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스닷컴의 ‘2017 여행자 모바일 이용 현황 조사(Mobile Travel Tracker)’는 한국인이 얼마나 스마트폰에 얽매여 사는 지 보여준다. 여행 중 하루 스마트폰 이용이 3.9시간으로 태국에 이어 세계 2위였다. 세계 여행자들의 평균 사용시간보다 1시간 이상 많았다. 무료 와이파이를 제공하지 않는 호텔은 예약하지 않겠다는 응답도 41%나 되었다. 스마트폰에 대한 집착과 의존이 그만큼 강하다는 뜻이다.

여행 중에도 이럴진대 일상 생활에서는 더 말할 나위 없다. 시도 때도 없이 벨이 울리고, 시진 찍기에 바쁘고, 머리를 숙여 화면에만 열중하는 모습은 학교나 공연장, 지하철과 버스, 결혼식장이나 장례식장, 교회와 성당, 사찰 같은 다중이 모이는, 예의를 지켜야 되는 그 어떤 곳에서도 예외 없이 겪는 문제다. 사실 강도의 차이는 있지만 세계 어느 곳이라도 다르지 않다. 오죽하면 바티칸에서 미사를 집전하던 프란치스코 교황이 예배는 쇼가 아니라며 이례적으로 무분별한 스마트폰 사용을 질책했을까.

스마트폰은 단순한 소통 도구가 아니라 첨단의 기술과 생활의 편의를 이어주는 매개체다. 쓰임새가 많아질수록 사용이 늘어난다. 하지만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만지작거리며 절제하지 못하는 중독성이 문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정보화진흥원의 ‘2017년 스마트폰 과의존 실태조사’는 청소년의 30.3%, 유아나 아동의 19.1%, 성인의 17.4%를 스마트폰 중독의 위험군으로 분류했다. 경건한 종교의식을 방해하고, 교사의 수업 분위기를 해치고, 공연을 망치는 일이 부지기수로 일어난다.

디지털 기기와 적절한 거리감을 두고 살자는 디지털 디톡스 운동이 활기를 띠고 있지만 이게 널리 확산되지 못하는 것은 자발적인 의지와 노력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몸에 배인 습성과 중독성을 스스로 바꾼다는 게 그만큼 힘들다는 반증이다. 그렇다면 스마트폰이 수업이나 공연, 예배의 분위기를 해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을까? 미국에서는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일정 기간 기기를 사용할 수 없게 만드는 ‘스마트폰 주머니’의 활용이 늘고 있다.

재즈 피아니스트이기도 한 미국의 그래엄 듀고니(Graham Dugoni)는 스마트폰에 의해 자신의 공연이 방해를 받았던 경험을 바탕으로 아이디어 상품인 ‘스마트폰 주머니’를 만들었다. ‘욘더(Yondr)’라는 이름의 파우치 형태로 된 이 주머니는 잠금 장치가 부착되어 있어 스마트폰을 넣으면 사용자가 임의로 꺼낼 수 없게 만들었다. 쇼핑몰에서 옷을 살 때 계산대에서 도난 방지 보안 태그를 제거하듯이 잠금 해제 장치를 통해서만 스마트폰을 다시 꺼낼 수 있다.

이 제품은 공연장에서 각광을 받았다. 유명 팝스타 공연장은 스마트폰과의 전쟁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 아무리 공연 전 고지를 해도 막무가내다. 관객들은 저마다 일어나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고, 공연을 녹화하고, SNS로 생중계하기 일쑤다. 흥을 돋우는 역할도 하지만 가수가 노래에 집중하지 못하고, 뒤쪽의 관객은 공연을 제대로 즐기지 못할 뿐 아니라 저작권 같은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스마트폰 주머니’는 요긴하게 사용되었다. 관객들이 공연장에 입장할 때 ‘욘더’를 나눠줘 스마트폰을 담아가게 하고, 공연이 끝난 뒤 나갈 때 특정 장치를 통해 주머니를 열어서 스마트폰을 다시 사용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이다.

‘욘더’는 공연장뿐 아니라 극장이나 학교, 법원은 물론 각종 모임을 갖는 행사장에서 임대 방식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특히 모바일 기기를 둘러싸고 교사와 학생 사이에 갈등이 끊이지 않는 학교가 그 효용성을 주목하고 있다. 스마트폰에서 자유로운 교육 환경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600여개 학교가 ‘욘더’를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캘리포니아의 샌 로젠조 고등학교(San Lorenzo High School)도 ‘스마트폰 주머니’를 사용한다. 수업시간에 스마트폰을 안전하게 보관함으로써 전반적으로 학생들의 성적이 올라갔고, 학생이 교사에게 대드는 경우가 82%나 줄었다는 사용 결과를 내놓았다. 더욱 중요한 것은 교실에 활기가 넘치게 되었다는 것이다. 스마트폰에만 몰두하던 아이들이 서로 떠들며 대화하기 시작했고, 책을 읽고, 운동장에 나가 공을 차고, 얼굴을 맞댄 소통의 모습이 훨씬 많아졌다는 것이다.

물론 반강제적으로 스마트폰 사용을 억제하려는 방식에 대한 논란도 있다. 자율성을 침해한다는 비판이다. 하지만 공공장소에는 모두가 지켜야 할 규범이 있기 마련이다. 자신의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불쾌감을 주거나 특정 목적의 행위를 방해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면 제재가 뒤따른다. ‘스마트폰 주머니’는 이런 시각에서 볼 필요가 있다. 기기에 대한 의존과 속박에서 벗어나 절제하며 사용할 수 있는 역량을 기르는 것, 힘들지만 이게 최선의 방법이지만 차선책을 통해서라도 부작용을 줄이는 게 낫다.

인쇄하기

이전
다음
1+

소요 사이트를 방문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액수에 관계없이 여러분의 관심과 후원이 소요 사이트를 유지하는 데 큰 힘이 됩니다. 후원금은 협동조합 소요 국민은행 037601-04-047794 계좌(아래 페이팔을 통한 신용카드결제로도 가능)로 후원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