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었어!” 

“꽃이 피었어!”

며칠 전 남편이 큰소리로 말했습니다.

소파에 앉아있던 저는 이미 피었던 것을 알고 있었던 터라 조금은 시큰둥하게 그래, 하고 대답하고 일어나서는 그만 폭소를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남편이 한쪽에는 바지를 걸치고, 한쪽은 다리 맨살을 그대로 드러낸 채 엉거주춤 서서 난꽃을 보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남편은 한동안 그 자세로 이 꽃을 보고 저 꽃을 봤습니다.

코가 안 좋아 향내를 잘 맡지 못하는 남편은 난향이 진동해도 그냥 조금 나나, 합니다.

난도 저마다 달라 어떤 것은 향내가 진동하고, 어떤 것은 향내를 거의 풍기지 않기도 합니다.

난꽃은 아주 작지요.

그런데 향내가 진한 것은 딱 한 송이만 피어도 그 향내가 그 주변 전체를 향내로 물들입니다.

가만 앉아 있으면 코끝으로 은근히 풍기는 그 향내는 얼마나 근사한지.

아침에 문 열고 나오면 거실 가득 향내가 은은합니다.

앞에 가서 킁킁 대면 오히려 그 향을 느낄 수 없는 꽃.

난을 키우기 시작한 지 어느새 30여 년이 됐습니다.

누군가 난 화분을 줘서 선물로 받아 키우기 시작했는데, 어느 날 꽃을 피웠지요.

자고 일어나 거실로 나오니 향내가 진동했습니다.

처음이라 그 향내의 진원지가 난꽃인 줄도 몰랐던 때.

하도 좋아 난꽃향을 즐기자며 친구들을 불러 저녁을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부모님 집을 떠나 독립해서 혼자 살던 시절이었지요.

현재 갖고 있는 난분은 열댓 개 정도입니다

이름도 제대로 모르면서 적당히 물 주고, 분갈이만 해주면서 키우는데

그런대로 10년 넘게 함께 산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한때 난 화분이 집에 들어올 일이 많을 때는 나눠주기도 하고, 키우기도 하면서 함께 시절을 지난 것들.

해마다 이렇게 꽃을 피워올리니 얼마나 기특한지요.

무뚝뚝한 남편이 팬티바람으로 난꽃에 환호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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