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정책 5개년 로드맵, ‘서울 디지털기본계획 2020’

지난 2월 23일, 서울시에서 <2020년 글로벌 디지털 수도’ 4대 전략>을 발표했다. 이번 발표는 박원순 시장이 올해 신년사에서도 밝힌 바처럼, 서울을 ‘글로벌 디지털 수도’로 만들어 나가겠다는 계획과 비전을 밝힌 것으로, 많은 관심을 끌었다. 서울이 세계를 선도하는 디지털 수도가 될 수 있도록 디지털 기술을 통해 정책의 수혜자인 시민이 직접 주도해 정책을 수립하고 신성장 디지털 산업을 통해 일자리 창출과 경제활성화를 견인하며 다양한 도시문제를 해결해 나가겠다는 비전을 밝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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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 전략으로 발표된 이번 계획의 내용을 살펴보면, 우선 ‘소셜특별시’라 명명한, 디지털을 활용한 시민 소통과 거버넌스를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공공디지털 서비스의 실제 수혜자인 시민이 원하는 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도록 시민, 기업, 전문가가 기획부터 실행, 운영, 평가의 전 과정을 주도하는 사업비율을 2020년까지 전체 공공디지털 사업의 50%까지 높이고, 서울시 대표 투표앱인 엠보팅 참여자수를 확대하여 시민과의 정책소통 기반을 강화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디지노믹스(Diginomics)’ 실현 전략이다. 디지노믹스는 디지털 기술이 먹고 사는 문제에 기여하는 것으로, 서울이 디지털 신성장 동력을 주도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핀테크 관련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을 운영해 육성해 나가고 ‘서울디지털재단’과 ‘개포디지털혁신파크’ 등을 통해 디지노믹스 활성화를 꾀한다는 계획이다.

이어서 디지털 혁신으로 도시문제를 해결하고 시민의 삶을 개선하는 ‘디지털사회혁신’ 전략이다. ‘사물인터넷 실증지역 시범사업’을 2020년에는 100개소로 확대 조성하여 서울 전역을 하나의 거대 ‘리빙랩(LivingLab)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시, 보건복지부, 민간시설 등에서 제각각 관리되고 있는 생활복지정보를 한 곳에서 통합 관리하는 ‘통합생활복지정보시스템(BigCare)과 동주민센터에서 일괄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원스톱 복지서비스’ 구축하여, 디지털 기반 서울형 복지정책서비스를 완성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마지막으로 글로벌 디지털리더로서 서울의 위상을 수립해 나간다는 것이다. 글로벌 디지털 기업들이 서울에 모여 역량과 경험을 공유하는 장인 ‘Seoul Digital Summit’을 매년 개최하여 글로벌 디지털 리더로서의 서울의 위치를 확대ㆍ강화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클라우드 기반 데이터센터를 구축하고, 빅데이터, 초고속 정보통신 인프라를 고도화하며, 세계시민과의 디지털경험을 공유함으로써 서울이 글로벌 디지털 중심 수도가 되도록 만들어 나가겠다는 비전을 밝혔다.

