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의 노예가 된 사람

매일 똑같은 길로만 다니는 사람

결코 일상을 바꾸지 않는 사람

위험을 무릅쓰고 옷 색깔을 바꾸지 않는 사람은

서서히 죽어가는 사람이다.

 

열정을 피하는 사람

흑백의 구분을 좋아하는 사람

여행을 하지 않는 사람, 책을 읽지 않는 사람

자기 안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지 않는 사람은

서서히 죽어가는 사람이다.

 

시작도 하기전에 포기하는 사람

알지 못하는 주제에 대해 묻지도 않고

아는 것에 대해 물어도 대답하지 않는 사람은

서서히 죽어가는 사람이다.

 

마샤 메데이로스의  <죽어가는 사람> 중에서

 

“저 선생님, 초원형 환경이 무엇인가요?” 3화에서 초원형 교육이 필요하다고 했더니 초등학생을 둔 지인(엄마)이 물어왔다. 이렇게 대답했다. 네. 그것은 별거 아닙니다. ‘야생의 공간에 풀어놓자’입니다. 예를 들면, 아이의 놀이와 활동에 시간제약을 두지 말라는 것이고, 가능하다면 아이가 성인이 되기전, 넓은 초원이나 사막을 보여주자는 것입니다. 초원과 사막을 본 아이와 개와 고양이만 본 아이는 차이가 있습니다. 야생의 세상을 보여주고 부족과 결핍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과 자연을 보여 주어야합니다. 그 속에서 아이는 비로소 자신의 눈에 들어온 풍경을 보고 ‘생각’이라는 것을 하게 됩니다.

몇년전 일반인을 대상으로 필자가 가이드를 하고 티베트 여행을 간 적이 있다. 예상밖으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 인원을 제한해야 했다. 검사, 여행가, 세무사, 주부, 공무원, 대학원생, 작가, 교사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참가했는데 공항에서 나를 놀라게 한건, 참가자 중에서 **은행의 어떤 과장님이 7세 아들과 아내를 데리고 나타난 것이다. 티베트 고원을 오르려면 건강한 어른들도 힘들어 하는데 어린아이를 데려 오다니? 그곳은 ‘관광’하러 가는 곳이 아닌데? 이 어린 아이가 잘 버틸 수 있을까?

걱정했던대로 티베트에 도착하자마자 아이는 힘들어했다. 엄혹한 자연과 바람에 낯설어했고 현지 음식은 코를 막아댔으며 밤새 잠도 못자는 듯 했다. 얼굴은 풍선처럼 부어올랐다. 하지만 그 아버지는 아이를 업거나 안아주지 않았다. 매정하게 매일 아들의 손을 잡고 티베트 고원을 올라갔다. 다행스럽게도 아이는 아버지와 함께 기어이 해발 3,700미터까지 올라왔다. 그리고 푸른 초원을 배경으로 아버지와 아들은 같이 사진을 찍었다. 헬쓱한 얼굴로 둘이 껴안고 v자를 그리며 웃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아이는 초원의 양과 야크가 신기하다고 했다.

그 아버지는 초원에서 버터차를 마시면서 말했다. “저는 이 아이에게 물질적 재산을 남겨주고 싶지 않습니다. 저와의 추억과 기억을 남겨주고 싶습니다. 내년에는 라오스를 갈 생각입니다. 나는 그때 그 아버지와 아들을 보면서 가족의 행복은 물질이 아니라 정신의 관계라는 것을 느꼈다.

아이는 정해진 텍스트가 아닌 ‘체험’과 ‘감수성’으로 키워야 한다. 아이의 다양한 경험과 기억은 훗날 창조와 상상력의 힘이 된다. 남과 다른 상상력은 아무런 기억과 경험이 없는 백지 상태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남들이 보는 책만 쫓아서 보는 사람은 다른 책을 전혀 생각 하지 못하듯이, 남들이 가는 곳만 뒤따라 다니는 사람은 다른 곳을 알지 못한다. 남들과 다른 생각을 하려면 남들이 보지 않는 책과 결핍된 공간을 찾아가야 한다. 그 속에서 움직이는 생명들의 바람소리와 공기 맛을 느껴야 한다. 창조와 상상력의 비밀은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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