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드셋을 쓰고 가상의 세계에서 실제와 같은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가상현실, VR(virtual reality)은 게임과 교육, 여행, 쇼핑 등 그 활용 범위가 전방위로 확대되고 있다. 종교도 예외가 아니어서 가상현실을 이용한 VR 교회가 생겨났다. 첨단기술은 종교와는 거리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태어나면서부터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세대가 등장하고, 디지털이 대중화 하면서 신앙의 영역과 예배 의식에도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교회에 가지 않고 인터넷이나 TV로 영상을 통해 신앙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고, 이들을 위한 인터넷이나 TV 설교는 이제 흔한 모습이다. VR 교회는 이와는 또다른 차원의 새로운 예배 방식이다. VR 교회는 미국 동부시간 기준으로 매주 일요일 오후 2시와 7시 30분 두 번 모여 예배를 드린다. 예배 장소는 특정한 장소가 아닌 가상의 공간이다. 여기서 설교를 듣고, 교제하고, 세례 의식도 거행된다. 전통적인 교회와 다른 게 있다면 이 모든 것이 가상 공간에서 자신의 캐릭터인 아바타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VR 교회는 가상현실을 위한 소셜 플랫폼인 ‘알트스페이스브이알(AltspaceVR)’에 존재한다. 프로그램을 다운로드 하고, 오큘러스 고(Oculus Go) 헤드셋을 쓰고 이곳에 들어가면 전세계 사람들을 만날 수 있고, 다양한 라이브 이벤트를 즐길 수 있고, 친구들과 게임도 할 수 있다. VR 교회는 이에 착안해 만들어졌다. 여러 이벤트 리스트 가운데 VR 교회가 있다. 2016년부터 VR 설교를 해온 소토(D..J. Soto) 목사는 교회 홈페이지에서 사람들이 새로운 기술 플랫폼으로 복음을 접할 때 신앙이 보다 새로워진다는 것을 믿게 되었다고 말한다.

VR 교회 홈페이지 캡처

기독교인이든 그렇지 않든 누구에게 문이 열려있다고 강조하는 VR 교회가 TV 교회처럼 대중화의 길을 갈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다만 전례 없는 방식으로 신과 성경을 경험할 수 있는 세계를 창조하고 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부활절 예배 때 참석자들은 거대한 돌로 막혔던 예수의 무덤에 들어가 보고, 그 전에 예수가 처형을 당한 십자가의 모습도 지켜봤다. VR 교회는 앞으로 게임기인 플레이스테이션 VR에 교회를 개설하고, 아랍어 서비스도 시작한다는 계획이다.

기독교인이 대다수인 미국에서 최근 20년 동안 종교를 가진 사람들의 숫자는 급격히 줄었다. 2018년 갤럽 조사를 보면 종교가 있다는 미국인이 1999년에는 70%였지만 이제는 50%로 감소했다. 주목할 것은 1980년에서 2000년 사이에 태어난 이른바 밀레니엄 세대의 무종교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이 성장하던 때는 기술이 급격히 발전하고 디지털의 흐름이 실생활로 자리잡던 시기와 궤를 같이한다. 종교인 수 감소에는 여러 다양한 원인이 있겠지만 이런 분위가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있다.

불가능한 것을 가능한 것으로 만들고 과거에는 상상조차하지 못했던 것을 해내는게 비일비재 한 요즘 무한한 기술의 역량이 창조의 영역인 신의 세계에 대한 경외심을 무디게 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생명과 진리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과 해답을 찾는 과정에서 종교는 인간과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종교의 쏠림이 과거 모습과는 달라도 로봇 목사와 로봇 스님이 등장하고, 교회가 가상현실로 들어가는 것은 변화에 대한 진보적 적응의 모습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만큼 종교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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