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이 인간과 함께 살아가고 인류에 위협적인 존재가 된다는 설정은 영화나 소설로는 이제 진부한 소재다. 인공지능을 탑재한 로봇이 사람의 감정을 읽고 표현하며 빠르게 진화하고 있는 게 오늘의 현실이다. 로봇을 단순히 인간을 닮은 기계로만 생각하기 어렵게 되었고, ‘역할’이 아닌 ‘관계’로 로봇의 정체성이 요구되는 상황이 되었다. 유럽연합(EU) 의회가 인공지능 로봇에 처음으로 ‘전자인간(Electronic persons)’이라는 법적 지위를 제안했다.

 로봇의 권한과 책임

질주하는 자동차는 자칫 사람을 해치는 흉기로 변할 수 있어 면허를 딴 사람 외에는 아무나 운전하지 못하게 한다. 하지만 자율주행 자동차는 인공지능에 모든 것을 맡긴다. 사람보다 실력이 뛰어나다는 믿음을 근거로 한다. 그런데 만에 하나 사고가 날 경우 논란이 발생할 수 있다. 배상이나 법적인 책임 소재가 차의 소유자에 있는지, 제조업체인지, 아니면 인공지능 알고리즘이나 프로그램을 만든 쪽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로봇의사의 수술 책임도 예외가 아니다.

일본 소프트뱅크의 인공지능 로봇 ‘페퍼(Pepper)’는 가장 친숙한 인간형 로봇이다. 사람과 대화하고 감정의 교감이 가능해 고객을 상대하는 영업사원으로, 아이나 노인을 돌보는 반려로봇으로 인기가 있다. 친구나 친자식처럼 애정을 쏟으며 같이 지내던 이 로봇을 외부 침입자가 파손했다면 단순히 재물손괴로 보아야 할까? 어쩌면 사람을 해친 것이나 다름없이 생각할 지 모른다.

인공지능이 글을 쓰고 음악을 만들고 그림을 그리는 일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되고 있다. 구글의 인공지능 화가 ‘딥 드림(Deep Dream)’이 그린 29점의 추상화는 경매에 부쳐져 억대의 돈을 벌어들였다. 이 그림들은 창작물로 저작권을 인정받아야 할까? 저작의 소유권은 누구에게 있는 걸까?

로봇은 자동화 기계의 한계를 초월하고, 소유물로서의 존재 그 이상이 되고 있다. 인간의 고유기능으로 여겨지던 인지, 학습, 추론 등이 가능해졌다.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로봇의 변신은 그 한계를 가늠하기 힘들다. 로봇은 더 이상 부리기만 하는 물건이 아니다.

‘전자인간’의 의미와 성격

국제사회가 인간과 로봇의 더불어 살아가기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미국 백악관이 ‘인공지능의 미래를 위한 준비’라는 특별 보고서를 발표했고, 중국과 일본도 대응 전략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사람과 로봇의 관계를 규정한 정부 차원의 첫 ‘로봇윤리헌장’은 지난 2007년 한국에서 만들어졌다. “인간과 로봇이 함께하는 미래사회가 부정적인 방향으로 가는 것을 사전에 방지하고, 인간과 로봇이 상호 존중하고 협력할 수 있는 미래사회를 실현하기 위해”서라고 제정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표현과 방식은 달라도 로봇 공존시대의 진단과 방향은 크게 다르지 않다.

로봇의 미래 문제를 놓고 가장 활발한 논의가 진행되는 곳은 유럽연합(EU) 의회다. EU 집행위원회에 로봇 관련 사안의 법제화를 요청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자율성을 가진 로봇에 특정한 권리와 의무를 지닌 ‘전자인간’이라는 법적 지위를 부여할 필요가 있다는 제안은 상징적이고 역사적인 사건이 되었다. 인공지능이 산업과 생활의 모든 영역을 잠식하고 있는 상황에서 향후 불거질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으로 로봇의 지위를 명백히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로봇의 책임을 다룰 때 지금까지는 제조상의 결함과 이것이 초래할 문제만을 생각했다. 당연히 제조자가 해결하면 되는 일이다. 하지만 인공지능 로봇은 전혀 예측하지 못한 방법으로 주위 환경을 학습하고 여기에 적응한다. 로봇의 행동이 인간의 계획과 의도의 범주를 넘지 않을 것이라는 장담을 누구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어떤 일이 어떻게 벌어질 지 예상하기 어렵고, 그에 따른 책임을 어느 한 쪽에만 지우기도 힘들다. 뿐만 아니라 오류나 해킹이라는 상시적인 위험 요인까지 안고 있다. 비상 상황에서 로봇의 작동을 강제로 멈추게 하는 ‘킬 스위치(kill switch)’를 의무적으로 장착한다지만 사후 수습책으로는 의미가 없다.

