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에서 구글 스폿라이트스토리즈(Spotlight Stories) 앱을 다운받아 상호작용이 가능한 버전을 체험할 수 있다.
 VR 애니메이션 <소파혹성>은 미국의 장수 애니메이션인 <심슨가족(The Simpsons)> 제작진과 구글 ATAP의 협업으로 탄생했다. <혹성탈출(Planet of the Apes)>(1968)을 패러디한 작품으로, 소파가 지배하는 혹성에 갇힌 심슨가족의 모험을 다룬다. <소파혹성>은 실시간렌더링(realtime rendering) 방식으로 제작되어, 이용자의 시선에 따라 콘텐츠의 구성이 다양한 순열과 조합으로 실현된다.

<소파혹성> 중 동굴장면의 상호작용 영역

 <소파혹성>의 동굴장면은 실시간렌더링 방식의 작품에서 비선형적 스토리텔링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잘 보여준다. 이 장면은 여섯 가지 상호작용 영역으로 구성되는데, 각 영역은 이용자의 시선이 머물면 활성화된다. ① 영역에서 심슨가족은 ‘(소파에) 드러눕는 인간’이라는 뜻의 ‘호모 레클리누스(Homo Reclinus)’ 팻말이 붙은 감옥에 갇혀있다. 이 동굴장면의 핵심 사건은 주인공인 심슨가족이 집에 있던 소파의 도움을 받아 감옥에서 탈출하는 것이다. ②에서 ⑥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소파혹성의 분위기와 VR 매체에 대한 자기반영성을 부각시킨다. 그러나 플롯의 완결에 대한 기여도는 ① 영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실시간렌더링 방식의 작품에서는 중요한 서사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이용자의 시선을 끌어와야 한다. 앞서 <타임 패러독스>에서 화살표의 움직임이 겨냥한 역할이다. 반면, 실시간렌더링 방식의 작품에서는 이용자가 부차적 사건에 ‘한눈파는’ 동안 핵심사건을 지연시키는 것이 가능하다. 이용자의 움직임을 추적하여 플롯의 전개에 실시간으로 반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이용자가 ⑤ 영역의 천장을 바라보며 <소파의 창조>에 정신을 빼앗기거나 ② 영역에서 고양이를 토하는 소파에 뜨악해하는 동안, 심슨가족은 감옥에 갇힌 채 이용자의 시선이 돌아오길 ‘기다린다.’ 반면, 이용자가 심슨가족만 바라본다면 심슨가족은 집에 있던 소파의 도움을 받아 지체없이 탈출하게 된다. 사건의 중요도를 반영하여 상호작용이 정교하게 설계된 작품은 이용자가 시선의 자유를 누리느라 스토리의 흐름을 놓치는 사태를 막아준다.

<소파혹성>에서 이용자의 시선에 따라 달라지는 파란 소파

 위 이미지는 심슨가족이 동굴 감옥에서 빠져나갈 때 보이는 파란 소파를 두 가지 경우의 수로 보여준다. 심슨가족이 탈출하기 전에 이용자가 ② 영역을 바라본 적이 없다면, ② 영역은 활성화되지 못한다. 따라서 파란 소파는 왼쪽 이미지와 같이 서 있는 상태를 유지한다. 반면, 이용자의 시선이 ② 영역에 머문 적이 있다면, 파란 소파는 속에 얹힌 것들을 토한 후 오른쪽 이미지처럼 널브러진다. 즉, 이용자가 어느 방향을 어떤 순서로 보느냐에 따라 같은 콘텐츠라도 이용자의 체험은 유동적이고 개인적인 양태로 분화한다.

<소파혹성>의 사례는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수천 년간 이어져 온 ‘스토리’의 개념을 뿌리째 뒤흔든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스토리 내에서 일어난 사건의 결합을 ‘플롯’이라는 말로 설명했다. 플롯은 시작과 중간과 끝을 가지며, 일정한 길이와 질서를 가진다. 또한, 사건 하나라도 위치를 옮기거나 빼버리면 전체가 뒤죽박죽이 되도록 구성되어야 한다. 있으나 마나 한 사건은 ‘전체의 부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VR 스토리텔링에 이르러 플롯의 구성요소는 배열의 질서와 길이의 고정성을 잃는다. 심지어 일정 구성요소는 아예 생략되기도 한다. 시선의 자유와 상호작용성으로 인해 플롯과 스토리의 정의를 새롭게 할 필요성이 대두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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