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이 성직자를 대신해 종교의식을 대행하는 사업이 일본에서 시작되었다. 2017년 8월 도쿄에서 열린 장례산업 박람회에는 불교 승려 복장을 한 로봇이 장례식장에서 목탁을 두드리며 독경을 하는 모습이 등장했다. 이 로봇은 유골함을 제단에 올려 놓고 종교의식을 집전할 수도 있다.

키 121cm, 몸무게 29kg의 이 인공지능 로봇의 본래 이름은 페퍼(Pepper)다. 일본의 소프트뱅크가 만든 페퍼는 사람의 목소리와 표정에서 감정을 읽고 표현할 수 있는 인간과 가장 친숙한 휴마노이드 로봇이다. 은행과 상점, 식당, 양로원 등에서 만 여대가 도우미로 활약하고 있는데 이제는 불교 사제 역할도 맡게 되었다. 일본의 4개 주요 종단 경전을 암송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 입력을 마쳤다.

로봇이 승려를 대신하는 이 장례사업을 시작한 곳은 니세이 에코(Nissei Eco)라는 회사다. 2000년 이래 장례 관련 사업을 해왔던 곳이다. 고비용의 일본 장례 문화에 첨단 로봇을 도입해 비용을 낮춘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겠다는 비즈니스 마인드가 작용했다. 대개 불교식으로 치러지는 일본의 장례 비용은 10여년 전 소비자 조사 결과를 보더라도 평균 2천 9백여만원 정도다. 이 가운데 승려에게 주는 사례비는 245만원이다. 상당한 비용이다. 그런데 이 회사는 로봇 승려를 쓸 경우 50만원이면 된다고 말한다.

비싼 장례 비용 말고도 이런 서비스가 등장한 것은 초고령 사회에 접어든 일본의 사회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 주민들이 사찰에 시주금을 내 서로의 장례를 지원하는 것이 오랜 전통이었지만 농촌 인구 감소와 1인 가구 증가로 더 이상 이런 제도를 유지하기 힘든 상황이 되었다. 로봇과 IT 기술이 이를 대신하는 새로운 사업 구상으로 부상한 것이다.

로봇 승려가 일본의 장례 산업에서 얼마나 역할을 할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일본은 일본은 로봇 친화적인 문화를 지니고 있다. 다양한 분야에서 로봇이 인간과 공존을 시작한 휴마노이드 로봇의 대표적인 나라다. 해마다 사찰에서는 사람과 오랫동안 정을 나눈 애완견 로봇 아이보의 합동 장례식이 열리기도 한다. 로봇에서는 느끼는 이질감이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할 것으로 생각된다. 로봇 장례 사업을 시작한 업체도 아마 이런 계산을 했을 것이다.

주목해 봐야 할 것은 로봇의 역할이다. 일본의 로봇 승려에 앞서 종교개혁 발상지인 독일의 비텐베르크에는 ‘블레스유투(BlessU-2)’라는 로봇 목사가 등장했다. 여느 성직자처럼 신자들에게 성경 구절을 읽어주고 신의 축복을 기원했다. 이 로봇 목사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기술의 진보가 교회의 미래 모습에 어떤 변화를 줄 지 함께 고민해보자는 의미에서 현지 교회의 지원에 의해 만들어졌다.

일본의 로봇 승려나 독일의 로봇 목사, 그 의도와 목적은 확연히 다르다. 하지만 로봇이 성직자의 업무 일부를 대신하며 종교의 영역에 들어올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죽은 이에게 극락과 천국의 안식을 염원하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축복을 기원하는 종교 행위는 지금까지는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성직자의 영역이었다. 하지만 인간을 닮은, 인간을 초월한 AI 로봇 사제는 그 한계를 시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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