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의 교육자 켈리 갤러거Kelly Gallagher는 학교가 아이들의 독서 본능을 체계적으로 죽이는 현상을 “독서 살해(readicide)”라고 불렀습니다. 아이들이 책을 싫어하게 되는 것은 책이 재미없어서가 아니라, 책을 읽는 행위 자체를 피로와 의무로 바꾸어버리는 교육 때문이라는 진단입니다. 한국의 풍경은 이 개념이 교실을 넘어 사회 전체로 확장됐음을 보여줍니다.
학교는 오래전부터 책을 ‘교육의 재료’로 다뤄왔습니다. 무엇을 읽어야 하는지 정하고,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가르치고, 읽은 뒤에는 요약문·독후감·발표로 결과를 제출하게 합니다. 학원에 가면 구조는 더 노골적입니다. 책은 감동과 몰입의 대상이 아니라 논술 훈련의 교재가 됩니다. 아이는 책을 펴기도 전에 과제를 받습니다. 줄거리를 정리하고, 주제를 뽑고, 형식에 맞춰 생각을 써내야 합니다. 반복되는 과정 속에서 독서는 즐거움이 아니라 부담이 됩니다.
공교육의 한계를 비판하며 등장한 대안들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추천도서 목록은 여전히 어른이 만들고, 독서토론은 여전히 참여와 발언을 요구합니다. 느낌이 없으면 안 될 것 같고, 할 말이 없으면 뒤처진 것처럼 느끼게 됩니다. 아이는 책 앞에 홀로 선 독자가 아니라, 끊임없이 지도받고 점검받는 피교육자가 됩니다.
이런 통제는 학교와 학원 안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사회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독서 지도 체제처럼 움직입니다. 언론사가 ‘꼭 읽어야 할 책’을 소개하면 그 책은 곧 베스트셀러가 됩니다. 서점은 그 목록을 전면에 배치하고, 독자들은 그 흐름을 따라갑니다. 물론 그 과정에는 출판사의 마케팅이 자연스럽게 스며듭니다. 많이 소개된 책이 좋은 책이 되고, 많이 팔리는 책이 읽어야 할 책이 됩니다.
이쯤 되면 독서는 취향의 발견이 아니라 ‘승인된 교양’의 소비가 됩니다. 무엇을 읽을지 스스로 헤매고, 우연히 마음을 빼앗기는 경험은 사라집니다. 대신 놓치면 안 될 책, 따라가야 할 책, 읽었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하는 책이 자리를 차지합니다. 독서는 자유의 행위가 아니라 불안의 관리가 됩니다. 좋아해서 읽는 것이 아니라, 뒤처지지 않기 위해 읽는 일이 됩니다. 이것이야말로 학교 바깥에서 진행되는 또 다른 형태의 “독서 살해”입니다.
이제 요약과 분석은 AI가 더 잘하는 시대입니다. 줄거리를 정리하고 핵심을 뽑는 능력이 독서의 목표라면, 인간은 이미 경쟁에서 졌습니다. 그럼에도 인간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다른 곳에 있습니다.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비효율적인 몰입’과 ‘개인적 감상’ 때문입니다. 한 문장에 오래 머무는 일, 이유 없이 마음이 흔들리는 장면을 붙잡는 일, 읽고 나서도 말이 나오지 않는 침묵. 성과로 환산되지 않는 이 지체가 독서를 독서로 만듭니다.
아이들이 책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걱정하기 전에, 우리는 먼저 아이들에게 책을 좋아할 자유를 주고 있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책을 덮을 자유, 읽다 말 자유, 아무 말도 하지 않을 자유, 유행하는 책 대신 자기만의 책을 고를 자유 말입니다. 그 자유가 없다면 독서교육은 교육이 아닙니다. 읽는 기쁨을 길러주는 일이 아니라, 독서라는 이름으로 독서를 망치는 일에 더 가깝습니다.
독서를 사랑하는 사람은 대개 누가 시켜서 책을 좋아하게 되지 않습니다. 스스로 고른 책을 읽다가 뜻밖의 문장 앞에서 멈추고, 좋아하는 작가를 만나고, 재미없는 책은 덮어버리면서 독자가 되어갑니다. 취향은 그렇게 생깁니다. 아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추천도서 목록이 아닙니다. 누군가의 허락 없이도 책과 만날 수 있는 고요한 시간과 자유입니다. 책을 좋아하는 아이는 가르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방해받지 않을 때 비로소 자라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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