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가 모든 기술의 핵심인 시대를 살고 있다. 스마트폰, 자동차, 냉장고, TV 등 생활의 편의를 증진시키는 모든 기기에서 반도체는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 반도체는 또한 인공지능과 5G, 자율주행 같은 첨단 기술에 다리를 놓는다. 더 작고 더 강력한 반도체 칩을 만드는 게 시장의 경쟁력이 되었고, 놀라운 속도전이 계속되고 있다.

반도체의 이런 강력한 파워는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 하며 국제 질서에도 영향을 미친다. 미국과 중국 두 강대국의 신냉전 패권 다툼에서 반도체는 그 중심에 서있다. 그 본보기 중 하나가 네덜란드의 ASML이다. 반도제 칩 제조 장비를 만드는 업체다. 세계 유수의 반도체 칩 제조사들이 모두 이 회사의 장비를 사용한다. 2019년 트럼프 대통령 시절 미국은 이 회사에서 개발한 첨단 장비를 중국에 수출하지 못하도록 막았고,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반도체는 초소형 고효율 칩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하고 있다. 이를 이끌고 있는 게 독보적인 ASML 장비다. 수십년의 연구 끝에 자외선을 이용한 반도체 칩의 자외선 석면 인쇄 기술을 개발했다. 40개의 컨테이너와 20대의 트럭, 3대의 보잉 747 수송기가 운반에 동원돼야 할 만큼 거대한 규모의 이 장비 가격은 1억 5천만 달러가 넘는다.

ASML 홈페이지 캡처

ASML은 삼성과 대만의 TSMC 등 세계 주요 반도체 회사에 100개 이상의 이 첨단 장비를 팔았다. TSMC는 이 장비를 활용해 애플이 최신 아이폰용으로 설계한 프로세서를 만든다. ASML은 중국에는 신제품이 아닌 구제품만 팔고 있다. 거대 수출 시장이 부분적으로 막혔는데도 ASML이 승승장구 하는 것은 독점적 기술력 때문이다. 2021년 수익 증가율은 무려 40~50%로 예상되고 있다.

TSMC 홈페이지 캡처

이런 장비를 직접 만들어 반도체 독립을 꾀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중국은 기술 자립에 나섰지만 그리 간단하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먼저 이 기술이 다국적 복합적이라는 데 있다. ASML의 반도체 칩 제조 장비는 독일의 광학 전문 기업인 자이즈(Zeiss)를 비롯해 미국과 일본의 관련 기업 기술이 참여하는 협업 체제를 갖추고 있다. 독자 행보는 그만큼 어려운 기술이라는 뜻이다.

설사 막대한 자금과 시간을 투자해 비슷한 장비를 만든다 해도 가격 대비 효용성이 현저히 떨어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실제로 중국은 10년째 이런 노력을 계속하고 있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디지털 세계의 근간을 이루는 반도체의 장비 제조와 칩 생산, 그리고 제품에 이르기까지 한꺼번에 이루어지는 한 국가의 반도체 올인원(all-in-one) 자급자족 시스템이 사실상 비현실적이라는 뜻이다.

ASML 홈페이지 캡처

그런데 서방 세계와 손잡고 반도체 분야에서 중국에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미국조차 반도체 독립을 꿈꾸고 있다. 맞상대인 중국의 위협적인 기술력 증강에 대처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미 의회는 반도체 산업 발전을 위해 5년간 520억 달러를 투입하는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반도체 칩의 지나친 대만 의존도를 탈피해야 것이다.

사실 깊이 들여다보면 이것도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의 연장선상에 있다. 대만을 자국 영토로 여기며 국제사회에서 고립시키려는 중국의 전략이 미국의 이익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최근 대만에 각별한 애정을 보이고 있는 미국의 태도에는 대만의 반도체 칩 생산 역량과 이에 의존하는 미국의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대만이 중국의 수중에 들어가는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서라도 반도체 자립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이게 미국 내에서 설득력을 얻고 있다. 반도체는 일상 생활뿐만 아니라 첨단 무기에도 들어가는 핵심 부품이다. 미 국방부가 앞장서 반도체 자급자족과 중국에 대한 수출 금지를 주장하는 게 그런 연유일 것이다. 반도체 기술은 디지털 세상을 뒷받침한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각 국의 첨예한 이해 관계와 역학 관계를 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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