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리 개가 걸어가는데 어떤 사람이 와서 옆구리를 살짝 민다. 개는 기우뚱했지만 곧바로 균형을 잡고 앞으로 전진한다. 그러자 또 누군가 다가와서 이번에는 좀 세게 그 개 발로 밀었다. 개는 고꾸라졌다. YouTube에서 본 영상이다. 로봇 개의 실험 장면이었다. 로봇 개를 걸어가게 하고 실험자들이 발로 건드리거나 차는 것이었다. 어쩐지 개는 침을 흘리거나 으르렁거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기만 했다.

실험자는 왜 개를 넘어뜨리려고 한 것일까? 목적이 있었다. 폭력(가격)을 당하는 로봇 개를 보고 인간들은 과연 어떤 감정을 일으키는지? 그러니까 인간에게 난데없이 옆구리를 걷어차인 그 로봇 개를 보고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하는 것을 알아보는 실험이었다. 아유 불쌍해, 저 걷어차는 새끼는 도대체 누구지? 하며 동정을 하는지, 아님 뭐. 괜찮아. 로봇이잖아. 어쩔 수 없잖아. 하는지를 알아보는 것이었는데 나는 그 광경을 보고 실험자들의 목적과는 좀 다른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만일 그 로봇 개가 자신을 발로 찬 인간을 기억하고 훗날 거시기를 콱 물어버리는 복수(?)를 하면 어떨까? 하는 것이었다.

미국의 멜로즈라는 지방에 첨단의 과학적 시스템으로 운영이 되는 이색 휴양지가 문을 연다. 개척시대의 서부, 중세의 성, 로마의 유원지가 그대로 재현이 된 그곳은 곧 대중적인 휴양지로 모든 사람들의 이목을 끈다. 틀에 박힌 생활에 환멸을 느끼고 있던 사람들은 이곳 멜로즈로 찾아와 휴가를 만끽하고, 변호사인 마틴과 블레인도 일상 생활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웨스트 월드(Westworld)에 도착하게 된다. 처음에는 컴퓨터로 조작되는 인간들과의 신나는 총격전과 수많은 미녀들과의 색다른 즐거움 빠져 있었으나 시일이 지나자 이상한 현상들을 발견하게 된다. 어떤 힘에 통제를 받는 인조인간들이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웨스트 월드(Westworld, HBO, 2016)는 미래 인간의 유토피아를 그린 드라마로 HBO가 자신들이 만든 최고의 작품 <왕좌의 게임>을 넘어서리라는 야망을 가지고 만든 작품이다. 서부시대로 꾸며놓은 가상의 세계, 그곳에서 인간은 자신이 원하는 방식과 욕망대로 서부시대를 경험할 수 있다. 폭력, 살인, 섹스를 원하는대로 마음껏 즐길 수 있다. 돈만 지불하면 된다.

“억양을 빼.” 여자주인공 돌로레스에게 누군가 이렇게 주문하는 것으로 시즌 1의 첫 장면은 시작된다. 말을 할때 소리의 억양을 빼라는 것이다. 그녀는 그렇게 할 수 있다는 듯이 고개를 살짝 내린다. 감정에 영향을 받는 목소리를 조절하다니 놀랍다.

“좋아, 돌로레스 이번에는 몸에서 나는 냄새도 제거해봐.”라고 명령하면, “네 주인님.”하고 바로 할 수 있을까? 그러는 사이에 내가 좀 곤란해진건 여자주인공 돌로레스가 너무도 인간적인 얼굴과 몸 표정과 걸음걸이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일반적으로 로봇과 인간의 가장 큰 차이점은 미세한 손짓과 걸음걸이라고 어느 과학자가 했던 말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주인공 돌로레스는 마치 인간과 똑같아서 보는 내내 로봇이라고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 하지만 어떤 장면에서 그녀가 로봇임을 환기해주는 대사가 나오면 “아, 맞아, 저건 로봇이지.”하며 다시 한번  그녀의 음색, 눈빛, 몸매를 관찰하게 된다. 그러면서 또다시 “흠. 그래도 저런 로봇이라면. 괜찮을 거 같군. 전혀 로봇처럼 보이질 않아. 마음에 들어. 섹스도 할 수 있을까? 아마 할 수 있을거야. 메뉴얼이 입력돼 있겠지.”이런 생각을 하게된다. HBO의 장담처럼 이야기는 왕좌의 게임 못지 않게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어느새 1부는 끝이나고 나는 곧바로 2부를 클릭한다.

인간은 자신에게서 발산돼 나오는 소리와 냄새를 의도적으로 제거하기 어렵다고 나는 생각한다. 어쩌면 태어날때부터 박힌 지문이나 손금보다도 그것은 더 떼어내기 어려울 것이다. 그건 자신이 살아온 시간과 공간에 의해 만들어진 인()과 연()의 업()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소리와 냄새는 그(또는 그녀)가 살아왔던 땅, 하늘, 바람, 비, 쌀, 밀가루, 물, 부모, 가족, 친구, 교육, 종교, 기후, 별, 달, 태양, 우주 등등이 복합적으로 시간을 집어삼키며 형성된 것이다. 따라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자신만의 소리와 냄새는 그 시간만큼 살아온 기쁨, 좌절, 희열, 고통을  품고 있다. 그러므로 아기에게는 우유의 냄새가, 소년에게는 햇빛의 냄새가, 소녀에게는 달의 냄새가, 어른에게는 지린내가, 죽음을 앞둔 노인에게는 죽음의 냄새가 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칼이나 낫으로 제거 하고 타인의 것으로 이식할 수는 없다. 그건 죽음을 앞둔 노인이 어린아이의 피를 원하고, 중년의 부인이 소녀의 피부를 원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인간의 소리와 냄새는 ‘기억’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말하자면 기억은 시간과 공간이라는 바다속에서 추억과 경험이라는 파도를 안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희미한 또는 강렬한 추억이나 경험이 없다면, 그건 기억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다. 생물학적 으로 볼때, 인간이라는 동물은 기억을 가지고 살아가는데 그건 1.4킬로그램의 고기덩어리 즉 뇌가 머리 속에 들어있기 때문이다. 기억은 대부분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속에서 형성된다. 그것들이 이리저리 엉켜 추억이 되기도 하고 원수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여주인공 돌로레스는 아침에 눈을 뜨면 어제의 기억이 없다. 자신을  설계한 창조자가 그렇게 셋팅한 것이다. 돌로레스. 갈색의 눈썹아래 고양이같은 두 눈을 살며시 뜨고 허공을 잠시 응시하면 오늘의 새로운 하루가 시작된다. 어제의 모든 기억은 없다. 기억을 잃어버린 존재다. 기억이 없다는 거, 그건 고통, 상처, 즐거움, 아픔이 없다는 거 아닌가? 그럼 좋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지만 동시에 기억없이 과연  ‘사랑’이라는 걸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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