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변화가 새로운 문화로 이어지는 대표적인 장소를 꼽으라면 커피숍이 빠질 수 없다. 거리마다 한 집 걸러 자리잡은 커피숍은 더 이상 커피만 마시는 곳이 아니다. 만남이 이루어지고 담소를 나누는 장소로만 존재하지도 않는다. 모바일 기기와 함께 자신이 하고 싶은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복합 공간, 이게 세계 어디서나 보게 되는 커피숍 모습이다.

‘코스피족’이라는 말이 있다. 커피숍을 업무 공간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커피(coffee)와 오피스(office)의 합성어다. 직장이 밀집한 지역이 아니더라도 커피숍에 들어가면 노트북을 펼친 채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카페브러리족’이라는 말도 생겼다. 커피숍을 도서관처럼 이용하는 사람들이다. 카페(café)와 도서관을 뜻하는 라이브러리(library)가 합쳐진 용어다. 대학가는 물론 중고등학생들도 커피숍에 가서 공부하는 게 유행처럼 번졌다. 개인별 칸막이까지 만들어 24시간 문을 여는 독서실 커피숍도 많다.

커피숍의 적절한 소음과 특유의 분위기가 공부나 업무의 집중력을 높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지만 커피숍의 변신은 모든 게 연결된 디지털 시대의 흐름을 반영한다. 디지털은 가정과 학교, 직장에 얽매인 공간적 틀을 벗어나게 만들었고, 커피숍은 스스로를 격리시켜 혼자가 될 수 있는 훌륭한 대안이 되었다. 노트북과 아이패드, 스마트폰 같은 온라인 연결 도구가 커피숍의 필수품처럼 돼버린 배경이다. 그런 점에서 커피숍을 지탱하는 핵심 인프라는 인터넷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이런 흐름에 반기를 드는 곳이 나타나고 있다. 영국의 가디언은 유리창에 ‘노 와이파이(no wifi)’와 ‘노트북 금지(laptop free)’ 표시를 부착한 브라이튼(Brighton) 지역의 ‘도우 러버(Dough Lover)’라는 커피숍을 소개했다. 무선 인터넷이 안되고 노트북도 사용할 수 없게 한 곳이다. 손님의 장시간 자리 점유로 수익성이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게 아니었다. 커피숍 본래의 모습을 되찾기 위한 방편이었다. 커피숍 주인은 노트북이 없다면 사람들이 커피를 마시고, 음악을 듣고, 대화를 나누게 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이런 자연스런 분위기를 잃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뉴욕에 8개의 매장을 가진 버치 커피(Birch Coffee)는 2016년부터 와이파이를 제거해 손님들이 인터넷을 사용할 수 없게 만들었다. 초기에 일부 반발이 있었지만 커피숍은 혼자 온 손님이 다른 사람과 대화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마련하는 등의 노력으로 매출은 오히려 늘었다. 역시 뉴욕의 체인점 커피숍인 카페 그럼피(Café Grumpy)는 와이파이는 허용하되 노트북을 사용할 수 없게 했다. 영국의 사우햄프턴 대학(University of Southampton)의 커피숍은 고객이 대학생들인데도 커피숍 안에서 노트북 사용을 금지했다.

디지털 시대의 촘촘한 연결망은 지역이나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지나친 연결과 이로 인한 종속은 스스로의 삶을 파괴하고, 자칫 현실 세계에서 고립과 소외를 자초할 수 있다. 커피숍은 서로 얼굴을 맞대며 어울리는 공간이었다. 음악을 듣고, 책을 읽고, 사색을 하는 장소였다. 이런 낭만과 따뜻함을 되찾기 위한 움직임을 과거에 대한 향수로만 볼 일은 아니다. 부지불식간에 가중되는 디지털의 압박에 대한 반작용으로 바라볼 수 있다. 물론 시대의 흐름을 외면하거나 거스를 수는 없다. 미국에서는 연인들이 데이트를 하고 친구들이 함께 모이는 저녁 시간대나 주말에는 와이파이를 쓸 수 없게 만드는 커피숍도 생겨나고 있다. 편의성과 감성에 호소하는 각각 서로 다른 목적의 커피숍들이 앞으로 새롭게 등장할 지 모른다.

인쇄하기

이전
다음
6+

소요 사이트를 방문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액수에 관계없이 여러분의 관심과 후원이 소요 사이트를 유지하는 데 큰 힘이 됩니다. 후원금은 협동조합 소요 국민은행 037601-04-047794 계좌(아래 페이팔을 통한 신용카드결제로도 가능)로 후원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