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고전화는 같은 그림이라 하더라도 일반 수채화보다 그리기가 더욱 어렵다. 농담과 선의 굵기가 먹물의 함량과 종이의 상태에 따라서 쉽게 변하기 때문이다. 또한 여백의 아름다움을 중시하는 중국화에서는 공간 배치도 쉽지 않다. 이런 중국화에 도전장을 내민 이가 있으니 바로 인공지능 고전화 화가 따오즈(道子)이다. 따오즈는 당대 화가로 그림의 선이 뛰어난 오따오즈(吴道子)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한다.
따오즈를 개발한 칭화대 연구 실험실 대표 가오펑(高峰)은 과학기술과 인문예술의 융합을 목표로 중국 고전 화가들의 장점만을 따오즈에게 딥러닝 기법으로 학습시켰다고 한다. 학습을 통해 따오즈는 고전 화가들의 화풍을 연구한 후 자신의 앞에 놓인 풍경과 사물을 그릴 때 분석해놓은 특징들을 접목시켜 중국 고전화 스타일을 재현해낸다.
가오펑은 이전 개발자들과 조금은 다르다. 따오즈 혼자 힘으로 창의적인 그림을 그려내기를 기대하기보다는 사람과 같이 작업했을 때 어느 효과가 있는지에 초점을 두고 있다. 실례로 가오펑 혼자 긴 두루마리 그림(长卷)을 그릴 때는 9개월의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하지만 따오즈와 함께 베이징의 우다코(五道口) 거리 풍경을 그릴 때는 이틀 만에 작품을 완성했다는 것이다. 아래는 그들의 공통 작품 우다코 거리이다.
따오즈는 그림의 화풍을 찾아내는 데 있어서 사람을 능가한다. 이에 그림의 구도를 정할 때는 따오즈가 빠르게 몇 가지 화풍에 따른 도안을 제시하고, 그 안에서 사람이 일부분을 선택, 수정, 보완하여 원하는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이렇게 사람과 인공지능의 신선한 콜라보 작품이 탄생하는 것이다.
묵색창윤(墨色蒼潤)
이번 대결 상대는 리즈무(李子牧)와 궈췐(郭泉), 이 두 명의 청년 화가들이다. 방식은 같은 주제를 가지고 그림을 그리면 관중들이 따오즈의 작품을 찾아내는 것이다. 다만 이번에는 탈락하는 사람이 없다. 사람 화가와 따오즈는 두 번의 대결 모두 참가하고 두 번 모두 따오즈의 작품을 찾아내지 못할 경우 인공지능의 승리로 끝이 난다. 대결 주제를 제시하고 평가할 심사위원은 바로 중국 고전화의 아버지라 불리는 치바이스(齐白石)의 손녀인 치훼이젠(齐慧娟)으로 30년이 넘는 회화 경력을 가지고 있는 미술가이다.
대결에 앞서 세 명의 패널들 중 두 명이 인공지능의 그림은 생명력이 부족하고 과감한 시도를 해내지 못할 것 같다며 기계는 인간을 넘어설 수 없다(技不如人)를 선택했다. 따오즈는 이 예상을 뒤집어 놓을 수 있을까.
대결을 시작하며 치훼이젠은 평가 기준을 “응물상형(应物象形)”으로 삼았는데 이는 화가가 묘사한 대상이 실제 대상과 얼마나 비슷한지를 평가하는 것이다. 단순히 표면적 유사도를 보는 것이 아니라 실제 대상이 가지는, 품기는 느낌마저 담아냈는지 확인한다. 이를 위해선 그림의 기운과 묘사 방법도 적절하게 고려해야 한다.
첫 번째 대결은 치바이스의 대표작 새우 그림을 재현하는 것이다. 치훼이젠은 할아버지 치바이스가 물속에 있는 새우를 항상 관찰하며 그 힘차고 역동적인 움직임을 한 장의 종이에 생생하게 표현하려 했다고 말했다. 사실 새우를 그리는 것은 매우 난도가 높은데 인공지능이 과연 생물의 생동감을 잘 표현할 수 있을까 궁금하여 새우를 선택했다고 했다. 더구나 수묵화의 특성상 점, 선, 면의 조합으로만 동태(动态)를 표현해야 하므로 상당히 수준 높은 실력이 필요한 것이다. 다음은 치바이스가 무려 87세에 그린 새우 그림이다.
하지만 가오펑은 따오즈가 주로 학습한 것이 치바이시의 작품으로 100개의 새우 그림에 대한 정보가 들어있고 실험실에서 실제 새우를 기르며 현실적 모습까지 학습했다며 자신 있어 했다. 또한 따오즈는 화풍을 그대로 추출 및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카메라로 보고 있는 새우의 움직임에서 영감을 얻고 그에 따른 표현 방식을 학습 데이터 속에서 선택한다고 한다. 학습한 작품들의 필법, 먹의 농담, 여백을 참고하는 것이지, 그림 자체를 따라 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두 명의 청년 화가와 따오즈는 나름의 방식대로 새우 그림을 다음과 같이 그려냈다. 혹시 많이 놀라지 않았는가? 정말 우위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세 작품 모두 훌륭하니까 말이다. 도대체 어느 작품이 인공지능이 그린 것일까?