제4차 산업혁명 흐름에 부응

서울시는 이러한 4대 전략과 함께 그에 따르는 54개 실행과제도 발표했다. 실행과제들은 구체적인 사업에 해당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해당 사업은 서울시 단위 조직에 할당되어 추진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 내용은 주로 시민소통 강화, 디지털기반 경제플랫폼 조성, 디지털 기반 도시문제 해결, 글로벌 디지털 인프라 구죽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번에 발표된 ‘서울시, 2020 글로벌 디지털 수도’ 전략은, ‘제4차 산업혁명’으로 명명되고 있는 ‘디지털 혁명’의 흐름과 맞닿아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제4차 산업혁명’이 중심 주제였던, 2016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에 다녀오면서 이러한 비전을 확고히 한 것으로 보인다. 인공지능, 로봇, 사물인터넷(IoT) 등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디지털 시대는, 사회적ㆍ경제적 생태계의 근본적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서울시의 이번 디지털 수도 전략은 바로 이러한 요구에 부응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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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도시계획에 사람이 없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의 변화와 흐름에 부응한 것으로 보이는 서울시의 이번 계획에는 여러 면에서 크게 우려할 만한 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첫째, 사람이 중심인 디지털 사회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 정책 결정 과정이나 집행에 있어서 시민과의 소통은 강조하면서도 정작 디지털 기술의 확산이 가져올 ‘사람의 소외’, ‘사람의 부재’ 문제에 대한 고려는 매우 부족해 보인다. 예를 들면, 현재 북촌에서 진행 중인 ‘사물인터넷’ 실증지역 시범사업을 ‘20년까지 100개소로 확대하겠다는 계획이다. 지난 해부터 진행해 오고 있는 북촌 사물인터넷 실증지역 사업은 사물인터넷을 통한 주차관리, 쓰레기관리, 무료와이파이존 확대와 같은 아직은 ‘사물인터넷’이라는 이름을 붙이기 민망한 내용들이 대부분이다. 사물인터넷의 개념을 너무 편의적으로 해석하여 필요한 곳에 인터넷을 설치한다는 정도로 받아들이고 있는 듯하다. 쓰레기통에 센서를 달아 쓰레기의 양을 측정하는 것이 얼마나 필요한 일인지, 쓰레기 문제 해결을 위해 왜 굳이 고도의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디지털 기술이 사람과 노동을 배제하는 흐름으로 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북촌 한옥마을이야말로 사람의 온정이 아직 남아 있는 곳으로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오히려 주차관리원, 환경미화원을 더 늘린다면 고용문제도 개선될 일이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북촌 한옥마을과 같은 우리 전통이 살아 있는 몇 안 되는 공간을 굳이 전면적으로 디지털화하려는 발상이다. 고도의 디지털 사회일수록 더 긴요하게 필요한 공간은 ‘디지털 디톡스존’과 같은 디지털로부터 해방된 곳이다. 일부러라도 이러한 공간을 만들어야 할 판에, 이미 그러한 요건을 갖추고 있는 곳인 북촌을 디지털 기술의 점령지대로 만들겠다는 발상은,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 사람 중심의 디지털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기술을 위한 사람’이 아니라 ‘사람을 위한 기술’이라는 정책철학을 분명히 견지해야 한다. 시민의 삶의 질을 생각한다면, 서울을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조화로운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 휴식과 쉼, 멈춤과 느림의 가치가 디지털 기술과 공존하는 공간으로서 서울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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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프라 구축에 편중된 계획

둘째, 기존 관행을 답습하고 있는 인프라 구축 중심의 행정 계획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우리 나라를 IT강국이라고 자찬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는 대부분 인프라 측면에서 그러했던 경향이 있다. 이 말은 지금 우리가 보유하고 있는 디지털인프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결코 낙후되어 있지 않다는 의미다. 서울에 클라우드 기반 데이터센터를 만드는 일과 같이 매우 필요한 인프라구축 계획도 있지만, 실효성이 불분명한 각종 센터 설립과 같은 인프라 구축에 적지 않는 예산이 책정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인프라에 대한 투자를 늘린다면, 미국의 ‘테크숍’(디지털 기술의 활용과 지원 공간)과 같은 공간을 많이 만들어 누구든지 창의적인 발상과 아이디어가 있으면 장비와 기술을 지원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공공기관의 행정 절차가 강조된 공간이 아니라, 시민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 공간이어야 한다.

