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전, 한국의 작은 언론사의 대표였던 나는 기자들에게 종종 이야기했습니다.
“인공지능이 기사를 쓰고 편집까지 하는 시대가 올 것이다. 그 시대를 대비해 새로운 언론인의 역할을 개발하고 준비해야 한다.”
그러나 당시 기자들의 반응은 회의적이었습니다. 저널리즘은 높은 수준의 지식과 비판적 사고, 그리고 공감 능력이 중심이 되는 영역이며, 기계가 이를 대체할 수 있다는 발상은 그들의 직업적 자존심을 건드리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10여 년이 흐른 지금, 그 예언은 현실이 되었습니다. NewsGPT와 같은 ‘사람 없는 언론사’가 등장했고, 기사 작성부터 편집까지 인공지능이 참여하는 저널리즘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세계적 권위를 가진 주류 언론사들마저 인공지능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16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뉴욕타임스의 변화는 특히 주목할 만합니다. 최근 뉴욕타임스는 뉴스룸 직원들이 카피 편집, 정보 요약, 코딩, 글쓰기에 인공지능 도구를 활용할 수 있도록 승인했습니다. 내부 AI 도구인 ‘에코Echo’ 를 도입해 기사와 브리핑을 요약하는 데 활용하기 시작했고, AI가 편집 및 수정 제안을 제공하며, 소셜 미디어용 홍보 카피와 헤드라인을 작성하도록 돕고 있습니다. 심지어 인터뷰를 진행할 때 스타트업 CEO에게 던질 질문까지 AI가 추천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물론 뉴욕타임스는 여전히 “저널리즘은 항상 전문 저널리스트가 보도하고, 쓰고, 편집할 것”이라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AI로 기사를 초안하거나 크게 변경하는 것뿐만 아니라, 유료 뉴스 콘텐츠를 무료로 볼 수 있도록 우회하는 기술, 제3자의 저작권 자료 활용, 명시적 레이블 없는 AI 생성 이미지 게시는 금지됩니다. 하지만 AI는 이미 저널리즘의 프로세스 안으로 깊숙이 들어왔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뉴욕타임스가 OpenAI와 마이크로소프트를 상대로 콘텐츠 무단 학습과 관련한 법적 분쟁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이러한 AI 도입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는 미디어 산업이 AI에 대해 가지는 모순적인 태도를 보여줍니다. 한편으로는 AI 기술이 자신들의 콘텐츠를 무단으로 학습한다고 주장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같은 기술을 자사의 작업 과정에 적극적으로 통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AI 자체가 아닙니다. 문제는 우리가 이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응하느냐에 있습니다.
AI가 뉴스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AI가 자동으로 생성한 기사가 편향성을 가질 경우, 그 책임은 누가 질까요? AI가 빠르게 뉴스를 요약하는 것이 편리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중요한 맥락과 인간적인 통찰이 사라진다면 저널리즘의 가치는 유지될 수 있을까요?
특히, 이러한 변화 속에서 저널리스트의 역할이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부족합니다. 어쩌면 미래의 저널리스트는 AI 시스템의 관리자이자 윤리적 가이드가 될지도 모릅니다. 데이터와 알고리즘 사이에서 인간적 판단과 윤리적 고려를 더하는 역할, 기계가 포착하지 못하는 사회적 맥락과 인간적 정서를 읽어내는 역할이 더욱 중요해질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주변의 저널리스트 중에 이런 역할을 수행할 준비가 된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내 경험에 나온 대답은 ‘부정적’입니다. 현재의 교육 시스템과 언론사 문화가 AI와 함께 일하는 미래형 저널리스트를 양성하는 데 한계를 갖고 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15년 전 예견했던 미래가 이미 현실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그 미래를 맞이할 준비조차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AI 시대의 저널리즘은 기술과 인간성의 섬세한 균형을 요구하지만, 그 균형점을 찾기 위한 진지한 고민과 준비는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입니다. 우리가 변화의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면, 저널리즘의 본질을 지킬 기회조차 사라질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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