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별과 장애, 나이와 성적 취향 등을 이유로 한 부당한 차별을 금지하는 ‘차별금지법’을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반면 미국은 최근 낙태 문제가 첨예한 이슈로 등장했다. ‘여성의 선택권 존중’ 대 ‘태아의 생명 보호’로 국론이 쪼개져 극심한 대립 양상을 보이고 있다.

미국 연방 대법원은 임신 15주 이후 낙태를 금지하는 미시시피 주법에 대한 위헌 결정 여부를 앞두고 있는데 연방법보다 주법을 우선하는 결정문 초안이 사전에 유출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초안은 1973년의 로 대 웨이드(Roe v. Wade) 판결을 뒤집는다.

1973년의 결정으로 태아가 자궁 밖에서 살아 남을 가능성이 있는 시기인 출산 3개월 전까지는 임신 상태를 벗어날 권리가 인정되었다. 그리고 낙태를 금지한 주법은 효력을 잃었다. 그런데 이를 거꾸로 돌리는 이번 결정문 초안은 보수적인 미 대법원 인맥 구성상 현실화 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현재 13개 주가 낙태를 금지하고 있다. 대법원의 새로운 결정이 나오면 26개 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특히 텍사스와 오클라호마는 낙태를 돕는 것도 범죄로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낙태 금지가 또 다른 문제를 부르면서 전혀 이질적인 IT 분야로 불똥이 튀고 있다.

대법원의 결정이 나오면 낙태가 금지된 주 정부는 불법 낙태에 대한 단속과 처벌에 나서게 된다. 디지털 시대에 검색 기록이나 위치 데이터, 문자, 소셜 미디어, 디지털 기기 등은 불법 행위에 대한 법 집행기관의 핵심 증거로 이용된다. 임신과 낙태 관련 개인의 사생활 IT 정보도 예외가 아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저소득층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병원에 찾아가는 대신 우편으로 낙태약을 처방할 수 있게 했지만 이게 불법 행위의 증거로 작용할 수 있다. 먹는 낙태약에 관한 정보와 교육을 제공하는 웹사이트인 플랜씨(Plan C)는 비상이 걸렸다.

플랜씨 홈페이지 캡처

IT 관련 기업들도 예외가 아니다. 사법 기관의 개인 정보 요구가 급증할 수 있다. 낙태 수술을 위한 임신부의 우버 택시 이동 기록이나 산부인과 병원이나 낙태 관련 검색 기록, 생리와 피임 관련 앱의 정보도 불법 행위를 단속하는 법 집행기관의 정당한 업무가 되기 때문이다.

한국의 차별금지법처럼 미국의 낙태 금지는 보수와 진보의 이념 대결 양상으로 치닫고 있고, 11월 중간선거의 정치적 구호가 되고 있다. 50여년간 이어온 낙태 관련 법적 변화 조짐은 미국 사회에서 다양한 대응 방안까지 나오면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낙태가 금지된 주에서 여성들은 원정 낙태에 나서야 한다. 아마존은 자사 직원들의 낙태와 관련 치료를 위해 연간 4천 달러의 여행 경비를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씨티그릅도 낙태를 위해 거주지를 떠나는 직원에게 여행 경비를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냈다.

차량 공유업체 리프트와 우버는 낙태를 위해 차량을 이용한 임신부를 도왔다는 이유로 소송을 당할 경우 운전자를 보호하기 위한 기금을 마련하기로 했다. 클라우딩 컴퓨터 회사 세일즈포스(Salesforce)는 강력한 낙태법을 만든 텍사스를 떠나기 원하는 직원과 가족을 돕기로 했다.

디지털 디펜스 펀드 캡처

낙태의 권리와 개인 사생활 보호를 위해 설립된 디지털 디펜스 펀드(Digital Defense Fund)는 낙태금지법에 대응하는 지침을 만들었다. 구글이나 소셜 미디어에서 개인화 된 광고 선택을 해제하고, 위치 공유를 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낙태 관련 검색도 개인정보를 수집하거나 제3자에게 허용하지 않는 웹브라우저를 이용하라고 권유한다.

낙태에 대한 권리나 태아의 생명 보호는 이념적 종교적 입장 차이가 얽혀 있다. 이게 50여전 전의 상황과 다른 점은 그때처럼 단순하지만 않다는 데 있다. 디지털 사회의 편리함은 개인 정보 제공의 대가로 누리는 혜택이다. 다른 모든 것들처럼 낙태 문제도 거대한 디지털의 그물망에 연결되어 있고, 그에 따른 위험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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