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하는 미디어 지형과 공중파의 위기
KBS, MBC, SBS로 대표되는 공중파 방송사들은 유튜브와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플랫폼에 밀려 전례 없는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광고 시장은 이미 오래전 SNS와 디지털 플랫폼으로 급격히 이동했고, 젊은 세대는 TV 앞에 앉아 정해진 시간에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방식 자체를 낯설어합니다. 프로그램 포맷마저 1인 미디어에서 ‘차용’하는 사례가 늘었고, 한때 트렌드를 선도하던 공중파가 오히려 유튜버들의 콘텐츠 형식을 따라가는 역전 현상까지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생존 압박이 크다는 사정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수십 년간 미디어 생태계의 중심에 있던 거대 조직이 급변하는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고통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방식이 공영성과 신뢰라는 공중파의 가장 본질적인 자산을 정면으로 갉아먹고 있다는 점입니다. 단기적인 조회수 확보가 장기적인 브랜드 가치 훼손으로 이어지고 있는 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짜깁기’ 콘텐츠의 실태
공중파 유튜브 채널에는 [이슈], [라이브], [속보] 같은 태그를 단 영상들이 반복적으로 올라옵니다. 제목은 자극적이고 긴박하며, 마치 지금 당장 봐야 할 중대한 뉴스인 것처럼 시청자의 클릭을 유도합니다. 그러나 막상 클릭해보면 여러 기사를 이어 붙인 ‘짜깁기’인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하나의 일관된 취재 결과물이 아니라, 서로 다른 시점에 제작된 리포트들을 편의에 따라 조합한 영상인 것입니다.
심지어 6개월 전, 때로는 1년 이상 된 기사까지 섞여 있어 시청자가 정확한 시점을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영상 속 사건이 현재 진행형인지, 이미 종결된 과거의 일인지 구분이 모호해집니다. 정작 제목이 암시한 핵심 내용은 영상 끝부분에 가서야 겨우 등장하거나, 그마저도 알맹이 없이 흐릿하게 지나가버립니다. 시청자는 기대와 다른 내용에 실망하면서도, 이미 영상을 끝까지 시청해 플랫폼 알고리즘에 ‘좋은 콘텐츠’로 기록되는 아이러니가 발생합니다.

(이미지: 유튜브 화면 캡처)
다큐멘터리의 무분별한 재활용
문제는 뉴스 콘텐츠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다큐멘터리도 비슷한 양상을 보입니다. ‘추적 60분’, ‘PD수첩’ 같은 상징적인 탐사보도 프로그램이 5년, 10년 전 회차 그대로 유튜브에 업로드됩니다. 이 프로그램들은 한국 방송 저널리즘의 역사를 대표하는 유산이기에, 아카이빙 차원에서 공개하는 것 자체는 의미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것이 “아카이빙”이라는 명확한 표시와 충분한 맥락 제공 속에서 이뤄지는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썸네일은 현재 이슈와 연결될 법한 이미지로 교체되고, 제목 역시 최근 논쟁과 관련 있는 것처럼 재구성됩니다. 이렇게 되면 시청자는 최근 이슈를 다룬 최신 영상으로 착각하기 쉽습니다. 영상 정보란에 작은 글씨로 원방송일이 적혀 있다 해도, 대부분의 시청자는 이를 확인하지 않은 채 콘텐츠를 소비합니다.
오락과 시사, 다른 기준이 필요한 이유
오락 콘텐츠라면 ‘추억 소환’이라는 이유로 과거 영상을 재업로드해도 큰 문제가 아닐 수 있습니다. 10년 전 예능 프로그램을 다시 보며 향수를 느끼는 것은 해롭지 않은 즐거움입니다. 출연자들의 젊은 시절 모습을 보며 웃고, 그 시대의 유행을 회상하는 것은 순수한 오락의 영역입니다.
