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상 앞 스며드는 밝은 달빛,

땅에 내린 서리가 아닌가 생각했네,

고개 들어 산 위에 뜬 달을 바라보고,

그만 머리 숙여 고향을 그리네.

위의 시를 보고 있다보면 머리 속에 시인이 처한 상황이 그려진다. 어둡고 고요한 밤 달빛은 밝은데 어째서인지 시인에게는 달빛이 차갑게만 느껴진다. 달을 한 번 쳐다보고는 이내 고개를 숙여 고향을 사무치게 그리워한다. 

이처럼 타향을 떠도는 나그네는 바로 당대 최고의 시인 이백(李白)이다. 《정야사》는 이백이 고향을 떠나 생활하던 중 양주객사(揚州旅舍)에서 지은 것으로 자신의 심정을 압축적으로 잘 나타내고 있다. 더욱이 제목 정야사 이 세 글자만으로도 시의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는데, 정(靜)은 고요함, 야(夜)는 어두운 밤, 사(思)는 생각, 심정을 의미한다. 

우리는 《정야사》의 배경을 몰라도 시만 읽고 충분히 시인의 처지, 감정을 느끼고 공감할 수 있다. 어떻게 글자 몇 구를 보고 전체 그림이 떠오르며 시인의 마음을 알 수 있는걸까. 그냥 내 마음이 그렇게 느꼈다고 하더라도 그 이유가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침상, 달빛, 서리, 바라보고, 고향, 그리네 이런 단어들이 우리가 시를 이해하도록 힌트를 준 것이 아닐까?

사람과 똑같이 단어를 보고 고전시를 파악하고 또 자기만의 시도 지어낼 수 있는 인공지능이 있다. 바로 이번 기지과인의 주인공 구가(九歌)이다. 구가는 당대에서 청대까지 활동했던 수천 명의 시인들이 지은 작품 30만 수를 딥러닝을 기반(자가학습)으로 학습했다. 

구가를 개발한 칭화대학교 연구단 대표 이샤오위엔(矣晓沅)은 구가의 작품을 창작이라고 여긴다. 구가가 한 단어를 단어라고 인식하지 못하고 두 개의 글자가 합쳐졌을 때만 단어로 인식하기 때문에 시를 쓸 때 처음부터 끝까지 구가 스스로 글자를 택하고 조합한다는 것이다. 또한, 고전시의 특징인 압운과 운율도 스스로 규칙을 찾고 개념을 파악하면서 적용한다고 한다.

진가난변(真假难辨)

이번 대결은 전형적인 튜링 테스트 방식으로 구가가 쓴 시를 찾아내는 것이지, 어떤 작품이 더 뛰어난지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찾아낸다면 구가가 아직 지능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고 찾아내지 못한다면 구가가 지능을 갖추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구가에 맞서는 참가자들은 천겅(陈更), 리스웨이(李四维), 치먀오(齐妙) 총 세 명으로 모두 중국시가대회에서 수상 경력이 있고 시사에 관심이 많은 고수들이다. 

대결에 앞서 난징사범대학의 교수이자 중국 시사 학회 고문인 쫑젼젼(钟振振)씨가 출제자로 등장했다. 그가 출제한 첫 번째 대결 주제는 기억력과 창작 능력을 요하는 ‘집구시(集句詩)’를 짓는 것이다. 집구시란 선인(先人)들의 각기 다른 시에서 따온 시구들을 모아 새로운 시로 창작하는 장르이다. 원래 시의 뜻을 완벽히 파악하고 있어야할 뿐만 아니라 구절을 제대로 암기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집구시의 첫 구절로는 당대 애정시의 대가 이상은(李商隱)의 ‘말 없는 가운데 서로 마음이 통하다(心有灵犀一点通)’가 선정되었다. 5분의 제한 시간이 주어졌지만 인공지능 구가는 역시나 15초 만에 완성시켰다. 

과연 어떤 것이 구가의 시일까? 각 시 하단에는 인용한 작품의 저자를 표시하고 있는데 네 구절을 전부 이상은의 시에서 가져온 두 번째 시가 수상하지는 않은가? 특별히 전문가 쫑젼젼의 평을 힌트로 제공한다. 

“네 번째 시는 평측법 상 문제가 있고, 세 번째 시는 우수하지만 글자 봉(篷)을 잘못 썼으며, 두 번째 시는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을 잘 묘사했다. 첫 번째 시가 재(在)자를 반복하여 사용하였는데, 이 점에서 구가의 시일 것 같다.”

