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동을 일으킨 사람들’이라는 뜻의 ‘Faces of the Riot’이라는 웹사이트(https://facesoftheriot.com/#)에는 수배자 전단 같은 수많은 얼굴 사진들이 바둑판식으로 나열되어 있다. 무려 6천장에 이른다. 페이지 맨 앞에는 이 사람들을 개인적으로 조사하지 말고 FBI에 신고해달라면서 연결 링크를 걸어 놓았다. 사진 속 인물들은 미국 연방 의사당 난입과 관련된 이들이다.
미 사법당국은 의사당 난입 사건을 집중 조사하고 있다. 하지만 이 웹사이트는 FBI나 수사기관에서 만든 게 아니다. 한 대학생이 뜻을 같이 하는 이들과 만들었다. 익명을 요구한 그는 IT매체 와이어드(Wired)와의 인터뷰에서 폭동에 가담한 모든 사람들은 책임을 져야한다고 강조한다. 정의감이 그로 하여금 이런 고발 사이트를 만들게 한 것이다.
사진의 출처는 팔러(Parler)라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다. 표현의 자유를 강조하지만 인종차별과 극단주의자들의 안식처가 되었고, 의사당 난입 사태 당시 구심점 역할을 하면서 이후 구글과 애플이 자사의 앱스토어에서 삭제했고, 아마존이 호스팅을 중단했다. 폭력 사태가 발생한 1월 6일 이 SNS에 827개의 관련 동영상이 올라왔는데 해킹을 통해 이것을 입수했고, 여기서 사람의 얼굴을 추출한 것이다.
수많은 군중이 등장하는 42기가바이트 분량의 동영상에서 수작업으로 사람의 얼굴을 일일이 가려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 첨단 기술의 도움을 받았다. 구글의 오픈소스 기계학습 플랫폼인 텐서플로(Tensor Flow)와 얼굴인식 소프트웨어인 드립(Dlib)을 이용해 동영상에서 2만개의 얼굴을 찾아냈다. 그리고 중복된 것을 다시 가려내 6천장을 고발 사진으로 올린 것이다.
Faces of the Riot 캡처
미 의사당 난입 사건은 미국은 물론 전세계의 공분을 자아냈다. 민주주의에 저항해 폭력을 자행한 행위는 처벌받아 마땅하다. 직간접적으로 폭동에 간여한 이들을 찾아내 단죄하려는 노력은 정의로운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 하지만 이게 과연 옳은 방식인가 하는 데는 또 다른 논란이 따른다.
해킹은 합법적이지 않다. 수단이 목적을 정당화 할 수 없다. 얼굴이 공개된 이들은 난입 사태의 경중이 가려진 이들이 아니다. 단순 시위 가담자도 있고 주도적으로 폭력을 행사한 이가 있으며, 취재진도 있다. 공개된 동영상 안의 얼굴 사진은 결코 사전에 동의를 받은 게 아니다. 프라이버시 침해로 간주할 수 있다.
더욱 위험한 것은 정의를 내세운 기술의 무분별 사용이다. 얼굴인식 기술은 그 불완전성 때문에서 극히 제한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설사 사법기관이라 할지라도 엄격한 통제를 받는다. 미국 의 회에서는 사용 금지 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그런데 이게 공개된 프로그램을 통해 누구나 쉽게 활용할 수 있는 단계로 발전했다. 동영상에서 얼굴 사진만 추출했지 신원을 밝힌 것은 아니라고 항변하지만 그 자체가 위험하다.
국가 권력은 국민의 안녕 질서를 보장할 의무가 있다. 광범위한 정보에 접근하고, 다양한 감시활동을 벌인다. 첨단 기술은 여기에 더욱 막강한 힘을 부여한다. 시민사회가 기술의 사용을 꼭 필요한 부분에만 적용하도록 견제하는 것은 권력이 남용되어 정적을 제거하거나 국민을 억압할 수 있는 도구로 변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 의사당 난입 관련자들의 얼굴이 무차별로 공개되었다. 사법당국이 아닌 일반 시민에 의해서다. 누구나 편리하게 잘 활용할 수 있도록 공개한 첨단 기술이 정의를 내세운 심판 도구로 활용되었다. 방역 지침을 누누이 어기고 집회를 계속한 종교단체에서 코로나19 환자가 많이 발생했다. 모두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이 단체를 누군가 해킹해 집회 영상을 수집하고 얼굴인식 기술로 참석자들의 사진을 추출해 공개한다면 의로운 일일까? 첨단기술은 실정법과 국민의 법 감정, 그리고 사용 범위를 둘러싼 새로운 논란거리를 제기한다.
이미 밴드에서 본 글이지만, 정말 씁쓸해요.
그런데, 굳이 따지자면 기술의 발전이 대규모의 마녀사냥을 가능하게 했을 뿐, 마녀 사냥식 여론전은 늘 있어온 것 같습니다.
정보가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정보가 넘치면 넘치는 대로, 결국 받아들이는 인간의 생각에 따라 결과물이 달라지니까요.
지금도 판사 사찰 문건을 보면 판사에 대한 정보 중에 ‘여론에 휘둘리는 편’ 이라는 식의 문구가 있었잖아요.
법리에 따른 판결을 해야 하는 판사도 결국 주위 눈치를 보게 만드는 게 인간이란 종족의 특성 같아요.
인공지능에 따른 여론몰이전이 아니어도, 어차피 이미 미디어도 그런 식으로 대규모로 정치적으로 잘 활용되어 왔고, 현재 진행형이고…
다만 일반인의 핀셋화가 가능해진 점이 좀 다른 것 같아요. 대규모의 일반인을 대규모로 집어내어 법리 없는 판결을 내릴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요.
굳이 결과물을 인공지능이나 발전하는 기술들의 핑계를 댈 순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