결과를 공개하기에 앞서 치훼이전의 평을 들어보자.
“할아버지 치바이스께서는 처음 새우를 그렸을 때 몸통을 여섯 마디로 그리셨는데 세 번째 작품도 여섯 마디입니다. 하지만 머리가 작아지고 몸통이 크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에 이후 몸통을 다섯 마디로 바꾸어 그리셨는데 두 번째 작품이 다섯 마디네요. 전체적으로 보면 첫 번째 작품의 새우는 형체 자체가 할아버지 작품과 완전히 똑같지 않지만 앞으로 나아가려는 느낌은 정말 비슷합니다. 세 번째 작품은 먹물의 비율이 아주 좋습니다만 형체 자체에 신경을 많이 쓰느라 할아버지가 표현하려는 새우의 느낌이 부족하네요.”
투표 결과 세 작품 각각 16, 50, 34표를 받았다. 가장 많은 표를 받은 두 번째 작품을 그린 화가는 바로 리즈무였고 가장 적은 표를 받은 첫 번째 작품의 화가가 인공지능 따오즈였다. 세 번째 작품은 궈첸이 그린 것이었다. 이번 기지과인부터는 모든 작품의 주인이 공개되므로 두 번째 대결은 더 잘 맞춰보길 바란다.
두 번째 대결의 주제는 바로 “시중유화, 화중유시(诗中有画,画中有诗)”이다. 이는 중국 십 대 문호 중 한 명인 소식(蘇軾)이 언급한 것으로 중국화와 중국 시는 모두 의경미(意境美)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의경미는 정취, 정서를 뜻하는 말로 중국화와 중국 시에서 추구해야 할 최고의 목표라 할 수 있다.
치훼이전은 당나라의 시인 백거이(白居易)의 전당호춘행(钱塘湖春行)을 대결의 주제로 선정했다. 이 시는 8마디의 시 구절에 7개 장면이 묘사되고 있어 시중유화의 정수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따오즈는 시를 이해하고 의경미를 잘 표현해 화중유시를 이룩해 낼 수 있을까? 그전에 우리도 시를 감상해 보자.
钱塘湖春行
전당호 춘행
孤山寺北贾亭西, 水面初平云脚低
고산사 북녘 가공정(賈公亭) 서쪽에서 바라보니, 호수의 잔잔한 수면에 구름이 드리워 있고,
几处早莺争暖树,谁家新燕啄春泥
여기저기 햇볕 좋은 나무로 앞 다퉈 날아드는 봄 꾀꼬리들, 뉘 집 새 제비인지 봄 진흙을 쪼아대네.
乱花渐欲迷人眼,浅草才能没马蹄。
온갖 꽃들이 점점 눈길을 끌고, 여린 풀들 겨우 말발굽 덮을 만큼 자라났구나.
最爱湖东行不足,绿杨阴里白沙堤。
내 사랑 ‘호동(湖東)’은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는 곳, 푸른 버드나무 그늘 속 펼쳐진 백사 둑이여.
위 세 작품 중 본인이 시를 읽으며 생각한 그림이 있는가? 각 작품은 13표, 52표, 35표를 얻었는데 결과 공개에 앞서 다시 한 번 치훼이젠의 평을 들어보자.
“이 세 작품 모두 개성이 있어요. 세 번째 작품은 쉬베이홍(徐悲鸿)선생의 말 그림처럼 시대적 개성이 드러나 있어요. 두 번째 작품은 황빈홍(黄宾虹)선생의 그림처럼 가랑비 내리는 듯 한 느낌의 산수화를 그린 것 같아요. 세 작품 모두 중국화의 진수가 녹아있어 어떤 그림이 따오즈의 작품인지 저도 헷갈립니다.”
치훼이전의 평을 들으니 뭔가 감이 오는가? 아니면 더 헷갈리는가? 사실 치훼이젠 또한 전혀 갈피를 잡지 못했다. 따오즈의 작품은 바로 세 번째이다.
따오즈의 개발자 가오펑은 그림을 그리기 전에 따오즈는 어떻게 그림을 완성 하냐는 질문에 비밀이라고 답하며 넘어갔는데 대결이 끝나고 밝혔다. 사실 따오즈 스스로 시를 이해해서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니라 가오펑이 좋아하는 구절을 입력하고 따오즈는 이에 대한 결과를 내놓은 것이다. 우다코 거리에 이은 또 한 번의 콜라보 작품인 것이다.
전인미답(前人未踏)
이상하게도 이번 대결의 작품들은 아무리 봐도 인공지능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수준 또한 전문가의 눈으로도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높았다. 왜 그런 것일까. 따오즈의 작품이 바로 사람과 인공지능의 공동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이전까지의 대결에서 개발자들은 모두 데이터를 입력하면 인공지능이 스스로 결과를 도출하기를 기다렸다. 자신도 인공지능이 어떤 시를 지을지, 어떤 그림을 그릴지 모른다고만 답할 뿐이었다.