이 평가를 바탕으로 어떤 작품이 가장 많은 표를 받았을지 예상해보라. 투표 결과는 다음 칼럼에서 공개하겠다. (두 번의 대결을 펼친 것으로 보아 사람 참가자의 작품이 선택되었다는 사실은 쉽게 알아챘으리라 생각한다.)

두 번째 대결의 주제는 구체적 요구사항이 없었다. 위에서 소개한 이백의 시 《정야사》를 보고 느낀 바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자유롭게 풀어내는 것이다. 사람들에게도 마음대로 해보라고 하면 오히려 갈피를 못잡듯이 자신만의 가치관이나 세계관이 없는 구가에게는 상당히 까다로운 대결이었다. 

두 번째 대결은 정말 막상막하였다. 세 작품이 얻은 표 수 차이는 각각 2표였다.(예를 들어, 2표, 4표, 6표) 관중들도 쉽게 판단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는데 이번 투표 결과도 여러분이 맞춰보길 바란다. 쫑젼젼의 평을 다시 한 번 힌트로 제공한다. 결론은 기계가 인간을 넘어섰다(机制过人) 였다. 

“세 번째 시는 그리움이라는 글자가 결여되어있고 문맥의 흐름 또한 비교적 자연스럽지 못하다. 반면 나머지 두 시는 상당히 성숙한 시이다.”

질의문난(质疑问难)

인공지능이 그림을 그리고 시나 대련을 짓는 요즘, 이런 인공지능의 창작 행위에 대한 여러 논의가 끊임없이 진행중이다. 기지과인을 번역하면서 우리가 갖고 있었던 수많은 의문들을 간략하게나마 인터뷰 형식으로 정리해보았다.

이번 기지과인 편의 대결 방식은 튜링 테스트였다. 인공지능이 진짜 사람과 같이 감정을 느끼면서 시를 창작하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결국 구가의 창작시를 감상하는 사람들이 인공지능이 썼는지 알아채지 못하고 특정 감정을 느끼면 된다는 이야기인데, 시는 본래 저자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고 전달하는 것 아닌가? 인공지능이 감정을 느끼던 느끼지 않던 정말 상관없는가?

이종화, 전용욱, 황준혁 연구원:

“저희는 기본적으로 인공지능이 사람처럼 감정을 느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사실 사람도 어느 시를 감상할 때 감정을 느끼는 과정은 인공지능과 똑같을 겁니다. 시에 쓰인 단어를 보고 판단하는 것이죠. 어릴적 백일장에 참가해보신 적 있으시죠? 백일장에 참가해서 ‘솜사탕 같은 구름, 내 마음은 호수’ 등의 직유법과 은유법을 사용하며 시를 썼어요. 아무도 구름이 진짜 솜사탕 같은지, 내 마음을 정말 호수라 생각하는지 묻지 않았어요. 주변 사람들은 단어만 보고도 뭉게뭉게 피어난 구름을 연상했고 제가 넓은 마음을 가졌다고 판단했죠. 구름이 솜사탕 같다고 생각하지 않거나 호수처럼 넓은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저런 시구를 쓰면 안되나요? 시는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운율감 있게, 재밌게 표현하는 수단이라 생각해요. 물론 구가는 사람과 달리 직접 생각하고 경험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아무래도 감정을 느끼며 시를 쓰는 것은 어렵겠죠. 그러나 구가는 30여만 개의 시를 학습하며 그 속에 담긴 수많은 시인들의 감정이나 고전시 창작 기법을 나름 알아냈을 거에요.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시를 창작해 사람들의 흥취나 공감을 이끌어낸다면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 아닐까요.”

이지선 연구원:

