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밸런스가 캐시수요를 만든다.’ 암호 같은 문장이라 그 의미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게임을 오랫동안 해온 사람들이 현재 한국게임의 현실을 표현하는 것이다. ‘밸런스’는 사용자와 사용자가 비슷한 실력을 가지는 것을 의미한다. 운동이든 게임이든 들이는 시간과 노력에 따라 실력이 결정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시기에 시작하고 비슷한 게임에 비슷한 시간을 투자한 사용자들은 대등한 수준이 되는 것이 상식적이다.
그런데, 다른 요소로 인해서 그런 상식이 깨어질 수 있는 것이 지금 게임이라는 것이다. 그 다른 요소는 돈이다. 대부분의 게임은 무료이고 게임회사의 수입은 게임에 사용되는 아이템 판매를 통해 만들어진다. 아이템은 게임 캐릭터를 꾸미거나 게임 능력을 강화시켜준다. 여기서 유저들이 말하는 ‘현질’이 등장한다. 현질은 ‘현금질’의 약자로 게임을 잘하기 위해 아이템을 사는데 돈을 쓰는 것을 의미한다.
‘무너진 밸런스가 캐시 수요를 만든다.’라는 말은 게임의 실력이 노력에 의해 느는 것이 아니고 아이템 구매에 얼마나 많은 돈을 썼는가에 의해 결정된다는 의미이다. 국내의 유명 PC 게임들은 대부분 매출을 올리기 위해 아이템을 많이 구매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실력 격차-무너진 밸런스를 의도적으로 만든다.
외국의 게임의 경우 이런 일이 일반적이지는 않다. 몇몇 해외의 게임회사는 국내와 다르게 밸런스에 연계되지 않는 아이템 판매만 하고 있다. 즉 게임의 능력을 올려주는 것이 아니라 캐릭터의 외관을 꾸며주는 옷이나 장신구 같은 ‘스킨’이 주를 이룬다. 물론 해외의 게임 중에는 한국의 게임과 같이 아이템 구매 여부에 따라 능력의 차이를 두는 게임도 있다.
최근 국내에 새롭게 출시되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두 가지 게임은 서로 다른 아이템 판매 형태-능력과 치장-를 띠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리니지M’과 ‘소녀전선’이 그것이다. 두 게임의 차이를 통해서 한국 게임의 문제를 살펴본다
리니지M은 전형적인 국산 RPG게임을 모바일에 담았다고 볼 수 있다. 이 게임은 국내 게임 ‘리니지’의 후속 작으로 리니지 골수유저들의 상당한 기대를 받은 게임이다. 그러나 전작과 같이 아이템을 사지 않으면 초기에만 게임을 즐길 수 있고 시간이 지날수록 돈을 주고 구매해야 하는 아이템의 능력이 더 큰 힘을 가지게 된다. 그 말은 돈을 쓰지 않으면 단계가 진행될 수록 한계를 느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여러 사람이 협력하여야 하는 RPG 게임의 특성 때문에 함께 하는 게임 동료들은 서로 비슷한 아이템을 필요로 하고, 결국 지갑을 열게 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게임이 운영되면 아이템 구매를 하지 않거나 적게 하는 대부분의 유저들과 현질을 많이 하는 헤비 유저들의 격차가 점점 더 커지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경제적 여유가 있는 중 장년층이 주로 사용하게 되고, 몇몇 전문 아이템 장사꾼이나 특정 헤비유저 그룹이 게임을 좌지우지 하게 된다. 결국 일반 유저들은 빠져 나가고 소수의 골수 유저만 남아있는 ‘고인 물’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리니지 M도 그 길을 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소녀전선은 일본풍의 일러스트와 간단한 슈팅, 전략 게임요소를 조합한 모바일 게임이다. 그 게임장르에 특별하게 새로워 보이는 게임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설명했던 국내게임과는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다. 바로 아이템 구매와 게임 밸런스의 연관성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모바일 게임 류에선 확률에 의존하는 일명 ‘뽑기’ 형태로 아이템 구매를 유도한다. 그리고 그 뽑기에서 나오는 아이템은 게임 내에서 플레이만으로 얻을 수 없거나 굉장히 오랜 시간을 요구하는 아이템들이다. 그러나 소녀전선에서의 ‘뽑기’는 그저 게임 내에서 얻을 수 있는 아이템을 그대로 뽑을 수 있다. 또한 아이템의 대부분이 게임 캐릭터의 외모를 바꾸는 ‘스킨’이다. 그렇기 때문에 게임유저가 게임 캐릭터의 외관에 큰 관심이 없다면 굳이 돈을 쓰지 않고도 게임을 즐길 수 있다.
이러한 특성은 모바일 게임을 하는 유저들 사이에서 ‘현질이 필요 없는 최고의 게임’이라는 찬사와 함께 입소문을 타기에 충분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형태의 게임이 수익을 낼 수 있을까 우려했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높은 인기에 힘입어 많은 수익을 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종의 박리다매 전략인 것이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최근에 인기를 끌고 있는 리니지M과 소녀전선은 아이템 판매 전략에서 서로 다른 접근을 하고 있다. 리지지M은 아이템에 따라 실력 차이를 만들어 소수의 사용자들에게 많은 수익을, 소녀전선은 아이템을 단순히 장식이나 취향을 위해 구매하게 하여 많은 사람에게 적은 매출을 기대하는 것이다.
게임의 실력이 아이템의 구매액에 따라 차이가 나는 것에 대해 논란이 있어왔다. 회사가 수익을 높이기 위해 그럴 수 있다고 하더라고, 우리 사회에 한때 유행했던 ‘유전무죄’가 떠올려져서 씁쓸하다. 돈만 있으면 게임에서도 무적, 즉 ‘유전무적’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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