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확산의 기폭제로 기대되던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가 오히려 민주주의에 역행하고 민주주의를 뒷걸음질하게 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국가와 정권 차원에서 집권을 연장하고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를 악용한다. ‘디지털 권위주의’(Digital authoritarianism)가 등장한 배경이다.

중국은 디지털 기술을 이용한 감시와 억압, 조작, 검열, 그리고 정치적 통제를 하는 대표적인 나라로 꼽힌다. 얼굴인식 같은 첨단 기술이 인권 탄압 수단으로 활용되고, 권력에 의해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의 원격 조정이 이루어진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의 특정 내용이 순식간에 사라졌다는 언론 보도를 수시로 접하게 된다.

유투브를 운영하는 구글은 정부 차원의 콘텐츠 삭제 요구 건수를 6개월마다 공개하고 있다. 2020년 12월말 현재 게시물 삭제 요구가 가장 많은 나라는 러시아다. 그 숫자가 압도적이다. 2위인 터키가 14,231건인데 러시아는 9배나 많은 123,606건이다. 한국은 인도, 미국, 브라질에 이어 5위로 5,330건이다.

BBC 캡처

러시아의 미디어 규제 감독 기구인 로스콤나드조로(Roskomnadzor)는 아동 포르노나 자살, 마약, 극단주의, 가짜뉴스 등이 포함된 게시물을 소셜 미디어가 의무적으로 삭제하도록 하고 있다. 이견이 있을 경우 소송으로 이어진다. 영국 BBC가 삭제 관련 400여건 소송 게시물을 조사한 결과 아동 포르나 약물 관련이 9건, 자살 관련은 12건에 불과했다. 대부분 특정인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트위터 121건 가운데 70건, 페이스북 115건 가운데 94건, 인스타그램 88건 가운데 61건, 유투브 56건 가운데 28건, 틱톡 13건 전부, 이게 다 한 사람과 관련되어 있다. 러시아의 대표적 야권 지도자이자 푸틴 대통령의 최대 정적인 알렉세이 나발리다. 러시아 정부가 나발리를 옹호하거나 지지하는 게시물을 국가안보에 위협이 되는 극단주의로 분류했고, 삭제 대상이 되었다.

BBC 캡처

‘디지털 권위주의’를 거론할 때 흔히 중국을 말한다. 북한처럼 일당독재 사회주의 체제로 국가가 운영되고 있는 만큼 새삼스럽지 않다. 구글, 유투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 심지어 카카오톡까지 우회하는 편법을 쓰지 않는 한 중국에서 사용할 수 없다.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 게시물을 두고 글로벌 IT 업체와 마찰을 빚을 일이 없다.

러시아는 대통령의 권한이 막강하지만 엄연히 민주국가다. 헌법에 삼권분립이 명시되어 있다. 의회는 양원제를 채택하고 있고, 다당제를 보장받는다. 민주적인 체제와 질서가 확립되어 있지만 인터넷이나 소셜 미디어 게시물은 늘 감시의 대상이다. 국가 안보와 공공의 이익을 넘어 비판을 차단하고 권력을 공고히 하는 데 사용된다.

누구나 발언하고 누구나 참여 가능한 민주 광장을 지향하던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가 통제의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 굳이 감시인을 두지 않더라도 특정인의 일거수일투족을 들여다보고, 원하는 대로 여론을 만들기도 하고, 덮기도 한다.

‘가짜뉴스와 허위정보를 퍼뜨리고, 악성 댓글을 조장하고, 극단의 편가르기를 부추기는 것은 민주주의 선진 국가에서도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일이 되었다. 정책 대결이 아닌 이미지 선거가 확산하는 경향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정치에 스며든 ‘디지털 권위주의’는 이제 특정 국가를 지칭하는 용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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