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오후, 동네 아이들이 왔다. 이런저런 강연등으로 한두 번씩 얼굴을 본 아이들이었다. 방학 때라 오전에 독서논술을 하고 각자 집으로 돌아갈 시간에 한 아이가 제안했단다. 우리 생각을담는집에 가서 더 하자.

아이들은 샌드위치를 점심으로 먹고 다시 책을 펴고 뭔가 이야기를 나누고 글을 썼다. 부모도 없고, 선생도 없는데 저들끼리 왔으니 얼마나 할까 싶었는데 아이들은 기특하게도 그들이 목표한 것을 다 끝낸 후에야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데리러 오라고 했다.

이 아이들은 이제 청소년 시기를 거쳐 대학생이 되고 성인이 될 것이다. 그 시간은 얼마나 짧을 것인가. 문득 이 아이들이 대학생이 된 후 이곳을 기억하고 온다면, 이 아이들이 더 커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후 이곳을 기억하고 온다면. 그래서 할머니 된 내가 만들어준 샌드위치를 먹고 할머니가 된 내가 갖다놓은 책을 사본다면. 저절로 웃음이 난다. 이런저런 책을 매개로 이야기를 하는 것은 또 얼마나 근사한 일인가. 책의 뒷담화!

지난여름, 문을 연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훗날 이곳의 모습, 이곳에서의 나의 모습을 그려보라는 질문을 받았다. 그때 내가 했던 말은 나이 든 내가 만들어준 음식을 여전히 맛있다고 하고, 나이 들어도 여전히 신간을 읽는 할머니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때 그 말이 툭 튀어나왔는데, 그 말을 하고 나서도 스스로 그 모습이 꽤 근사해 기분이 좋았다.

책을 읽는 행위는 계속되어야 하는 것이다. 내가 옛날에 책 좀 읽었는데, 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그 힘으로 지금까지 살아왔으면 앞으로 살아갈 힘을 얻기 위해서는 지속적이어야 한다.

쏟아지는 신간을 다 읽는 일은 누구에게나 불가능하다. 매일 나오는 책 중에서 좋은 책을 골라내는 일은 지속적으로 책을 읽으면 가능하다. 신간 예찬을 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매일 나오는 책 중에서도 고전과 스테디셀러는 있다. 저마다 다른 눈을 갖고 책을 고르는 것은 저마다의 시각의 차이다.

최근 한 권의 과학책을 갖다 놓았는데 이튿날 바로 다른 사람 손에 들려나갔다. <슬기로운 화학생활>이다. 그 책을 언뜻 보고 꽤 재미있겠다 싶어 읽어보고 싶었는데 그럴 새가 없었다(하긴 이렇게 들려나가는 책이 한둘이 아니지만…). 좋은 책을 보면 그 작가도 궁금해진다. 특히나 강연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보니 나 혼자가 아닌 여럿이, 특히나 필요로 하는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커진다. 그래서 또 불쑥 연락을 했다. 과학, 그중에서도 화학이라니! 누가 올까? 그런데 올 것 같다. 이렇게 근사한 작가가 오는데 오지 않는다면 얼마나 인생에서 손해를 보는 것인가.

<파인만 씨 농담도 잘하시네>란 책이 있다. 이 책이 나온 지는 10년도 더 전이다. 당시 과학 책치고는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 당연히 책도 재미있다. 오래전 <과학쟁이>라는 잡지를 맡아서 한 적이 있다. 과학을 꽤나 두려워함에도 불구하고 좋은 기자들 덕분에 좋은 책을 만들었던 기억이 난다. 과학을 쉽게 풀어주는 일은 다른 학문과 마찬가지로 필요하다. <슬기로운 화학생활>도 그 대열에 들어가는 책이다.

최근 갖다 놓은 책 중에는 <크로스 사이언스>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도 있다. 얼마나 재미있을지! 저자는 모두 서울대 교수들이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전문적인 것을 일반인들이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이야기해주는 것은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이런 책과 작가는 곳곳에 있다. 이런 멋진 지뢰들을 밟고 우리 의식이 팡 터지는 일! 그것이 책 읽는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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