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으로서 가장 슬픈 일은 병이나 빈곤이 아니다.

자신이 이 세상에서 아무 소용없는 인간이라고 체념하는 일이다.”

     <마더 테레사, 넘치는 사랑>

아리 에스터(Ari Aster)감독의 영화 <유전>(Hereditary, 2018)은 가족의 악마적인 유전성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보여준다. 가족이기에 피할 수 없는 운명! 주인공 ‘애니’는 일주일 전 돌아가신 엄마의 유령이 집에 나타나는 것을 느끼고 불안해한다. 얼마 후, 애니가 엄마와 닮았다며 접근한 수상한 이웃 ‘조안’을 통해 엄마의 비밀을 발견하고, 자신이 엄마와 똑같은 유전성이 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의 딸(찰리)와 아들(피터)에게 죽은 엄마의 악마성이 계승되는 과정을 목격한다. 영화는 피할 수 없는 유전의 힘과 파괴력을 무섭게 보여주며 끝난다.

만일 피하고 싶은 가족의 유전성이 있다면? 미국 영화배우 안젤리나 졸리(Angelina Jolie)는  이렇게 했다. 그녀는 자신이 엄마 또는 할머니의 유전으로 인해 유방암에 걸릴 수 있는 확률이 높다는 것을 알고 유방암 유전자 제거 수술을했다. 해당부위의 유전자를 인위적으로 잘라 버린 것이다. 수술 후 졸리는 <New York Time>(05.14. 2013)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번 수술을 받고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87%에서 5% 이하로 줄어들었다.”

그럼, 졸리는 어떻게 유전성 제거 수술을 할 수 있었을까? 유전자 가위 덕분이다. 유전자 가위는 세포 속 유전자 중 일부를 골라내 잘라내거나 새로운 유전자를 대체할 수 있는 기술이다. 일명 크리스퍼(CRISPR)다. 신의 가위라 불리는 유전자편집(Genome Editing) 기술의 등장! 안젤리나 졸리의 수술 때문일까? 과학 저널 사이언스는 ‘2015년을 빛낸 과학성과’ 1위로 크리스퍼 가위를 꼽았다.

2017년 11월, 미국 하버드대 의대 조지 처치(George Church)교수와 바이오기업 이제너시스(eGenesis)의 루한 양 박사는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을 이용해 돼지 고유의 바이러스를 없앤 ‘복제돼지’를 만들었다고 발표했다. (아래의 사진 참조)  

<자료 출처: > 이제너시스(eGenesis)

사진속의 귀여운 돼지들을 만든 이유는 상상이 가능하다. 즉 바이러스를 없앤 돼지의 장기는 면역 거부 반응이 없어 사람에게도 이식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생명과학계의 스퍼슈타로 떠오는 크리스퍼! 슈퍼스타의 등장은 언제나 열렬한 지지층과 악플이 있게 마련이다. 크리스퍼를 둘러싼 윤리 논쟁은 이미 시작되었다. 논쟁은 중국 광둥성 중산(中山)대 황쥔주 박사팀이 인간 배아에서 유전자 가위를 활용해 빈혈 유전자를 제거했다고 2015년 발표하면서 촉발됐다. 미국 노벨상 수상자 데이비드 볼티모어(David Baltimore)와 폴 버그(Paul Berg) 박사는 월스트리트저널에서 “과학계가 기술과 윤리적 차원에서 우리 행동의 의미를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지금은 배아 속 유전자를 편집하기 전에 잠시 멈춰서 생각해야 할 시간”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유전자 가위 연구 확산의 도미노를 막진 못했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둘러싼 특허전쟁도 확대되고 있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특허에 따른 잠재적 가치가 수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현재 유전자 가위 세계 시장은 2014년 2억 달러(약 2254억원)로 추산된다. 전문가들은 유전자 가위 시장이 2022년 23억 달러(약 2조5921억원)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말하자면 돈이 되는 시장이다. 놀라운건 크리스퍼 가위 하나를 만드는 비용은 1만원 수준으로 저렴하다는 것이다. 사실 유전자 가위의 역사는 깊다. 1980년대 무렵 관련 연구가 처음으로 시작됐다. 1세대 징크핑거와 2세대 탈렌 유전자 가위 기술이 개발됐지만 비용이 높고 정확도가 낮아 주목받지 못했다. 3세대로 분류되는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는 2012년 처음으로 등장해 생명과학계 수퍼스타로 단숨에 떠올랐다. 정확도가 높고 비용이 저렴해서다. 크리스퍼 가위 하나를 만드는 비용은 1만원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이유로 관련 연구가 많이 이뤄졌고 발전 속도가 빨랐다.

“글로벌 크리스퍼시장 현황과 전망”이란 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 약 2억 달러에 불과 했으나 그 후 6년(2016-2022년)간 연평균 성장률 36.2%로 빠르게 성장하여 2022년에는 약 23억 달러의 시장이 형성되어 2014년에 비해 10배 이상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의 크리스퍼 시장도 2014년 600만 달러에서 2020년에는 7,000만 달러로 커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하지만 그 속도만큼 유전가 가위를 둘러싼 논쟁은 과학을 벗어나 생명윤리와 특허전쟁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생명윤리학회장을 지낸 전방욱 강릉원주대 교수(생물학)는 “유전자 가위의 등장 이후에 전에 없던 새로운 이슈들이 빠르고 폭넓게 등장하지만 이와 관련한 논의나 입법화는 뒤처진 형편”이라며 “특히 인간 생식세포 대상 연구, 유전자 드라이브, 유전자 편집 작물에 대한 관심과 논의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크리스퍼 의학을 연구하는 김형범 연세대 의대 교수는 “국내에서도 많은 연구실이 다양하고 폭넓은 연구를 할 수 있도록 연구 지원 정책이 강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겨레 2016년 7월20일치 ‘사이언스온’ 지면(22면) 참조)

2006년 <Time>지의 표지는 “GOD vs SCIENCE : 과학이 신의 영역에 침범 할 수 있나?”로 장식돼 있다. 여기서 앞서 말한 크리스퍼(CRISPR), 유전자 편집 기술의 실체가 등장한다. 세포에서 특정 유전자를 잘라내기도 하고 반대로 손상된 유전자를 없애고 정상 유전자로 갈아 끼우는 데 사용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인간의 생명공학이 어디까지 왔나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더 입이 벌어지는 것은 현재는 알약처럼 ‘먹는 크리스퍼’와 썬크림처럼 ‘바르는 크리스퍼’도 나왔다는 것이다. 병원에서 수술할 필요없이 집에서 먹거나 바르면 유전자 조작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영화 <유전>의 여주인공 애니가 이 사실을 알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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