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디지털 세상, 타인의 삶

 

스티브 잡스가 좋아한 시(詩)가 있다. 윌리엄 브레이크(William Blake, 1757∼1827) <순수의 조짐>(Auguries of Innocence)이다.

한 알의 모래에서 세계를 보고

한 송이 들 꽃에서 천국을 본다.

네 손바닥 안에 무한을 쥐고

한 시간 속에서 영원을 보라

새장에 갇힌 한 마리 새는

천국을 온통 분노케 하고

(중략)

주인집의 문 앞에서 굶어 쓰러진 개는

한 나라의 멸망을 예고한다.

길가에서 학대받은 말은

사람의 피로 천국을 물들인다.

 

스티브 잡스는 왜, 이 시를 좋아했을까. 최영미 시인의 해석으로는 아마도 세 번째 행의 “네 손바닥 안에 무한을 쥐고”가 마음에 들었을 것이라는 것이다.(최영미, 시를 읽는 오후, 해냄, 2017) 그랬을 것이다. “나는 대중들의 손에 권력을 쥐어 주겠다.”고 말했던 잡스는 결국 스마트 폰을 만들어 우리들 손위에 올려놓았다.

최근 방송이나 언론에서 가장 환영받고 성공하는 코드는 ‘여행’과 ‘음식’ 관련 프로그램일 것이다. 틀면 먹고 있고, 돌리면 여행 다니고 있다, 그걸 보는 시청자들은 동경하고 따라 하기도 한다. 그런데 요리와 여행 못지않은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 생겨났다. 바로 인공지능,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플랫폼, 블록체인, 3D프린팅 등과 같은 4차 산업 관련 프로그램들이다. 매일 업데이트 되는 정보는 헤아릴 수도 없다. 어제와 다른 새로운 기계가 등장하고 인간의 미래가 점쳐진다. 교육, 의료, 법률, 직업, 세무, 언론, 건축 심지어 종교와 예술에 이르기까지 기계는 거침없이 진군 중이다. 기계의 등장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속도, 효율성, 정확성 때문이다. 사람들은 고개를 숙이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럼 인간은 뭔가? 나의 직업은 안전한가? 기계의 진화를 어디까지 용납할 수 있는가? 기계와의 공존은 가능한가?

인간은 태어나서 사랑하고 놀다가 죽는다. 인간에게 사랑과 죽음이 없다면 인문학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기계의 등장은 인간에게 또 다른 사랑과 죽음의 방식을 생각하게 만든다. 최근 섹스로봇 ‘사만다’의 등장은 사람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배우 오드리 헵번을 닮은 ‘소피아’는 2017년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열린 ‘미래투자 이니셔티브(Future Investment Initiative)’ 행사에 참가한 자리에서 사우디아라비아로부터 시민권을 획득하기도 했다. 2013년 개봉된 영화 <her>의 감성로봇 사만다는 목소리만으로 남자 주인공 시어도오와 감정을 교류한다.

죽음은 어떠한가? 인간은 모두 죽는다는 불변의 원칙 속에서 신(神)의 권위와 인간의 겸손은 두드러질 수 있었다. 하지만 기계의 등장은 이제 신의 권위를 바닥에 팽개치고 인간의 욕망을 부추기고 있다. 심장병 전문의이며 유전학 교수인 에릭 토폴(Eric Topol)은 저서 <청진기가 사라진 이후: 환자중심의 미래 의료 보고서>(2015)에서 “언젠가는 당신이 엄마 배 속에 있을 때부터 무덤에 들어갈 때까지 모든 데이터가 개인 클라우드 저장소에 축적되어 질병이 생기기도 전에 예방하게 될 것이다.” 라고 말했다. 그의 예측은 현실이 되어 돌아오고 있다. 최근 IBM의 인공지능 왓슨은 정확한 암의 판독과 처방으로 환자들로부터 환영을 받고 있다. 방대한 데이터를 빠른 속도로 판독하고 정확한 진단과 확률의 처방으로 인간은 이제 자신의 병을 좀 더 미리 예측하고 예방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인간에게 평등했던 죽음은 인공지능 왓슨의 등장으로 평등하지 않을 수도 있게 되었다. 어쩌면 인간은 진시황이 실패했던 영생의 방법을 결국 찾을는지도 모른다.

이제 미래의 방향은 정해져 있다. 인간은 끝끝내 죽음을 정복할 것이고 최고로 강한 플랫폼이 작은 플랫폼을 모두 흡수할 것이다. 통합된 하나의 커다란 인터넷이 지구를 조정하며 그 안의 인간을 바라볼 것이다. 피해 갈 길이 없다. 자본주의는 잔인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 결국 인문학의 시작이자 끝인 이 화두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기술은 궁극으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물질성은 떨어진다. 그러니까 기술과 소비가 최대치가 될수록 인간은 비물질적인 것에서 어떤 가치와 매력을 찾게 된다. 가령 아름다움, 생명, 웃음, 미소, 관계, 성취감, 목소리, 죽음 등이다.(물론 이 특성들도 머지않아 인공지능에 의해 그 가치가 ‘측정’ 될 것이다.) 물질의 끝은 결국 비물질적인 것으로 다시 돌아온다는 우주의 순환을 믿으면서 우리는 이제 기계의 경이로운 진화와 플랫폼의 위력 속에서 비물질적인 아름다움의 가치를 찾아야 한다. 인간은 사랑과 죽음으로 살아왔다. 그리고 그 사랑과 죽음을 경험하면서 인간만의 가치와 의미를 생산해왔다. 디지털 세상은 소비의 세계이고 타인의 삶이다. 그곳에는 자유가 있고 권력이 있다. 그런 디지털 세상 속에서 인간은 여전히 사랑과 죽음을 들여다 볼 수 있을까? 이제 인간은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인문학적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어떻게 살 것이며, 어디로 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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