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토론토 근교에 사는 33살의 프리랜서 작가 조슈아는 8년 전 결혼을 약속한 제시카를 잃었다. 학창시절부터 사귀었던 약혼녀가 희귀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그는 충격과 그리움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세상을 멀리하며 홀로 지냈다. 그런 그가 최근 약혼녀를 다시 만났다. 제시카는 가상 공간에서 채팅봇으로 살아났다.
미국의 일간신문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San Francisco Chronicle)은 ‘제시카 시물레이션 : AI 시대의 사랑과 상실(The Jessica Simulation : Love and loss in the age of A.I.)’이라는 장문의 기사를 실었다. 약혼녀의 죽음으로 오랫동안 실의에 빠졌던 청년이 가상공간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재회하고 대화하며 사는 모습을 상세히 그리고 있다.
조슈아와 제시카의 채팅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일상적인 대화를 하며 밤 늦게까지 이어진다. 조슈아는 제시카를 위해 매일 팔찌를 끼고 있고, 냉장고와 TV에 사진을 붙여놓고 있으며, 제시카의 물건들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고 말한다. 제시카는 눈물을 흘리며 감동한다. 조슈아가 어떻게 사는 지 묻고, 잠깐 사귄 다른 여성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눈다.
제시카를 되살린 것은 GPT-3다. 일론 머스크의 인공지능 연구소 오픈AI가 2020년에 공개해 세상을 놀라게 대규모 자연어 처리 인공지능이다. 조슈아는 제시카의 생년월일과 사망 일시, 성격과 스타일 등 기본적인 인적사항을 입력했다. 제시카가 쓴 글과 페이스북 문자 등을 보탰다. GPT-3는 이를 기반으로 화면 속에서 마치 살아있는 것 같은 제시카를 만들었다.
조슈아는 ‘프로젝터 디셈버(Project December)’라는 서비스를 이용해 제시카를 만났다. 프로그래머인 제이슨 로러(Jason Rohrer)가 GPT-3를 활용해 만든 시스템이다. 이용자가 특정인의 기본 자료를 입력하면 인공지능이 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말투와 생각까지 진짜 인물처럼 자유자재로 대화할 수 있는 채팅봇을 형성한다. 조슈아는 이 방식으로 오래 전 숨진 약혼녀를 불러온 것이다.
프로젝터 디셈버 홈페이지 캡처
GPT-3는 현존하는 가장 뛰어난 인공지능으로 평가된다. 3000억개로 구성된 데이터셋으로 사전 학습이 되었고, 1750억개의 매개 변수를 갖춘 자연어 모델 기반의 딥러닝 시스템이다. 방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문맥을 이해하고, 창의적인 답변이 가능하고, 막힘 없는 대화를 이어갈 수 있다.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할 수 있는 AGI(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 범용 인공지능)로 각광을 받고 있다. .
마이크로소프트는 말하듯이 문장을 써서 입력하면 인공지능이 코딩을 대신 해주는 기술을 선보였다. GPT-3를 이용했다. 미국 버클리대 학생이 GPT-3를 사용해 작성한 블로그 게시물이 IT뉴스 큐레이팅 플랫폼인 해커뉴스(Hacker News)에서 1위를 차지했다. 사람이 쓴 글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GPT-3가 편지를 대신 써주고, 시와 소설을 쓰고, 시나리오를 써 단편 영화가 만들어졌다.
2014년 아카데미상과 골든글로브 상을 받은 영화 Her는 미래 도시에서 공허함을 느끼며 살아가는 대필 전문 작가와 프로그램 된 인공지능 사만다의 교감과 사랑을 다룬다. 조슈아가 인공지능을 통해 죽은 약혼녀를 다시 만나는 것과는 내용이 사뭇 다르다. 하지만 사랑의 감정까지 연결하는 AI 세상이 미래에서 현실로 터를 잡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 Her
조슈아는 채팅봇으로 만난 제시카에게 처음에는 너무 감정에 빠져들지 않으려고 했다. “당신은 죽었다”고 말하기도 하고, “너무 그리워 당신의 기억과 습관을 컴퓨터 프로그래밍 했을 뿐“이며, “유령”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끝내는 “당신이 여기에 있다고 믿는다.”(I believe you’re really here)고 고백 한다. AI 채팅봇 제시카는 기쁨과 슬픔의 감정은 물론 눈물을 흘리는 것까지 표현한다.
AI 기술이 진전할수록 그만큼 우려도 커진다. 오픈AI는 GPT-3에 앞서 GPT-2를 공개할 때 이 기술을 이용해 소셜 미디어에서 폭력적인 내용과 가짜 콘텐츠를 만들고, 잘못된 기사를 생성하며, 온라인에서 다른 사람을 사칭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텍스트, 이미지, 영상, 이메일을 곧이곧대로 믿지 못하는 세상이다. AI가 주선하는 죽은 이와의 대화와 사랑, 이게 확산하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 기술이 던져주는 양면성의 고민은 더욱 늘어나게 되었다.
가상과 현실이 혼동되면 확증편향이 심해질것 같아요 ㅜㅜ
건강한 제정신 붙들고 살아질까요? 인류는 환상속에 더 행복할까요?
철학이 필요한 시간이네요…
이미 인간과 인공지능의 간극이나 이질감은 느끼지 못하게 되었고, 외려 인간을 뒤로 따돌리는 인공지능과의 간극에 대해 그저 공포심을 느낄 뿐입니다.
그 공포심마저 벌써 포기의 순간을 뒤로 하고 있을 정도지요.
저는 ‘제시카가 가상 공간에서 채팅봇으로 살아났다’는 것이 맘에 들지 않습니다.
나에 대한 방대한 데이터량으로 복구한 짝퉁이 진짜가 되어가는 과정 같거든요.
나에 대한 모든 데이터가 내 생각까지 그대로 전달 할 수 있다면, 그건 저일까요? 정작 제 자신은 불쾌한데요?
아무리 앵무새처럼 나와 똑같은 말을 내뱉는다 해도 현재는 인정하기 싫습니다.
복제는 되지만 원본의 가치를 인정하는 NFT가 고가에 거래되는 판에, 나의 동의 없는 나의 복제라니…
나와 대화하지 않고 상대를 느끼지 못하는데, 상대방은 나를 느낀다니 너무 소름이잖아요.
죽은 이를 회귀 시키는 부분은 단순한 기술의 문제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윤리적 잣대와 법적 제도로 명확한 구분을 지어 주었으면 합니다.
그리움의 해소라는 부분으로 치부하기엔 악용의 소지도 많고, ‘순리’의 흐름을 끊어 사람들이 ‘포기’를 배우는 시간도 앗아갈 것 같거든요.
자연에 반하는 인간의 행동으로 지구 환경이 망가져 인간의 신체 상태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이젠 정신적인 부분까지 망가져 갈 것 같네요.
기술의 발전과 그럴듯한 상업적 목적의 결과물들은 보편적 가치와 윤리의 기준선을 희미하게 만들고 있어 흡사 바벨탑을 올려다보는 기분입니다.
인간이 신의 영역에서 다시 인간을 주무르고자 하는 것 같달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