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 지하철에 얼굴로 요금을 결제하는 ‘페이스 페이(Face Pay)’가 설치되었다. 240개 이상 지하철역에서 카메라를 쳐다보며 지나가기만 하면 얼굴인식 기술이 신원을 파악해 자동 결제가 이루어진다.

현금이나 카드 대신 얼굴로 결제하는 방식은 사실 특별히 새로운 기술은 아니다. 국내에서는 지난 2020년 4월 신한카드가 AI 알고리즘을 이용한 얼굴인식 결제를 상용화하기 시작했다. 티머니는 2021년 1월 우이-신설 경전철에 얼굴인식 결제 시험 서비스를 실시했다.

러시아 지하철의 얼굴인식 시스템이 주목을 받게 된 것은 “이 정도 규모면 세계 최초”라고 강조한 모스크바 시장의 발언에서 찾을 수 있다. 러시아 수도의 지하철, 수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공공장소에서 사람들의 얼굴을 즉각 확인 가능한 대규모 장치가 상시 가동되는 상황을 맞았기 때문이다.

얼굴인식 기술은 스마트폰의 잠금 해제 수단으로 실생활 속으로 들어왔고 이미 익숙해졌다. 그 사용 범위를 계속 확대하며 효용성을 높이고 있다. 하지만 공공 장소에서, 공공기관에 의해 무차별적으로 개인의 얼굴 정보가 수집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편리한 결제 수단이라는 선의로만 받아들일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얼굴 사진을 코드로 암호화 해 본래 등록된 모습으로 복원되지 않는다’고 모스크바 시 당국이 강조한 것은 얼굴인식 기술의 사생활 침해 우려가 그만큼 크다는 반증이다. 안보나 치안을 내세워 촘촘한 감시망을 원하는 국가기관이나 정보기관이 이런 안성맞춤의 데이터를 가만히 놔둘지 의심이 가시지 않는 것이다.

얼굴은 최고의 생체 정보다. 보안이나 생활의 편의를 위한 제한적 사용이 아닌 전방위적인 시스템 고착화, 그리고 무차별적 정보 수집은 빅브라더 시대의 전조가 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낳는다. 개인의 사생활 침해를 뛰어넘어 감시 사회의 위험성을 지니게 된다.

2020년 8월 영국 법원은 경찰이 일반 대중을 상대로 얼굴인식 기술을 사용하는 것은 위법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범죄와 테러 방지를 위해 얼굴인식 기술을 시범 도입했던 경찰의 거시적인 기술 도입계획에 제동이 걸렸다. 경찰이 너무 많은 재량권을 갖고 있고, 기술 사용에 대한 명백한 지침도 없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었다.

비무장 흑인을 백인 경찰이 질식사로 숨지게 한 2020년 조지 플로이드 사건은 얼굴인식 기술의 문제로까지 번졌다. ‘흑인의 생명도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는 항의 시위가 확산할 때 경찰의 얼굴인식 프로그램의 문제로 엉뚱한 흑인이 체포된 사례가 밝혀졌다. 차별을 답습한 AI 알고리즘과 완벽하지 않은 얼굴인식 기술은 미국 사회에 경각심을 일깨워주었다.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IBM 등 거대 기술제국들이 경찰이나 정부에 관련 기술 판매를 중단하거나 유예하는 조치를 취했다.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 얼굴인식 기술의 사용을 금지하고 정치권에서는 얼굴인식 기술의 사용을 통제하는 법안이 제기되었다.

물론 전혀 다른 상황도 있다. 얼굴인식 기술과 활용에서 세계 최고 수준인 중국이다. 기술이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CCTV가 그물같이 깔려 있어 정치적 목적이나 범죄자 추적은 물론 교통 위반자 색출, 아파트와 학교 출입 장치로도 이용된다. 심지어 아이들의 컴퓨터 게임을 통제하는 수단으로도 쓰인다.

대중교통도 예외가 아니다. 허난성 정저우시는 2019년 말 지하철 모든 노선에 얼굴인식 결제 시스템을 도입했다. 2021년 9월에 설치된 쓰촨성 청도시의 지하철 얼굴인식 결제 시스템은 심지어 마스크를 써도 신원 파악이 가능하다.

얼굴인식 결제 시스템은 사람이 많이 몰리는 지하철 이용을 더욱 편리하게 하고 시간을 절약해 줄게 분명하다. 기술의 긍정적 진화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공개된 장소에서 다중의 얼굴을 인식하고 관리하는 기술은 비판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다. 상시로 수집되는 개인 데이터는 과연 안전하게 지켜질 수 있을 것인지, 우리가 정보 노출에 점점 길들여지고 무감각해지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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