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팬더믹은 지구촌의 생활 환경을 순식간에 바꾸어버렸다. 전세계 곳곳에서 국경이 폐쇄되고, 학교와 직장이 문을 닫고, 여행과 외출이 금지되고, 마스크와 생필품이 동나고, 공포가 만연하고, 가짜 정보가 난무하고, 사람들은 문밖에 나서기를 꺼려한다. 자의반 타의반의 이른바 방콕 사태가 일상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예전 같으면 전혀 주목받기 힘든 엉뚱한 창의력, 화장지 계산기가 등장했다.

우리나라의 마스크 전쟁처럼 미국과 유럽에서는 휴지와 화장지 싹쓸이 사재기 현상이 벌어졌다. 뉴스가 보여주는 텅 빈 상품 진열대는 상황의 심각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영국 유통업계가 사재기 중단을 호소하며 1인당 살 수 있는 화장지 개수를 제한했고, 미국은 백악관이 나서 대책을 검토하고 있다. 흐름을 놓치거나 소외되는 것에 대한 불안 증상인 포모(FOMO, Fear of Missing) 증후군이 너도나도 상점으로 달려가게 만들었다.

텅빈 진얄대, sns 캡처

미국의 온라인 매체 더버지(The Verge)는 ‘https://howmuchtoiletpaper.com/’이라는 웹사이트를 소개했다. 이 곳에 들어가면 첫 화면에 ‘코로나 팬더믹 상황에서 생존 가능한 화장지 양에 대한 간단한 계산기’(The simple calculator for how much toilet paper you need to survive the pandemic)라는 설명이 나온다. 계산 방법은 간단하다. 집에 몇 통의 화장지가 있는지, 하루에 몇 번 화장실에 가는지 입력하면 화장지를 얼마 동안 쓸 수 있는지 나온다.

가령 10통의 화장지가 있고, 하루 세 번 화장실에 갈 경우 53일 동안 버틸 수 있다고 알려준다. 꽤 오래 쓴다는 생각이 든다. 옵션을 선택할 수도 있다. 집에 화장실을 같이 쓰는 사람이 몇 명인지, 화장지 길이가 얼마인지 등에 따라 보다 정교한 계산도 가능하다. 코로나 사태가 아니었으면 누구도 신경 쓰지 않을 우스꽝스런 알뜰신잡 수준의 계산기이지만 폭발적으로 인기를 끌었다. 만든 지 4일만에 2백만명 이상이 몰렸다.

화장지 계산기 홈페이지 캡처

화장지 계산기를 만든 사람은 런던의 학생이자 소프트웨어 개발자인 벤 사순(Ben Sassoon)과 아티스트인 샘 해리스(Sam Harris)다. 벤 사순은 더버지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자신들의 웹사이트가 사람들에게 사재기의 위험을 깨우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터무니 없는 사재기라는 것이다. 이 계산기 이용자들은 격리 기간 동안 필요한 것보다 평균 5배 이상의 화장지를 갖고 있었다.

이들은 자신들이 하루에 화장지를 얼마나 사용하고 있고, 코로나 사태가 어떻게 변할지 논의하면서 불과 3시간만에 아이디어를 내고 사이트를 만들었다. 화장지를 계산하면서까지 쓰는 사람은 없다. 필요하다 싶을 때 사다 쓰면 된다. 그런데 난리가 났다. 화장지와 마스크가 같은 원료로 만들어진다는 가짜 정보를 등에 업은 코로나 팬더믹이 사람들의 이성을 마비시켰다.

화장지 계산기는 평소라면 쓸데없는 생각이다. 하지만 위기 상황에서 창의적인 사고로 빛났다. 많은 사람들이 재택근무를 하고, 프리랜서와 서비스 직종의 사람들이 실업자로 전락하는 초유의 사태를 언급하면서 벤 사순은 이렇게 말한다. “생소하고 화가 나는 상황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갑자기 시간적 여유가 생겼다. 나는 그래서 다른 어떤 창의적인 것들이 속출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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