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가전 시장을 석권한 삼성과 엘지를 말할 때 흔히 일본의 소니와 비교한다. 세계 최초의 휴대용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생산하고, 세계 최초로 디지털 카메라를 상용화하고, 수십년간 고선명 프리미엄TV의 대명사로 군림하고, 워크맨으로 세계를 열광하게 만들고, 노트북 시장을 주름잡던 소니의 존재감이 미미해지고 그 자리에 우리 기업이 들어섰기 때문이다.

삼성과 엘지는 금자탑을 이루었고, 소니는 뒤안길로 밀려났다. 거실에서도 책상에서도 이제 소니 제품을 거의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이미 판도가 바뀐 가전 시장에서 소니가 옛 영광을 되찾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소니는 플레이스테이션 게임기로 겨우 명맥을 유지하는 회사처럼 보였다.

국제전자제품박람회 2022 CES에 소니가 전기차 SUV 모델을 선보였다. 그리고 전기차 상용화에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전기차 사업 진출을 위한 자회사 ‘소니 모빌리티(Sony Mobility Inc.)’를 설립한다는 소식도 전했다. 전통적인 자동차 메이커도 아니고 IT 기술기업도 아닌, 추억의 기업 소니의 이런 도전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소니 전기차 VISION-S

소니는 자신만의 경쟁력이 있다고 밝혔다. 게임과 영화 등 콘텐츠 사업에서의 영향력을 전기차에 융합하겠다는 것이다. 전기차의 핵심 기술은 자율주행과 배터리다. 이와는 거리가 먼 소니가 어떻게 전기차를 만들겠다는 것인지 구체적인 설명은 없었다. 운전할 필요없이 차가 스스로 움직이는 전기차 시대, 차 안에서 마음대로 게임과 영화를 즐길 수 있게 하겠다는 복안인지 추측할 뿐이다.

소니는 2021년 4월에서 2022년 3월까지 1년간의 영업이익 예상액을 전년보다 7% 증가한 1조400억엔(약 10조8000억원)이라고 발표했다. 1946년 창사이래 75년만에 처음으로 1조엔을 돌파하게 된다. 10여년전 소니는 분명 망해가는 기업이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옛날 기업으로 불리기를 거부한다.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로 다시 일어나 전성기 시절로 돌아왔다.

2021년 7~9월 기준 소니의 게임과 영화, 음악 등 소프트웨어 매출은 전체 매출액의 49.7%였다. 영업이익은 전체의 51.8%로 절반을 넘었다. 소니는 엔터테인먼트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굳건히 자리잡았다. 여기서 나오는 콘텐츠를 바탕으로 발상의 전환을 통해 융복합 시대의 전기차 시장을 두드리고 있는 것이다.

소니 픽처스 홈페이지 캡처

또 하나 주목할 게 있다. 이미지센서는 카메라 렌즈로 들어온 빛을 디지털 신호로 바꿔주는 시스템 반도체의 한 종류다. 사물의 정보를 파악해 뇌로 전달해주는 사람의 눈 같은 역할을 한다. 디지털 카메라나 스마트폰은 물론 자율주행차에도 필수적인 기술이다. 카메라 광학 기술이 축적된 소니는 세계 이미지센서 시장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소니의 전기차를 무시할 수 없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전기차는 전통적인 완성차 업계가 아닌 테슬라가 시장을 선도했다. 기술 기업들이 앞다퉈 뛰어들었고, 유명 자동차 메이커들도 너나 할 것없이 이 대열에 합류했다. 여기에 한때의 가전 제왕, 그리고 지금은 엔터테인먼트 기업 소니도 도전장을 내밀었다. 내연차의 종말이 다가오면서 전기차 시장은 각양각색 기업의 치열한 각축전이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사실, IT 기술과 콘텐츠, 데이터가 세상을 이끄는 지금 특정 제품으로 업계를 나누고 구분하는 것이 모호해졌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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