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첨단 기술이 미국의 턱밑까지 추격했고, 실생활에서의 다양한 적용은 서방 세계를 앞선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금융과 기술을 결합한 핀테크 분야는 이미 중국이 세계를 선도하고 있다. 그리고 누구나 쉽게 돈을 갖다 쓸 수 있는 대출 천국의 환경을 만들었다. 하지만 기술이 주는 이런 혜택의 뒤에는 빚더미의 삶과 개인정보의 악용이라는 중국의 그늘진 다른 모습이 보인다.
뉴욕타임스가 중국 젊은이들의 현실을 조명했다. 대학을 중퇴한 30대 초반의 한 청년은 자영업에 실패한 뒤 경비원과 웨이터를 전전하다 지금은 베이징에서 배달 일을 하고 있다. 한 달에 버는 돈은 600달러인데 갚아야 할 빚이 5000달러나 된다. 푸젠에 사는 또 다른 이는 생활비와 가게를 꾸리는 데 쓴 7만5천달러의 빚을 안고 있다. 무려 30곳의 대출 업체로부터 돈을 빌렸다. 한때 한국의 카드 돌려 막기처럼 빚으로 빚을 갚는 상황이 중국에서 횡행하고 있다.
중국 인민은행에 따르면 8600개 이상의 업체가 웹과 모바일로 소액대출을 제공한다. 언제 어디서 누구라도 쉽게 돈을 빌릴 수 있다. 기술과 과학을 앞세운 대출 시스템은 심지어 몇 초 만에 현금을 손에 쥘 수 있게 만드는 놀라운 힘을 보여준다. 수천 개 대출 앱이 경쟁적으로 빚을 권한다. 대출을 받은 사람 가운데 95% 이상이 복수의 업체로부터 돈을 빌려 쓴다. 부실을 키우는 결과를 가져왔다. 갚지 못한 채무가 1450억달러에 이른다. 세계적인 경영컨설팅 회사인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은 이보다 두 배나 많은 3920억 달러로 추정한다.
가난한 청년들이 아무리 벌어도 빚에서 헤어날 수 없는 경우가 늘자 중국 정부가 뒤늦게 대출업체의 신규 등록을 막으며 규제에 나섰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신용을 담보로 한 대출은 상환 능력을 엄격히 검증한다. 개인정보를 들여다보고 고객을 심층 분석한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을 활용해 소득 수준을 파악하고 소비 습관이나 소셜 미디어 활동을 살펴본다. 하지만 중국은 개개인의 신용등급 자료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태였다. 정보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돈을 빌리려는 사람이 스마트폰에 얼마나 빨리 문자를 입력하는지, 테이크아웃 음식을 얼마나 자주 먹는지, 스마트폰 배터리 용량이 얼마나 남았는지를 추적하는 세심하고 다양한 평가 항목들이 있었지만 부실을 막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쉽게 돈을 빌릴 수 있는 환경은 과소비 풍조를 가져왔다. 마약 같은 중독성으로 이어졌다. 빚이 빚을 낳는 악순환이 계속되었다. 여기에 개인 정보 악용과 프라이버시 침해라는 또 다른 부작용이 생겼다. 무차별적인 개인 정보 수집과 판매가 이루어졌고, 대출 상환 요구에 협박과 폭력이 개입되는 문제가 드러났다. 대출 담보로 나체 사진을 요구하는 일도 생겼다. 빚을 제때 갚지 못하면 휴대 전화 위치 추적을 하고 있다는 문자로 압박을 가했고, 대출 조건으로 제공한 친구나 지인들의 전화 번호를 교묘히 활용하기도 했다.
농촌 출신 도시 노동자인 농민공은 물론 대학을 갓 졸업했거나 변변한 직장을 갖지 못한 청년들, 도시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중국에서 은행 문턱을 넘기 어려웠다. 위급한 상황이 닥쳐도 손을 벌릴 곳이 없었다. 이들에게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같은 기술의 발전은 담보 없이도 쉽게 돈을 갖다 쓸 수 있는 길을 터줬다. 안정적 생활의 기반을 마련하고 기회와 희망을 가져다 주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부작용을 동반했고, 중국의 고질적인 상황과도 겹쳤다. 기술과 과학을 동반한 신용거래의 첨단 기법으로도 극복할 수 없는 새로운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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