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과 얼굴인식 기술을 활용해 포르노에 등장하는 여성들의 신원을 확인하는 프로그램이 만들어졌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 뉴스를 보고 나다니엘 호손(Nathaniel Hawthorn)의 소설 “주홍글씨”가 생각났다. 1850년에 간행된 이 작품은 당시 미국 청교도 사회의 어둡고 엄격한 분위기가 그려진다. 불륜으로 아이를 낳은 여인은 평생 간통(Adultery)을 뜻하는 A라는 주홍 글자를 수놓은 옷을 입고 살아야 하는 벌을 받는다.
중국계 프로그래머 리쉬(Li Xu)는 100테라바이트 분량의 수많은 여성들의 데이터를 수집했다. 포르노 사이트는 물론이고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틱톡, 웨이보 같은 소셜 미디어에서 쉽게 여성들의 모습을 가져올 수 있었다. 그리고 포르노 사이트와 소셜 미디어에서 얻은 영상과 사진을 서로 비교 대조하는 작업을 벌였다. 그는 이렇게 해서 포르노 업계에서 일하는 10만 명이 넘는 여성들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자신의 SNS에 자랑스럽게 알렸다.
육안이나 수작업으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이런 일을 가능하게 한 것은 첨단 기술 덕분이다. AI와 얼굴인식 기술을 이용해 신원 확인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얼굴 확인으로 여성들의 신원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리쉬가 이 프로그램을 만든 것은 섹스 비디오에 등장하는 이른바 “문란한 여성”들이 누군지 알아내는 것을 돕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그는 이 프로그램을 소개하는 인터넷 생방송까지 예고했지만 빗발치는 비난 여론에 취소하고, 사과와 함께 수집한 여성들의 데이터도 삭제했다고 밝혔다.
포르노는 국가에 따라 합법인 나라도 있고, 불법인 나라도 있다. 하지만 본인이 원해서 영상을 찍었다 해도 누군가에 의해 몰래 자신의 신원이 공개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심각한 인권 침해일 뿐 아니라 그것은 또 하나의 주홍글씨가 될 게 분명하다. 이번 파동은 첨단 기술을 배경으로 한다. 시대적 지역적 종교적 배경이 낳은 소설 속 주홍글씨와는 달리 자칫 수많은 주홍글씨를 양산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게 성 소수자일 수 있고, 단 한번의 실수나 잘못을 저지른 사람일 수도 있다.
미국 뉴욕 지역의 한 교육청은 학생 보호를 목적으로 9월부터 학교에 얼굴인식 시스템을 가동한다. 학교에 들어오려는 성 범죄자나 정학을 당한 학생들을 일반 학생이나 교직원들의 얼굴과 대조해 출입 금지 같은 즉각적인 조치를 취할 수 있게 하기 위한 방편이다. 총기 사고가 많은 만큼 교육 당국으로서는 학교의 안전 강화가 절실하지만 규제 대상자에게는 주홍글씨의 낙인을 찍는 일이 될 수도 있다. 무슬림 소수민족 위구르족을 잠재적 테러리스트로 여겨 추적하는 중국의 얼굴인식 시스템 역시 다른 각도의 주홍글씨다.
포르노 속 여성 인물의 신원을 확인하려는 시도는 상식과 균형을 벗어난 성 차별적인 범죄적 행각으로 비난 받아 마땅하다. 프로그래머가 정상적인 사고를 지난 사람인지 의심스럽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첨단 기술의 양면성과 더불어 기술의 개발과 활용을 둘러싼 보다 깊은 고민과 성찰을 요구하게 만든다. 기술은 편의와 긍정적인 측면만 부각될 때가 많지만 상시적으로 악용 가능성이 존재한다. 현대인은 가상의 네트워크에 둘러싸여 온라인 감옥에 갇혀 산다. 기술은 개인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기록하고 보관하고 활용한다. 기술은 결국 인간의 문제이고, 윤리의 문제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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