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은 최후의 치료법을 택했다. 주치의는 로마에서 가장 건강한 유모들을 찾아보라고 명령했다. 젖가슴이 풍만하고 안색과 외모가 출중한 젊은 여자들이었다. 주치의는 각 여자의 젖가슴 상태를 직접 확인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주치의는 여자들의 젖꼭지를 손가락으로 가볍게 자극해 넉넉하게 쏟아져 나온 젖의 맛과 농도를 직접 검사했다. (중략) 파울루스 3세는 하루에 세 번 젖을 빨아먹고, 하루에 세 번 주치의가 직접 만든 젊은 피가 섞인 물약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마셨다. 첫 일주일이 지나자 교황의 건강이 호전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주치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해부학자>중에서

<플랫폼 제국의 미래>를 쓴 스콧 갤러웨이(Scott Galloway)는 테드(TED)의 강연에서 인간이 장수하려면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건강하고 오래 사는데 최고의 약은 어떤 신비스러운 동물의 피도 아니고 중세 교황이 선택한 여인의 풍만한 젖가슴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단지 타자에 대한 ‘사랑’만 있으면 건강하고 장수할 수 있다고 손가락을 치켜들며 말했습니다.

사랑하면 건강하고 장수할 수 있을까요? 타자에게 사랑을 주거나 받는 일이 쉬운가요? 개나 고양이 심지어 약간의 정성이라도 보이지 않아도 절대 죽지 않을 거 같은 선인장마저도 사랑을 주고받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대가없는 밝고 따뜻한 에너지를 아낌없이 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뭐, 사랑은 그리 힘들지 않아요.” “마음 가는 대로 주고받으면 되는 거죠!”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분명한 건 사랑하고 사랑받는 일은 몸과 정신이 살아 움직여야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눈과 입으로만 하는 사랑은 없다는 것이죠.

그럼 왜? 갤러웨이 교수는 사랑하면 장수한다고 말했을까요? 그의 말을 곰곰이 생각해보고 유추해보자면 이렇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또는 받는다는 느낌을 받으면) 몸 안에서 좋은 호르몬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가령 도파민, 아드레날린, 페닐에틸아민, 옥시토신, 바소프레신, 세로토닌, 멜라토닌 이라는 호르몬들이 분비 되고 활성화되는 것이죠. 이런 호르몬들은 기분을 좋게 만들고 밥도 맛있고 먹게 하고, 잠도 잘 자게 하는 마력이 있답니다. 그래서 사랑하라! 기분 좋은 호르몬을 활성화 시켜라! 그런 거 아닐까요.

아무튼, 동서양을 막론하고 잘 먹고, 잘 자는 것! 이건 행복의 기본이자 장수의 공식입니다. 다행스러운 건 인간이라는 종은 스스로 그런 호르몬을 활성화 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겁니다. 스스로의 노력과 의지로 몸 안에서 마약과 같은 호르몬을 생성 시킬 수 있는 것이죠.

그럼 인간은 어떤 상황에서 ‘사랑’이란 걸 할 수 있을까요? 돈과 권력의 충만함일까요? 돈과 권력이 전제 조건인 사람도 있겠지만 제가 생각하기에는 가장 근원적인 것, 그것은 ‘몸의 상태’가 아닐까 합니다. 지금 나의 몸 상태의 건강성, 그것이 타자에 대한 사랑을 할 수 있고 받을 수 있는 기본 조건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하지만 인간은 자신의 몸 상태에 따라 기분이 좌우되고 타인에 대한 배려도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자신의 몸 상태가 안 좋으면 밖으로의 언행이 부정적이고 폭력적으로 변하게 된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체력이 떨어지면 화를 잘나고 신경질적으로 변하게 된다는 것을 선생이나 양육을 하는 엄마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사랑을 하려면 그러니까 내 몸 안에 좋은 호르몬을 분비시키려면 매일 내 몸이 어떤 상태에 놓여있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부정할 수 없는 것은 과학과 의학이 아무리 진화해도 인간의 생물학적인 몸의 구조와 순환의 법칙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디지털 시대가 오고 인공지능이 인간의 삶에 진격 해와도 해와 달의 순환, 봄-여름-가을-겨울의 운행은 멈추지 않는다는 것 입니다. 로봇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인간의 삶을 책임져도 밤이 되면 별과 달이 뜨고 낮이 되면 태양이 뜬다는 사실, 이 속에서 인간은 몸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원리, 이건 아마도 변하지 않을 겁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의 몸은 아슬아슬함을 넘어서 위험에 이르고 있습니다. 서구에서 건너온 불(火)의 문명에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별이 뜨고 달이 나타나면 휴식을 취하고 잠을 자야 하는데 게임, 영화, 드라마, 음악, 페이스북, SNS, 검색, 쇼핑. 야식, 음주, 노래방 등등의 각종 모임과 관계 속으로 빠져들어 가 휴식과 잠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한낮의 수업임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은 힘이 없어 보이고 등은 휘어 있습니다. 그 와중에도 스마트폰을 쥐고 노려보고 있습니다. 어떻게 청춘이 등이 활처럼 굽어있고 어깨가 자라목처럼 움츠려 있을까요? 대학생= 청춘= 봄 아닌가요? 아쉽게도 생명의 기운이 좀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사랑을 할 수 있을까요? 사랑과 공부는 ‘몸’으로 하는 건데 말이죠.

더욱더 슬픈 건 학생들에게 하루가 지루하고 답답하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입니다. 자기가 주도하는 일상이 없고 하루 종일 시간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공부와 몸이, 생활과 몸이 별개로 움직이니 하루가 따분하고 매일이 그저 그렇고 재미가 없을 수밖에 없습니다. 반복되는 일상, 그건 ‘권태로움’입니다. 육체적인 고통보다도 더 큰 지옥이라고 합니다. 권태로움의 탈출은 ‘소비’와 ‘중독’입니다. 무얼 쇼핑하거나 무엇에 중독되어야 동일한 일상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소비와 중독에서 배움이나 깨달음은 결코 오지 않습니다. 쾌락만 있을 뿐입니다. 누군가 이야기 했듯이 오늘날 학생들은 취업과 연애, 어른들은 물질과 소비에만 마음이 가 있습니다. 몸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제와 다른 기분, 어제와 다른 몸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시공간은 매일 변화하는데 내 몸은 그대로이니 어떻게 하루의 리듬을 타고 타자를 사랑을 할 수 있을까요? 사랑해야 좋은 호르몬이 나오는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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