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R 멀미의 주된 원인으로 이용자의 움직임이 헤드셋의 영상정보에 제때 반영되지 못하는 지연(latency) 현상이 지목된다. 이를테면, 이용자가 고개를 왼쪽으로 돌렸는데 헤드셋이 왼쪽의 영상정보를 때맞춰 보여주지 못한다면, 인지부조화로 인해 이용자에게 멀미를 유발하기 쉽다. 또한, 콘텐츠에서 카메라의 움직임이 너무 빠르거나 움직임의 가속 내지 감속이 갑자기 일어나는 것 역시 멀미의 원인이 될 수 있다.
VR 멀미에 대한 대응책으로, 이용자의 움직임을 감지하는 정확도를 높이고 지연 현상을 줄이는 것이 필요하다. 러닝머신처럼 일정한 공간 내에서 이용자의 움직임을 가능하게 하는 트레드밀(treadmill)을 이용해, 헤드셋의 영상정보와 몸의 물리적 움직임을 연동시킬 수도 있다. 위의 기술적 접근과 다른 층위에서, 인간의 인지체계를 고려한 스토리텔링을 통해 우회로를 찾는 전략 역시 가능하다. <비욘드 더 스카이(Beyond the Sky)>(2015)는 스토리텔링의 층위에서 VR 멀미에 대한 하나의 해법을 보여준다.
이용자는 이 작품에서 깃털이 화려한 새를 타고 하늘을 나는 체험을 하게 된다. 앞서 소개한 <펄(Pearl)>(2016)은 이용자가 자동차 안에 자리 잡은 경우였다. 이용자를 새나 차와 같은 ‘탈 것’에 태우면 이용자의 시선은 자유로울지라도 원격현전한 위치가 고정된다. 이용자는 ‘탈 것’과 함께 이동한다는 안정감을 가지게 되므로 멀미를 경험할 확률이 상대적으로 줄어든다. VR 화면 내에 운전대, 창틀 등 고정된 물건이 있으면 멀미 경감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도 있다.
기술적 조건이 반드시 기술적으로 극복되는 것은 아니다. 각종 예술형식에서 당대의 물질적 한계가 작품의 내용적 층위에서 창조적으로 극복된 사례는 손으로 꼽을 수 없이 많다. 알프레드 히치콕(Alfred Hitchcock) 감독은 <로프(Rope)>(1948)를 만들며 장면 전환을 피하고 상영 시간과 극중 시간을 일치시키고자 했다. 그러나 디지털 카메라가 있을 리 없던 시절이다. 영화를 찍다가 필름이 다 돌아가면 필름 롤을 교체해야 했으므로, 한 쇼트의 길이는 당시 필름 롤의 분량인 10분을 넘어설 수 없었다. 히치콕은 여러 기발한 ‘눈속임’을 통해 80분짜리 영화를 완성해낸다(영화를 직접 보며 필름교체 시점을 가늠해보시길 권한다). 물질적 한계가 장애물이 아니라 창조적 여백으로 전환된 사례이다.
VR 콘텐츠 대중화의 초창기인 현시점에서, VR 매체의 기술적 조건이 스토리텔링을 통해 어떻게 극복되는지는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가 아닐 수 없다. VR 멀미에 대한 의학적 해결책을 덧붙이자면, 멀미약을 먹거나 ‘키미테’를 붙이는 것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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