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어송라이터인 국내 인기 여가수가 LP판을 내겠다는 인터뷰 기사가 나왔다. 몇몇 가수들의 LP도 이미 발매되었다. 카셋트 테이프가 자취를 감추고, CD나 MP3마저 구시대 유물로 여겨지는 상황에서 이런 움직임은 LP가 대중 속으로 귀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더 이상 매니아들의 전유물로만 여겨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문을 닫고 사라졌던 LP 공장 역시 2017년에 국내에 다시 등장했다.

LP의 귀환은 세계적인 흐름이다. 앨범이나 음원 판매량 등을 전문적으로 집계하는 닐슨 뮤직(Nielsen Music)의 통계를 보면 2018년 상반기 미국의 LP 앨범 판매는 760만장으로 전년동기 대비 19.2%가 증가했다. 2017년 전체로 보면 1,432만장이 판매되었다. 음악시장이 디지털 음원으로 급격히 재편되고, 스트리밍 뮤직이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LP 판매는 지속적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이런 흐름은 세계적인 음반사인 소니뮤직엔터테인먼트가 29년만에 LP 생산을 재개하게 만들었다.

미국의 콜롬비아 레코드가 1948년에 발매한 첫 LP는 나탄 밀슈타인(Nathan Milstein)과 뉴욕 필하모닉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협연한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이었다. 1분에 33번 회전하는 LP 한 면의 연주 시간은 26분 정도로 짧다. 하지만 당시로서는 최신 기술이었고, 장시간 연주가 가능하다는 뜻으로 LP(long-playing)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그런 LP가 70년의 세월과 디지털의 거센 파고를 넘어 여전히 똑같은 형태와 모습으로 존재감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LP로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유투브를 뒤지면 무료 음악이 넘쳐난다. 스마트폰은 듣고 싶은 곡이나 가수, 연주자를 언제 어디서나 실시간으로 불러낼 수 있다. 단순히 듣기만 하는 게 아니라 연주 실황을 보면서 들으면 감동이 배가되기도 한다. 디지털 세상이 만든 편리함이다. 반면에 LP 음악은 자판기 커피처럼 뽑아낼 수 있는 게 아니다. 음반과 레코드 플레이어가 반드시 있어야 하고, 장소의 제약이 따르고, 세밀한 관리가 필요하다. 음악을 계속 듣기 위해서는 LP판을 뒤집거나 교체해야 귀찮은 일도 감수해야 한다.

물론 장점이 없는 게 아니다. LP 음악에는 따듯한 온기가 느껴지고, 옛 것에 대한 향수가 담겨 있으며, 감성을 자극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시대의 흐름과 추세에 역행하고 불편을 마다하지 않는 LP의 귀환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아날로그 시대 한때를 풍미했던 카셋트 테이프가 사실상 자취를 감추었고, 디지털 음악의 문을 열었던 CD는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MP3조차 고음질 음원에 밀려 힘을 읽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시간과 정성과 비용을 들여야 하는 LP의 귀환은 어쩌면 초스피드로 세상을 바꾸고 있는 디지털 환경의 피로감에서 근본적인 배경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디지털은 시간이나 장소, 업무에 관계없이 언제 어디서나 음악을 생활화 했지만 동시에 음악을 소비하는 행태로 만들었다. 헤아릴 수 없이 스쳐 지나가는 음악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지만 음악에서 ‘감상’이라는 말은 어느 순간부터 잘 쓰이지 않게 되었다. 감상의 여지와 여유가 사라진 때문이다.

스마트폰은 디지털을 상징한다. 음악에도 혁명을 가져왔다. 닐슨 뮤직의 통계는 LP 판매량이 10여년 전부터 증가세로 돌아선 것을 보여준다. 스마트폰의 성장세와 같은 궤적을 그리고 있는 것은 우연의 일치일까? 스스로를 돌아볼 여유를 주지 않는 속도와 연결의 전쟁터 같은 디지털 세상은 때로 균형을 필요로 한다. 연결이나 기기의 속박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반작용이다. 아날로그적인 감성과 느림의 여유가 응축되어 있는 슬로우 뮤직, LP의 귀환도 그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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