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 9단과의 바둑대결로 유명해진 바둑인공지능 알파고(AlphaGO)를 개발한 딥마인드(DeepMind)사(社)는 영국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화제를 모은 바둑대결이 끝난 뒤에 이들은, 다음 활용분야는 의료분야가 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그 뒤로 딥마인드사는 영국의 국민보건서비스(National Health Service)와 함께 의료분야에 인공지능을 활용할 방안을 찾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그러나 마냥 희망적인 소식으로만 보기에는 조금 생각해봐야 할 지점이 있습니다.
딥마인드가 최초로 수행한 의료프로젝트는 영국 런던 소재의 한 병원과 함께 한 것입니다. 이들은 신장병 환자를 모니터링하기 위해 ‘스트림즈(Streams)’라는 스마트폰앱을 개발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이를 위해 약 160만 명에 해당하는 환자들의 기록을 무료로 제공했습니다.
다음으로 이들이 시작한 것은 안과질환의 진단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황반변성이라는 망막에 발생하는 질환을 진단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사람의 시각적 판단에 의존해야 했습니다. 망막의 3차원 영상을 촬영한 다음, 이 영상을 노련한 의사가 직접 보면서 진단을 했던 것입니다. 이 과정은 무척이나 느리고, 현재 환자 개개인의 상태만을 진단할 뿐, 조기진단을 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따라서 노인황반변성과 당뇨황반변증의 조기진단을 위해 인공지능을 도입한 것은 앞으로 초기에 이들 질환을 진단해서 예방할 수 있는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 위해 병원측은 약 100만 명 이상의 영상자료를 무료로 제공할 예정입니다. 이들이 목표로 삼고 있는 것은 수많은 영상자료의 분석을 통해 황반변성의 초기 징후를 찾아내는 것입니다.
최근 딥마인드는 새로운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영국의 한 대학병원과 함께 암 치료를 위한 방사선 치료에 인공지능을 이용하는 연구를 시작한 것입니다. 방사선 요법의 경우, 방사선을 내리쬐는 부위를 3차원으로 스캔한 다음, 치료할 수 있는 부위와 없는 부위를 직접 손으로 기계에 그려넣어야 했습니다. 특히 두경부암의 경우 복잡한 뇌 구조로 인해 이러한 작업은 무척이나 복잡했습니다. 이번 연구의 목적은 이러한 과정을 인공지능이 대신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이들은 약 700명의 스캔자료를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딥마인드는 이를 통해 해당 과정이 1시간에서 최대 4시간까지 줄어들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시간과 경험으로 일정 이상의 경지에 오르는 의사들과는 달리 인공지능은 학습할 수 있는 데이터의 양이 중요합니다. 최근 가장 주목받는 인공지능 학습방법인 딥러닝(Deep Learning)의 경우, 데이터가 많을수록 인공지능의 능력도 높아집니다. 따라서 딥마인드에게 의료당국이 저렇게나 많은 환자의 데이터를 제공한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합니다. 여기에 더해 영국의 스타트업인 ‘바빌론’은 환자들의 증상을 손쉽게 수집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들은 물론 해당 프로젝트들을 발표하면서 환자의 자료는 익명으로 처리될 것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연구결과의 성패를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기업의 선의에만 의존한 채, 수많은 환자들의 의료자료를 제공한 것은 조금은 무책임한 상황으로 보입니다. 일단 학습이 끝난 뒤 인공지능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가 기업의 의지에만 맡겨진다면, 모두에게 골고루 그 빛나는 성과가 돌아가리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요? 오히려 특정 기업에 공공의료가 종속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시장에서 다른 인공지능이 등장해서 경쟁한다면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전의 제품들과는 달리 오늘날 첨단 정보기술들은 진입장벽이 높고, 막대한 인적, 금전적 자원을 필요로 하기에 후발 주자들이 쉽게 따라가기에는 힘든 측면이 있습니다. 따라서 막연하게 자유경쟁시장의 원리로 운영될 것을 기대한다는 것은 너무 낙관적인 전망이 될 것입니다.
자료제공과 관련해서 발생하는 개인정보의 유출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수많은 자료들에 대해 개인의 허락을 얻은 상태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면 앞으로 심각한 사회적 문제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공공을 위한 좋은 목적’이라는 미명 하에 개인정보들이 거리낌없이 거대 기업에게 주어진다면, 개인의 가치와 존엄성은 지켜질 수 있을까요?
오늘날 인류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는 시급한 것들이 대부분이고, 그 해결의 어려움 또한 큰 것이 사실입니다. 이러한 때에 등장한 ‘인공지능’은 물에 빠져 위급한 사람에게 던져주는 구명대처럼 느껴지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인공지능이 펼쳐 보이는 장미빛 환상에 젖어 그 아래 숨어 있는 역기능이나 부작용에 대한 대비가 이루어지지 못한다면 인공지능의 혜택을 누리는 것보다 더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인공지능의 개발을 중단하거나 늦추어야 한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발달하는 만큼의 문제 해결을 위한 고민을 게을리한다면, SF에서 그려지는 인간의 어두운 모습이 우리의 현실이 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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