로봇이 똑똑해지고 정교해질수록 권한의 범위 및 책임의 소재와 한계는 복잡해진다. 로봇이 스스로의 의지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한다는 것은 사물로서의 객체가 아니라 주체로서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에 걸맞은 책임과 의무가 거론되는 이유다. 회사 법인은 사람이 아닌데도 법적인 권리를 인정받는다. 돈을 벌고, 세금을 내고, 자산을 소유하고, 특정 사안에 법적•물적 책임을 진다. 로봇 ‘전자인간’의 성격 규정도 이와 유사하다. 중국 북경대의 유에 수안 웽(Yueh-Hsuan Weng) 박사도 인간을 ‘제1의 존재’, 통상적인 기계 및 재산은 ‘제2의 존재’, 그리고 인간형 로봇은 ‘제3의 존재’로 구별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전자인간’을 둘러싼 논란

로봇의 지위와 개발, 활용에 대한 법적 기술 ,윤리적 규범이 절실해진 상황이다. 하지만 ‘전자인간’ 자격 부여는 무척 조심스럽게 접근한다. 서둘러서 당장 입법을 추진할 일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인공지능 로봇이 고도의 능력을 갖추었을 때라는 전제조건을 달고 있다. 법인은 형체가 없지만 로봇 ‘전자인간’은 사람처럼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할 수 있다. 아무리 법적인 성격 규정이라 하더라도 로봇에 ‘인간’이라는 표현을 함께 쓰는 것은 자칫 사람과 닮은 또 다른 종이 탄생하는 모습으로 비칠 수 있다. 지금으로서는 철저히 준비하자는 쪽에 더 무게를 싣고 있다.

인공지능과 로봇을 둘러싼 문제는 결국 사람의 문제다. 빠르게 진행되는 4차산업혁명의 물결은 인간에게 가져다 줄 편의보다는 일자리를 빼앗긴다는 위기감으로 다가왔다. 새 일자리로는 채워지지 않는 대량 실직의 위험이 감지된다. 이런 거대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로봇시대의 연착륙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로봇이 사람을 위협해서는 안되고, 늘 사람에게 복종해야 하며, 앞선 두 가지의 전제 아래 로봇도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한다.

유럽의회 로봇 결의안의 궁극적인 목표는 사람을 보호하는 데 있지만 ‘전자인간’ 로봇이 오히려 마찰을 증폭시킬 수도 있다. 대표적으로 인간의 예술과 창작 세계가 초토화 할 우려가 제기된다. 인공지능 로봇은 음악, 미술 같은 저작물에서도 이미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로봇에 법적 권리를 인정하게 되면 저작물을 놓고 인간과 로봇이 맞대결을 펼칠 수밖에 없게 된다. 로봇에 의한 수많은 작품이 쏟아지고, 승부는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로봇에 세금을 매기는 문제를 놓고도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유럽의회 로봇 결의안의 기초가 된 보고서는 로봇에 일자리를 빼앗기는 노동자의 재교육과 이들의 기본소득 보장 필요성을 제기하면서 그 재원 마련 방안으로 로봇세 도입 의견을 제시했다. 유럽의회는 로봇의 법적 권한과 책임에 대한 입법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로봇세 도입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국제로봇연맹(IFR)은 로봇세가 로봇산업의 발전을 가로막고, 오히려 신규 일자리를 줄어들게 만들 것이라며 반대해왔다.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 빌 게이츠와 유럽의 일부 정치인들은 로봇에 의한 일자리 잠식 문제 해결 방안으로 로봇세 도입을 적극 찬성하고 있어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전자인간’은 로봇시대를 관통하는 화두가 되었다. 지금 당장은 법제화 단계가 아니라 해도 그 필요성은 점증하게 되고, 결국 정면으로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문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로봇은 철저히 인간의 통제 안에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로봇이 인간과 비슷해질 수는 있지만 결코 같을 수도 같아지려고 해서도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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