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담는집 북스테이 풍경입니다.
어제 선배 두 분이 머물다 가셨습니다.
젊은 시절 일할 때는 하늘 같은 선배들이었지요.
30여 년 전, 여성이 전문직으로 일할 수 있는 직업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운 좋게 선배들과 저는 그런 직업을 갖고 일을 하게 됐고, 여성과 남성에 대한 특별한 차별없이(물론 약간의 차별이 있었지만..) 일을 했고, 편집장과 편집국장 등의 직책을 갖고 일을 했었습니다.
젊은 시절을 치열하게 살아온 분들답게 은퇴 후의 삶도 남다릅니다. 책 읽기는 끊이지 않고, 웬만한 예술영화와 콘서트, 전람회 등은 다 보고 있었습니다. 지금처럼 여행이 일반화되기 전, 이미 혼자 여행을 떠났고 한곳에 오래 머무는 여행을 했었는데 지금도 그런 생활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한 분은 대학원에서 심리학을 공부했고, 한 분은 그림으로 전시회까지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책, 영화, 음악, 여행 등의 이야기가 좌충우돌 끊임없이 이어졌습니다. 우리들의 ‘알쓸신잡’이었죠.
“내가 라오스 산동네에 와 있는 줄 알았네.”
아침에 일어나 한 선배가 할 말이었습니다.
닭 울음소리와 새벽 숲내음에 그런 말을 한 것이지요.
오래된 소나무 숲길을 산책하고, 오래된 느티나무가 즐비한 길을 따라 마을을 한 바퀴 돌고 와서는 말했습니다.
“어쩌면 이렇게 동네가 따듯하니?”
샌드위치와 커피, 토마토바질볶음으로 아침 식사를 하던 중 문자 메시지가 왔습니다.
“나 오늘 너네 집에 갈까 하는데 주소 좀 찍어라.”
우리 모두에게 한때는 부장이었고, 국장이었고, 경쟁 매체 대표였던 남성 선배였습니다.
(사실 선배라고 하기에도 참 뭐한, 그러나 이제 같이 나이 드니 모든 분들을 다 선배로 통일!)
이 남성 선배 역시 곧 70이 가까운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생각도 젊고, 스타일도 젊고, 혼자 여행을 거리낌 없이 하고, 혼자 예술의전당에서 음악회를 즐기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아침나절 달려온 남성 선배와 하룻밤 묵은 여성 선배들은 다시 여행 이야기를 하다, 음악 이야기를 하다 아이들 결혼시킨 이야기, 손주 이야기, 살고 있는 아파트 이야기 등으로 끊임없이 말을 이어나갔습니다.
저는 물론, 모두 은퇴해 세 사람이 함께할 일이 10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데 어쩌다 보니 함께하고 있었고, 마치 어젯밤 늦게까지 일하고 다음날 다들 느긋한 마음으로 수다에 빠진 듯했습니다. 정말 사람의 인연이란 알 수 없지요. 그 많은 날들 속에 하필이면 바로 어제 그 순간, 갑자기 이곳에 오고 싶어서 휙 달려오다니!
“내가 정말 이 일을 잘했다 싶을 때가 바로 이런 순간이에요. 이렇게 선배들을 모실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라고 법정 스님은 말씀하셨지요.
모두 떠나간 후 한참 가을 햇살 아래 앉아 있었습니다.
바람이 불자 오래된 큰 나무들이 바람에 뒤척였습니다.
적막 가운데 그 소리가 크게 울렸습니다.
큰 나무들만이 낼 수 있는 소리들.
이곳의 시간들이 이렇게 흘러갑니다.
[출처] 북스테이, 그 하룻밤과 이틀 낮|작성자 생각을담는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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