따오즈의 개발자 가오펑처럼 인공지능 스스로 대단한 결과를 도출하기를 기대하는 것보다 어떻게 인공지능을 활용해서 가치를 창출할지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따오즈를 보며 예술 분야에서의 활용 가능성을 충분히 캐치했다. 먼저, 따오즈가 풍부한 데이터베이스를 바탕으로 도안을 제시하고 사람이 손만 좀 본다면 시간도 아끼는 동시에 전례 없는 작품을 탄생시킬 수도 있다. 또한, 예술에 대한 관심과 수요를 증가시켜 더 다양하고 활발한 창작 활동이 이루어질 수 있다. 이에 우리 드래곤 아이 컨설턴트 회사는 새로운 가치를 지닌 아이디어를 예술 분야에 전달해주고자 한다.
<교육부 담당자께:
안녕하세요? 저희는 디지털 리터러시를 연구하는 단체 드래곤 아이입니다.
안타깝게도 한국은 초중고 교육 과정 중 예술에 대한 수업이 많이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입니다. 배운다 하더라도 대부분 시대별 화가 이름, 작품 제목, 화풍 등을 외우기식으로 하는 것뿐입니다. 학생들은 실제 화가별, 작품별 차이점을 모르고 각 화풍만의 독특함을 느끼지 못한 채 미술에 대한 흥미를 계속해서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따오즈는 중국 고전화 화풍을 학습하면서 각 화풍 간의 차이점 및 그 시대의 특징 등을 분석하고 수많은 데이터를 보유한 인공지능 화가입니다. 똑같은 풍경이나 동물 그림이라 하더라도 화풍에 따라 그 즉시 다르게 그려낼 수 있습니다.
따오즈를 수업에 도입한다면 기존의 교과서처럼 책을 앞뒤로 계속 넘기며 불편하게 각 작품을 비교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학생들은 한 화면에서 화풍에 따라 그림이 바뀌는 과정을 보면서 미묘한 차이라도 쉽게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동시에 따오즈가 그림 요소를 직접 가리키며 각 화풍의 의미 있는 특징을 설명해줄 수도 있습니다. 나아가 따오즈가 학생들이 숙제로 혹은 취미로 그린 그림을 보고 그에 맞는 화풍으로 그림을 그려낸다면 학생들에게 있어서 본인의 화풍을 확인하면서 개성을 확립시킬 수 있는 기회입니다. 이렇게 예술 수업이 진행된다면 미래의 예술 산업을 책임질 훌륭한 인재를 육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드래곤 아이 드림. >
<문화예술부 담당자께:
안녕하세요? 저희는 디지털 리터러시를 연구하는 단체 드래곤 아이입니다.
저희 주변에는 그림을 생업으로 삼고 살아왔으나 불의의 사고로 손을 다친, 그러나 예술적 감각이 여전히 뛰어난 미술가들이 많습니다. 그들 대부분 현재 치료가 끝나 정상적인 생활은 가능하지만 예전 같은 섬세한 작업은 어렵습니다. 그들에게 미술가로서의 희망은 사실상 사라진지 오래입니다.
이런 미술가들에게 인공지능 화가 따오즈는 한 줄기 빛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에게는 사고가 나기 전 그려놓은 작품들이 많이 있습니다. 먼저 그들의 그림을 보고 화풍을 학습한 따오즈가 그들이 완성한 밑그림 위에 다친 손으로는 불가능했던 섬세함을 덧입혀 준다면 희망을 잃은 미술가들도 충분히 다시 활동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혹자는 인공지능이 개입한 예술이 순수 예술 산업을 해친다고 탐탁지 않아 하겠지만 저희가 생각하는 예술은 문자가 아닌 형태를 빌려 메시지를 전달하는 부드러운 표현 방식입니다. 몸이 불편한 미술가들이 본인의 생각을 표현할 때 따오즈의 도움을 좀 받는 것뿐입니다. 이에 따오즈가 예술적 표현이 힘든 장애인 미술가들에게 더 많이 보급되었으면 합니다. 백인백색 천인천색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신체적 한계를 가진 미술가가 따오즈를 통해 자유로운 예술적 표현이 가능하다면 미술가 개인에게만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따오즈로 인해 이전에 표현하지 못했던 예술성이 세상 밖으로 나타나면서 필연적으로 우리 예술 전체의 발전을 가져올 것입니다. 인공지능과 인간의 콜라보라는 새로운 예술 장르 혹은 화파가 탄생하여 유행할 가능성도 많아 보입니다. 감사합니다.
드래곤 아이 드림. >
이렇게 예술 분야에서 우리의 제안을 고려하여 실제 작업을 진행하기를 바라는 바이다. 더 많은 사람이 예술 행위에 도전하고 다양하고도 독특한 작품이 탄생하는 새로운 인공지능 르네상스의 시대가 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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