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없는 공간에서 종일 존 필드의 녹턴을 듣다 시집들을 읽고 있었습니다.
누군가 들어왔습니다.
오래전 친구.
20여 년 만에 이곳으로 찾아왔습니다.
한때는 같이 일을 했고, 어쩌다 한 아파트 단지에서 살기도 했고,
그러다 보니 늦은 밤 서로 만나 수다를 떨던 친구였습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이사를 하고, 서로 삶의 모습이 달라지면서
풍문으로 소식을 듣다 그마저도 끊겼지요.
우리는 마치 어제 만났다 헤어진 듯 수다를 떨었습니다.
조금은 쓸데없는 이야기들을 주저리주저리…
마음을 들여다볼 새가 없이 그냥 주저리주저리…
황현산의 <밤이 선생이다>, 허수경의 <너 없이 걸었다> , 최승자의 <물 위에 씌어진>, 신형철의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정혜신의 <당신이 옳다>를 권했고, 다 읽고 오겠다고 했습니다.
읽고 오면 할 이야기가 많겠지요.
어느 날은 스파게티 면을 삶고 있는데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왔습니다.
그대로 달려나가 끌어안았습니다.
꼭 끌어안았던 팔을 풀고 나서야 우리는 얼굴을 마주 보고 서로 눈물을 훔쳤습니다.
한때는 같은 사무실에서 매일 만났고,
서로 다른 일터로 옮겼을 때도 한두 달에 한 번씩은 만나 밥을 먹고 수다를 떨던 사이.
그러다 어느 날 소식이 끊겼지요.
한동안의 단절은 혹시 안 좋을 일이 있는 건 아닐까 하고 깊은 근심까지 하게 했던.
다시 풍문으로 소식이 들려올 즈음, 언젠가 연락을 먼저 하겠지 하고 기다렸지요.
스파게티 면을 마저 삶아 손님에게도 내고, 그에게도 내고.
우리는 마치 어제 만났던 것처럼 오늘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동안의 그 많은 이야기들은 오늘 만난 것으로,
그래서 오늘을 이야기할 수 있는 것으로 족했습니다.
그에게도 황현산을, 허수경을, 신형철을 권했던 것 같습니다.
공간을 열어놓고 있으니 이렇게 불쑥 찾아오는 이가 있습니다.
낯선 이도 오고,
낯익은 이도 오는 열린 공간.
누군가는 와서 책을 보고
누군가는 와서 이야기를 나누고
누군가는 와서 밥을 먹고
누군가는 와서 산책을 하고
누군가는 와서 하룻밤을 잡니다.
이런 공간을 만들 수 있어서 참 다행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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