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관적 인식 역량은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아기에게 장난감 공을 보여주다가 큰 책으로 앞을 가리면 공이 없어졌다고 생각하지만 여러 번 반복하면 공이 사라진 게 아니라 책 뒤에 여전히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과학이 아닌 직관이다.

제 아무리 인공지능이 발달하고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일까지 해낸다 하더라도 AI는 인간의 직관적 인식 역량을 갖출 수는 없다. 인간이 만든 알고리즘에 의존해 작동되는 기계일 뿐이기 때문이다. 직관은 인간과 AI를 구분 짓는 요소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앞으로 이런 구분이 모호해질 수 있게 될 지 모른다. 세계적인 과학학술지 네이처(Nature)에 ‘발달심리학에서 영감을 받은 딥 러닝 모델의 직관적인 물리 학습’(Intuitive physics learning in a deep-learning model inspired by developmental psychology)이라는 논문이 실렸다.

네이처 캡처

아기의 인지 발달 과정과 비슷한 형태로 학습하는 인공지능 ‘플라토’(PLATO)를 개발했다는 내용이다. 영국의 AI 연구소 딥마인드를 주축으로 한 연구팀의 성과다. 아기의 직관적인 인식 능력과 관련한 관련 수십 년간의 발달 심리 연구 결과가 기본 바탕이 되었다.

아기는 물체가 이러 저리 움직이고, 사라지고, 넘어지고, 상호 작용하는 것을 보며 물리적 직관 능력을 키우기 마련이다. 이러한 데이터를 집대성해 딥 러닝 모델을 개발한 게 플라토다. 그리고 연구팀은 물체의 움직임과 변화를 보여주는 28시간 분량의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플라토에게 보여주었다.

연구팀은 물체의 움직임을 보며 아기가 직관적인 인식 능력을 배우는 것처럼 AI도 같은 방식으로 학습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연구팀은 MIT 연구진이 개발한 데이터도 활용했다. 플라토가 이전에 본 적이 없는, 시각적으로 다른 모습이었지만 결과는 다르지 않았다.

네이처 캡처

시간이 흐를수록 플라토의 인지 능력은 발전했다. 물체의 움직임과 변화에 따른 예측을 할 수 있게 되었고, 그 정확성이 더욱 높아졌다. 아기의 성장과 같은 모습이다. 물체의 영속성(permanence)과 견고성(solidity), 연속성(continuity), 그리고 불변성(unchangeableness)과 방향 관성(directional inertia)은 아기 때부터 얻게 되는 데, 이것을 인공지능도 따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번 연구 결과로 물리적 인식 능력에 대한 인간과 AI의 간극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그 가능성의 길을 열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최근 중국에서 사상 교육을 받는 공산당원의 표정과 뇌파 등으로 충성도를 측정하는 인공지능 기술이 개발되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AI가 인간을 감시하는 섬뜩한 모습이지만 인공지능이 인간의 생각과 마음을 똑같이 답습할 수는 없다. AI는 여전히 기계이고 도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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