려왔습니다.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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