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지과인(机智过人)
기지과인(机智过人)은 중국 CCTV가 인공지능과 인간의 대결을 소재로 제작한 오락 프로그램으로 시즌1에 이어 시즌2도 폭발적인 관심과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프로그램의 슬로건 “기계가 인간을 넘어서니, 중국의 지혜가 쌓인다(机智过人,加速中国智慧)”는 인공지능 기술에 대한 중국의 자부심을 보여준다.
진행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인공지능과 인간이 특정한 과제를 수행하고 그 결과를 전문가와 일반인으로 구성된 심사단(슈퍼인류검사단)에게 평가받는 방식이다. 과학, 영화, 스포츠, 미술 등 다양한 영역의 게스트와 전국의 관중들이 함께 안면인식 인공지능과 몽타주 전문가, 인공지능 번역기와 번역가의 영화 자막 번역 대결 등을 지켜본다.
시즌2는 빠른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을 반영하여 전작에 비해 한층 다양하고 진화한 인공지능을 선보이면서 시청자들에게 “기계가 인간을 넘어설 것인가, 아니면 기계는 사람보다 못한가?(机智过人 还是 技不如人)”라는 도전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팀 드래곤 아이는 디지털 중국의 역동성을 이해하고 인공지능과 디지털 기술이 가져올 미래에 대한 통찰을 얻기 위해 기지과인의 주요 에피소드를 함께 분석하고, 그 글을 연재할 예정이다.
난형난제(難兄難弟)
칼럼의 첫 번째 주제로 디자인 대결을 선택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논리구조와 데이터로 학습된 인공지능이 창의력을 요구하는 예술 분야에서는 인간을 넘어서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기지과인의 10번째 에피소드는 인공지능 디자이너 루반과 인간 디자이너가 두 가지의 주제로 포스터를 제작하고 그 우열을 겨룬다.
루반은 알리바바 그룹이 온라인 쇼핑몰에서 필요로 하는 광고포스터를 자동으로 제작하기 위해 개발한 인공지능이다. 매년 11월 11일에 열리는 광군절(光棍节) 할인이벤트는 하루 주문 건수가 20억에 이를 정도로 엄청난 규모를 자랑한다. 따라서 이벤트를 위해 제작해야 할 광고 포스터나 상품 소개 페이지도 수억 장을 넘어서 인간의 힘으로는 수요를 충족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
중국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라고 불리는 춘추시대의 인물 노반(鲁班)의 이름을 따온 인공지능 루반은 지식그래프라는 시스템(知识图谱)을 기반으로 기존의 작품 500만점을 학습하여, 고객의 요구와 특성에 맞는 구도, 배색, 분위기 까지 고려한 디자인 작업을 수행한다. 루반은 1초에 무려 8천개의 디자인 출력이 가능하고 2016년부터 지금까지 10억 개의 포스터를 제작한 전대미문의 디자이너이다.
이에 맞서는 사람도 쟁쟁한 실력을 자랑한다. 첫 번째 과제인 자동차 디자인을 위해서는 3명의 관련 분야의 전문 디자이너가 맞선다. 두 번째 과제 손자병법 책 표지 디자인에는 20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중국 전통화가와 수공예 장인 겸 의상 디자이너가 상대로 나섰다.
건곤일척(乾坤一擲)
대결의 방식은 간단하다. 인간과 루반이 특정 주제를 가지고 작품을 디자인하면 관중들이 그 작품 중에서 루반이 디자인했다고 생각하는 것에 투표를 한다. 그 결과 루반의 작품이 가장 많은 표를 받는다면 미션에 실패한 것으로 간주된다. 인공지능의 창작물이 사람의 것과 구분이 되기 때문이다. JTBC의 진짜 가수 찾기 프로그램인 ‘히든싱어’와 유사한 방식이다.
프로그램의 재미를 더하기 위해 세 명의 패널은 대결을 시작하기 전에 ‘인공지능이 사람을 넘어섰다(机智过人)’ 혹은 ‘인공지능이 아직 사람보다 못하다(技不如人)’라는 것 중에 하나를 선택하고 그 이유를 설명한다.
첫 번째 대결의 과제는 자동차의 빠른 속도감을 표현한 포스터 디자인이다. 패널 3명 중 2명은 인공지능이 사람보다 못할 것이라고 사전 입장을 정했다. 루반은 상품에 내재하고 있는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할 것이고 사람들에게 미적 감각을 잘 전달하지 못할 것이라고 그 이유를 밝혔다.
대결이 시작된 지 불과 10초도 지나지 않아 루반은 포스터를 완성했다. 사람이 작품을 제출한 후 이루어진 투표의 결과는 놀라웠다. 사람이 디자인한 포스터는 각각 29, 7, 34표를 받았고 루반은 30표가 나왔다. 루반이 첫 번째 미션을 통과한 것이다. 아래 그림의 4개의 작품 중에 루반의 것을 찾아보자.
정답은 두 번째 작품이다.
이어지는 대결의 주제는 중국 최고(最古)의 병법서인 손자병법의 책표지 디자인이다. 책 표지 디자인은 창작자의 내용에 대한 이해도를 표현하는 동시에 독자들의 공감 역시 이끌어내야 하는 어려운 과제이다. 3명의 패널은 모두 심층적 이해가 필요한 손자병법은 일반적인 상업 포스터와는 차원이 다르다며 루반이 미션을 통과하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두 번째 대결의 결과는 더 놀라웠다. 루반은 작업을 시작한 지 5분도 안 돼서 완성했고 심사를 하는 판디안 원장과 세 명의 패널 모두 루반의 작품을 찾지 못했다. 관중들의 투표 결과를 보면 아래 각 작품이 31표, 39표, 30표를 받았는데 이 중 루반의 작품은 바로 가장 표를 적게 받은 세 번째이다.
루반의 작품 중 특히 눈여겨봐야 할 것은 포스터 안에 수많은 손자병법의 구절 중에서<허실>편에 등장하는 “병법은 고정된 모양이 없고, 물은 고정된 형식이 없다(兵无常势,水无常形)”라는 중국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명구를 뽑아내어 심사위원들로 하여금 손자병법에 대한 깊은 이해도가 있는 사람의 작품으로 착각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우문현답(愚問賢答)
루반은 많은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디자인 대결에서 미션을 통과했다. 인간만의 전유물이었다는 창작의 영역에서 나온 결과이기에 많은 사람에게 충격을 주었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은 창의력에서 인간을 뛰어넘은 것일까?
이 프로그램이 그 대답을 준 것은 아니다. 심사단은 인공지능과 사람의 작품 중에서 가장 우수한 것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인공지능이 디자인했을 것 같은 작품’을 찾은 것이다. 그것의 의미는 최소한 인공지능이 창의적인 일을 사람처럼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사람의 지능행위를 복제한 인공지능이 발전할수록 그것을 만든 인간과의 비교는 계속될 것이다.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들었던 의문은 왜 우리는 인공지능과 대결에만 관심을 가지는가 하는 것이다. 사람이 인공지능을 만든 이유는 그것으로 우리의 삶이 나아지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던가. 그렇다면 지금 우리 스스로 던져야 할 질문은 ‘사람다운 것이 무엇이고’, ‘인공지능의 혜택을 모든 사람이 누릴 수 있는 조건이 무엇인지’가 아닐까? 어쩌면, 기지과인 프로그램이 우리에게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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