“양희은씨의 《엄마가 딸에게》를 들어보신 적 있나요? 저 뿐만 아니라 수많은 분들이 이 노래를 듣고 공감하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이유는 ‘어린 소녀’와 ‘딸을 키우는 엄마’라는 역할을 직접 겪어본 사람이 자신이 느낀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해서 그런 것 아닐까요? 저는 노래를 들으면서 어린 딸이 뱉는 가사가 정말 가슴에 와닿았습니다. 아름다운 표현보다도 진실되게 딸의 마음, 또 가사 속에서 대비되는 모습이 이런 감정을 자아냈다고 생각합니다. 문학 수업을 들으면 교수님들이 항상 작품만이 아닌 그 작품을 쓴 작가의 인생에 대해서도 조사하도록 하시지요. 하나의 작품이 호소력을 갖고 독자에게 큰 파장을 미치는 이유는 단지 그 작품의 문장이나 묘사가 아름다워서가 아닌 것 같아요. 양희은씨의 《엄마가 딸에게》처럼 그 속에 한 사람의 사상, 나아가 인생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인공지능의 작품이 다 감동을 줄 수 없다는 건 아니예요. 왜냐하면 먼 미래에 인공지능 로봇이 자신의 생각과 삶을 글로 담은 작품을 출판한다면 베스트셀러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자율주행자동차나 안면인식 기술의 경우 개발한 동기나 기대 효과가 비교적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시를 배우는 인공지능 개발은 가늠이 되지 않는다. 칭화대학교 연구단이 중국 고대의 형식적이고 심오한 시 작품을 배우는 인공지능을 개발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이종화, 이지선 연구원: 

“인류는 권력, 경제력, 지식 이 세 가지를 독점해오면서 다른 존재보다도 막강한 파워를  누려왔습니다. 즉 이 세 가지는 인간만이 소유할 수 있는 것이라 여겨왔죠. 권력과 경제력은 당장 인공지능과 인간을 비교하기 힘들겠지만, 지식은 비교할만 하다 생각해요. 인공지능은 인류 지식의 결정체입니다. 지식의 양적인 측면에서는 이미 인간을 뛰어넘었다고 볼 수 있어요. 과거 중국 문인들에게는 현학적인 유희의 도구가 시, 대련 등의 문학작품이었습니다. 그들의 삶의 지혜, 사상, 가치관 등이 단 몇 구 안에 녹아 있는 것입니다. 이런 작품을 중국인들도 어릴 때부터 배웁니다. 칭화대학교 연구단들도 궁금하지 않겠어요? 사람이 고전시를 배울 때와 인공지능이 고전시를 배울 때 무슨 차이가 있고 누가 더 뛰어난지요. 그리고 사실 인공지능의 지식 습득이 사람에 뒤쳐지지 않다는 자신감과 인공지능만의 고차원적인 학습이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기에 연구를 계속하는 것 아닐까요? 

또 하나 이야기 드릴 수 있는 것은 시 작품을 배우는 것이 최종 목표가 아니라는 겁니다. 칭화대학교 연구단의 주요 관심사는 인공지능이 사람의 언어를 이해하고 사용하는 원리와 방식을 탐구하는 데에 있습니다. 챗봇, 서비스봇에서 시작하여 나중에는 인간과 일상대화가 가능할 때까지 개발하려고 하는 것 아니겠어요? 이 수준까지 도달하고 저번 샤오스 편에서 다룬 성문인식을 활용한다면 인공지능이 내 분신이 되어서 나 대신 여러 작업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전용욱, 황준혁 연구원 :

“중국은 4000여 년의 유구한 역사를 쌓아온 나라입니다. 중국인들도 스스로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애착이 강하죠. 이러한 애착이 바로 거대한 중국을 단결시키고 질서를 유지시킨 힘입니다. 한족이 이민족에게 지배당했음에도 무너지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한족문화로 흡수시킨 것만 봐도 쉽게 알 수 있죠. 칭화대학교 연구단도 1차적으로는 당대 최고의 시인 이백, 두보, 이상은이 지은 작품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이를 연구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을 거에요. 2차적으로는 이 연구에 중국 정부의 지원과 장려가 구가의 개발을 촉진했다고 생각합니다. 중국은 인공지능 특허 출원 수가 1위이고 투자규모도 어마어마해서 세계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죠. 인공지능 기술을 선보일 때 중국 문화가 자연스럽게 알려진다면 어떨까요. 인공지능대회, 포럼에 참여할 때도 중국의 역사와 문화를 세계에 널리 스며들게 할 수 있지 않겠어요? 중국은 두 가지 실험을 하는 셈입니다. 첫 번째 실험은 어떤 딥러닝 알고리즘을 통해 인공지능이 고전시를 스스로 학습하고 사람들의 언어를 이해하며 자신만의 시를 창작할 수 있을까입니다. 두 번째는 어떻게 중국의 전통문화를 첨단 기술과 접목해서 효과적으로 중화민족의 내부 결속을 다지고 세계인들이 중국 문화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게 할까입니다. 사실 이번 기지과인 구가편을 보면서 가야금, 피리 소리의 배경 속에 패널들이 시구를 읊는 장면을 볼 때 전율이 끼쳤어요. 자문화를 정말 즐기고 있구나, 중국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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