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중고등학교가 학부모들에게 긴급 가정통신문을 보냈습니다. 드라마와 게임이 학생들에게 미칠 부정적인 영향을 걱정해서입니다. ‘루머의 루머의 루머(13 Reasons Why)’라는 드라마는 자살한 여고생이 죽기 전에 남긴 7개의 녹음 테잎을 통해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이유를 풀어갑니다. 성폭력과 집단 따돌림이 등장하고 보복과 두려움이 교차합니다. ‘푸른 고래 챌린지(Blue Whale Challenge)’라는 소셜 미디어 게임은 도전자에게 50일간 다양한 임무를 부여하고 마지막을 자살로 끝내게 합니다. 러시아를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이미 심각한 문제를 일으켰고, 미국에서도 게임에 몰두한 15살 소년이 목숨을 끊었습니다.

내용이 극단적일 뿐 아니라 청소년들의 자살 충동을 유발할 수 있어 학교가 주의보를 발령하고 학생들에 대한 보호 조처를 강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이게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는 없습니다. 이런 게 어디 한 두 개 뿐일까요? 빙산의 일각일 뿐입니다. 디지털 세상과 인터넷 바다, SNS 광장에는 훨씬 위험하고 해로운 것들이 넘쳐납니다. 쏟아지는 수많은 글과 사진, 영상, 게임 속에서 아이들은 어른들이 잘 알지 못하는 또 다른 세상을 만나고 있습니다.

디지털의 흐름은 아이와 부모, 학교 사이의 거리를 더욱 벌려놓았습니다. 아이가 인터넷 괴담이나 가짜뉴스에 빠져들고, SNS로 누군가에 의해 조종되고 따돌림을 당해도 문제가 불거지기 전에는 이런 사실을 미리 알기 어렵습니다. 무비판적인 디지털 소비가 일상적인 일이 되면서 발생한 일입니다. 어른들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닙니다. 하지만 사고력과 판단력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10대 청소년들에게는 치명적인 상황이 초래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특정 사안에 대한 개별적인 대응도 중요하지만 어릴 때부터 아이들에게 미디어에 대한 분별력을 키워주는 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미디어 리터러시(media literacy)는 다양한 매체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합니다. 기존의 신문방송은 물론 1인 미디어인 SNS와 인터넷 등 수많은 매체와 각양각색의 콘텐츠를 접할 때 이를 주체적으로 분별하고 판단해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해줍니다. 디지털 시민으로서 아이들이 갖추어야 할 덕목이고, 인터넷을 현명하게 사용하는 기술이며, 가상과 현실의 차이를 구별하는 도구이자, 콘텐츠를 비판적으로 만나게 하는 방법입니다. 미국에서는 지난 2006년 스토니 브룩 대학(Stony Brook University)이 뉴스 리터러시 센터를 설립해 교사와 학생, 일반인들을 위한 커리큘럼을 처음으로 만들었고, 이후 여러 대학과 기관들이 미디어 리터러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노던 콜로라도 대학(Northern Colorado University)의 ‘기술, 쇄신과 교육’ 프로그램은 학교와 교사들을 대상으로 합니다. 이 프로그램의 코디데이터인 미아 윌리암스(Mia Williams)는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일반 과목처럼 학교에서 필수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교사가 할 수 있는 한 가지 교육 방법을 제시합니다. 먼저 아이들에게 특정 광고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색체와 이미지, 활자체 등 모든 것을 감안해 이 광고를 평가하게 합니다. 그런 후에 아이들이 스스로 광고를 만들어보게 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아이들이 미디어를 더욱 잘 이해하고 비판적으로 접근할 수 있게 합니다.

미디어 리터러시 의무 교육이 미국에서 본격화 하기 시작했습니다. 2017년에 캘리포니아주 의회를 통과한 미디어 리터러시 법안은 교육 당국과 학교로 하여금 전문가와 교사, 학부모 등이 참여해 학생들의 미디어 분별 능력을 키우기 위한 실행 방안과 지침을 만들 것을 요구했습니다. 워싱턴주 의회도 미디어 리터러시‧디지털 시티즌십 법안을 승인했고, 비슷한 또 다른 법안들이 다른 여러 주에서 통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일부 이루어지고 있지만 체계를 갖추지 못한데다 신문 방송을 분석하는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문성을 갖춘 인력도 거의 없는 실정입니다. 법제화는 요원해 보입니다. 다가올 미래는 아이들을 더 큰 위험에 빠뜨릴 수 있습니다.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스마트폰을 쓰지 못하도록 강제하는 게 우선이 될 수 없습니다. 절제된 디지털 소비 방법을 가르치고, 비판적인 미디어 접근 능력을 길러주는 게 인공지능 시대의 달라진 교육의 첫걸음이 되어야 합니다.

사족을 덧붙이면 맨 처음에 언급한 문제의 드라마와 게임이 한국과는 무관하다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넷플릭스에 유료로 가입한 사람은 누구라도 시리즈로 된 이 드라마를 한글 자막과 더불어 무제한 시청할 수 있고, 죽음을 가져온다는 게임도 페쇄적인 소셜 네트워크로 운영되지만 인터넷을 뒤지면 찾아낼 수 있습니다. 미국의 학교들이 학부모에게 통지한 내용을 보면 아이들이 폭력적 행동과 심리적 변화, 체중 감소, 식욕 상실, 우울증 등의 징후를 보이면 심각한 경고로 받아들여야 하고, 대화를 많이 하되 반드시 아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일 것을 권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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