하지만 핵심은 결국 소프트웨어 중심의 정책이다. 디지털 경제 모델 창출을 위해서라도 인프라 구축 중심의 하드웨어 정책은 한계가 분명해 보인다. 예산의 효율성 측면에서는 더 그러하다. 더구나 책정 예산의 절반 정도가 현 시장의 임기 이후에 집행된다는 점에서 지속성을 신뢰하기 어렵다. 이는 민선 지방자치단체장 시대의 관행으로 볼 때 충분히 우려할 만한 사안이다. 영국, 독일과 같은 나라에서 진행하고 있는 소프트웨어 중심의 디지털 사회로의 전환 정책들을 참고하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

셋째, 디지털 시대의 적응을 위한 교육 계획이 부족하다. 이번 서울시 계획에는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디지털리터러시교육, 디지털 시대의 시민의식을 배울 수 있는 디지털시티즌십교육과 같은 매우 중요한 부분에 대한 투자나 육성 방안이 빠져 있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시민교육 계획도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이번에 발표한 전략에 따른 이행과제 목록에 교육과 관련된 부분은 세 개에 그치고 있는데, 그나마도 ‘평생학습포털시스템 고도화’, ‘디지털 소셜 역량 강화’와 같은 시민의 디지털 역량 성숙이나 시민의식 교육에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할 항목뿐이다. 전체적으로 시스템관리나 인프라에 대한 투자에 편향되어 있어, 교육과 같은 사람에 대한 투자가 상대적으로 빈약해 보인다.

외화내빈에 대한 우려

넷째, ‘글로벌 디지털 수도, 서울’, ‘글로벌 디지털 리더’와 같은 슬로건이 말해 주는 것처럼 겉만 화려한 보여주기식 계획에 대한 우려다. 디지털 시대의 핵심은 ‘네트워크’다. 네트워크는 그 자체로 글로벌한 성격을 지닌다. 네트워크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집중이 아니라 확산이다. 어떤 한 곳이 세계의 리더나 중심이 되는 시대가 아니라는 뜻이다.

‘세계 최고의 디지털 인프라 구현’과 같은 이행과제가 이루어진다고 해서 서울이 글로벌 디지털 리더가 되는 것은 아니다. ‘전자정부 정책 서비스의 해외 진출’과 같은 그다지 불필요해 보이는 전시 사업도 눈에 띈다. 또한 다른 이행과제를 보더라도 ‘글로벌 디지털 리더’라는 전략에 따른 이행과제의 연관성을 그다지 찾기 어렵다. 우리 주변에서 늘 관행적으로 되풀이되던 수사만 요란한 구호에 그칠 가능성이 농후한 정책들에 대해서는 과감한 수정이 필요하다.

디지털 불평등 해소에 관한 방안 필요

마지막으로 지적할 수 있는 것은 ‘디지털 불평등’에 관한 정책적 배려가 부족해 보인다는 점이다.  서울시는 그 동안 다른 지자체보다도, 소외된 지역과 계층에 대한 배려가 높은 곳이었다. 하지만 이번 계획에서는 ‘정보취약계층 정보격차 해소’와 같은 정책이 없는 것은 아니나, 전반적으로 ‘디지털 불평등’을 해소하려는 의지가 뚜렷하게 드러나 있지 않다. 앞서 살핀 대로 주요 정책의 대부분이 시스템관리나 인프라구축에 쏠려 있음으로 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 할 것이다. 서울시 전역에 있는 공공 장소에 무료와이파이를 제공하는 것보다도 디지털 격차를 해소할 실질적인 계획이 아쉽다. 특히 디지털 인프라나 교육의 측면에서 균등한 기회를 제공받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한 지원 정책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관행의 극복, 사람 중심의 디지털 서울 희망

박원순 시장이 의욕적으로 발표한, <서울시, 2020년 ‘글로벌 디지털 수도’ 4대 전략>은 디지털 시대로의 전환에 대한 발 빠른 대응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거대도시, 서울의 미래는 우리 나라 전체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다만 한때 IT강국이라는 허울에 빠져, 내실 있는 준비 부족으로 더 나은 사회로의 전환에 대한 기회를 잃어버린 경험을 떠올린다면 이번 서울시 계획은 좀 더 충실한 보완이 필요하다. 디지털 시대에 대한 분명한 이해와 정책 철학을 바탕으로 한 전략 제시가 아쉽다. 기술과 시스템이 아니라 ‘사람’이 중심인 디지털 수도 서울이기를 바란다. 관행을 극복한 내실을 기대한다. 아직 바로잡을 시간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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