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을 아시나요?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는 ‘돈’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에서는,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일정한 정도의 ‘돈’을 갖지 못한다면, 아주 예외적인 상황을 제외하고는 생존을 지속해 나갈 수 없습니다. 그럴 듯한 여러 논리와 말들로 포장한다고 해도,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결국 ‘돈’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사람들의 움직임, 행복과 불행, 세상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사건과 일들이 직간접적으로 ‘돈’과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런데 만일 우리에게,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소득이 아무런 조건없이 모두에게 주어진다”면 어떻게 될까요? 충분하지는 않더라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기본소득(Basic Income)이 지급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우선 여러분 각자에게는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한번 떠올려 보세요. 어떻습니까? 상상이 되시나요?

무슨 꿈 같은 소리냐구요? 맞습니다. 어쩌면 이 이야기는 꿈 같은 소리일지도 모릅니다. 지금껏 인간이 살아온 방식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아이디어라는 점에서, 그리고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고 앞으로도 이루어질 수 있을지 확실하게 알 수 없다는 점에서 당연히 꿈 같은 소리처럼 들릴 것입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기본소득’에 관한 여러 소식이 전 세계 곳곳에서 들려오고 있습니다. 핀란드는 올해 1월 1일부터 실직한 시민의 일부를 상대로 기본소득을 지급하고 있습니다. 기본소득의 규모는 월 587달러(약 71만 원) 수준이며 수혜 대상은 임의로 선정된 2000명의 실업자로, 지급 기간은 2년입니다. 기본소득의 본래 성격에 비추어 보면 완전하지 않은, 제한된 형태의 기본소득이라 할 수 있지만 국가 차원의 시도라는 점에서 전 세계적으로 상당한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얼마 전, 세계적 유력 매체인 영국의 <가디언>은 지금 핀란드에서 시행되고 있는 기본소득에 관한 심층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약 2개월 간 실험한 기본소득에 대한 뜨거운 반응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에서 인상 깊은 점은, “기본소득은 이제 국경을 넘어 시대정신이 되었다”고 전하며, “파편화된 복지국가에 대한 해답”으로 기본소득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일자리 감소와 임금 구조의 불평등 심화를 기존의 복지 제도로는 감당할 수 없다고 진단합니다.

예측 불허의 언행과 상상력으로 전 세계 언론과 사람들로부터 주목 받고 있는 전기자동차로 유명한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는 “기본소득은 필연적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고 공언하고 다니고 있습니다. “로봇이 인간의 능력을 능가하지 못하는 과제는 점점 더 줄어들 것이고, 그런 상황을 바라는 게 아니라 다만 그렇게 될 확률이 매우 높다”고 지적하며, “내 생각에는 기본소득이 필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기본소득이 ‘돈’의 문제가 아니라 새로운 가치관에 대한 ‘인간의 적응력’ 문제라는 점을 덧붙이고 있습니다.

유럽의회(EP)는 최근 기본소득과 로봇세 도입에 대해 치열한 논의를 전개했습니다. 그 결과는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제기돼 부결되었지만, 한 국가 단위가 아니라 유럽의회가 이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습니다. 지난해 5월에는 유럽연합(EU) 회원국 시민 1만 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3명 중 2명(64%)은 기본소득 도입에 찬성했습니다. 찬성의 이유로는 ‘경제적 불안 감소’와 ‘기회 균등’의 항목을 선택했습니다.

세계적 IT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MS)의 빌 게이츠는 얼마 전 미국 유력 저널, 쿼츠(Quartz)와의 인터뷰에서 로봇세의 필요성을 강하게 언급했습니다. 그는 기술사회에서 소외된 노령층 및 저소득층을 돕고 직업훈련 비용을 지원하기 위해 로봇세가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사람들이 기술 혁신이 가져올 결과에 대해 열광하기보다 공포심을 갖는다면 정말로 나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이러한 주장은, 첨단기술 발전이 가져오고 있는 ‘노동의 종말’과 이로 인한 불평등 구조의 개선 없이는 기술사회의 미래도 불투명하다고 인식한다는 점에서, 최근의 기본소득 논의와 그 해법은 다르지만 상황 진단에서는 맥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처럼 프랑스에서도 대통령 선거가 한창입니다. 이번 대선에 출마한 집권 사회당 후보 브누아 아몽은 기본소득 제도를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아몽은 소득 불균형과 실업 문제 해결을 위해 모든 국민에게 매달 750유로, 우리 돈으로 약 94만원 정도의 기본소득 지급을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선거 결과를 두고 보아야 하겠지만, 만일 아몽이 당선될 경우, 기본소득 제도는 논의의 영역을 뛰어넘어 실행의 가능성으로 커다란 진전이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기본소득 논의는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들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기본소득 논의에는 아직 많은 논란거리가 있습니다. 여전히 기본소득 제도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점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우리가 기본소득 논의에 주목해야 하는 까닭은 앞으로 펼쳐질 첨단기술사회에서 ‘노동의 종말’과 ‘불평등의 심화’에 대한 뾰족한 대안이 현재로서는 없다는 점에 있습니다. 부의 편중은 깊어지며 일자리 감소로 인한 ‘인간다운 삶의 위협’은 지속될 것입니다. 기본소득 논의는 이러한 위기 상황에 맞서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연대와 공존의 지혜를 모아가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소요에서 준비한 <디지털 시대와 기본소득> 특집 연재를 통해 함께 고민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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