그러나 시사 콘텐츠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방송 당시와 현재의 법률, 정책, 사건 맥락은 크게 달라져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당시에는 합법이던 것이 지금은 불법이 되었을 수 있고, 그때 논쟁 중이던 정책이 이미 시행되어 결과가 나왔을 수도 있습니다. 보도 대상이었던 인물의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거나, 해당 사건에 대한 사법적 판단이 뒤집어졌을 수도 있습니다.
시점이 뒤섞인 영상은 이러한 변화를 반영하지 못한 채 시청자의 사실 판단을 흐리게 만듭니다. 더 나아가 시청자의 감정과 여론을 특정 방향으로 ‘유도’하는 효과까지 낼 수 있습니다. 이미 해결된 문제에 대해 불필요한 분노를 촉발하거나, 변화된 상황을 무시한 채 과거의 프레임으로 현재를 해석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의도와 무관한 구조적 문제
이때 문제의 핵심은 고의냐 아니냐가 아닙니다. 공중파 담당자들이 악의를 가지고 시청자를 속이려 했는지 여부는 부차적인 문제입니다. 핵심은 결과에 있습니다. 이러한 관행은 결과적으로 공론장의 정보 품질을 떨어뜨리고, 시사 콘텐츠가 마땅히 지켜야 할 기본 규범을 훼손합니다. 그 기본 규범이란 시점의 명확한 표기, 충분한 맥락 제공, 그리고 시청자가 정보를 검증할 수 있는 가능성의 보장입니다.
저널리즘의 신뢰는 하루아침에 쌓이지 않지만,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입니다. 한 번 “공중파도 결국 조회수 장사”라는 인식이 퍼지면, 그것을 되돌리는 데는 몇 배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신뢰 하락의 피해는 해당 방송사만 입는 것이 아니라, 언론 전체에 대한 불신으로 확산됩니다.
비판의 자격을 스스로 소진하는 역설
공중파는 그동안 유튜버들의 가짜뉴스, 선정성, ‘사이버 렉카’식 편집을 강도 높게 비판해 왔습니다. 검증 없이 자극적인 제목으로 클릭을 유도하고, 사실과 의견을 뒤섞어 여론을 호도하며, 피해자의 고통을 콘텐츠로 소비하는 1인 미디어의 행태를 고발하는 기획 보도를 여러 차례 내보냈습니다. 이러한 비판은 정당했고, 미디어 리터러시 향상에 기여한 측면도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공중파가 생존이라는 명분 아래 비슷한 기법을 활용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더구나 더 정교한 포장으로, 더 높은 제작비를 들여, 더 세련된 방식으로 같은 수법을 쓴다면? 그것은 비판의 자격을 스스로 소진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더 잘 만든 낚시 콘텐츠를 제작할 뿐”이라는 변명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공영방송의 힘은 “더 큰 스피커”가 아니라 “더 높은 기준”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규모나 역사가 아니라, 스스로에게 부과하는 엄격한 윤리적 기준이 공중파의 존재 이유입니다.
시청자는 알고 있다
시청자는 바보가 아닙니다. 처음 한두 번은 자극적인 제목에 속아 클릭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복적으로 기대에 못 미치는 콘텐츠를 경험하면, 시청자들은 학습합니다. “아, 이 채널은 제목만 거창하고 내용은 없구나.” 이런 인식이 한 번 형성되면, 정말 중요한 뉴스가 있을 때도 시청자들은 외면합니다. 양치기 소년의 교훈은 미디어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자극적인 썸네일, 철 지난 영상의 재포장, 맥락을 삭제한 짜깁기로 연명하는 방식은 결국 독이 되어 돌아옵니다. 조회수 몇 푼, 광고 수익 약간을 위해 신뢰라는 자산을 깎아 먹는 선택입니다. 그리고 신뢰는 한 번 잃으면 회복하기가 극도로 어렵습니다.
저널리즘의 본질로 돌아가야 할 때
지금 공중파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생존 전략이 아니라, 저널리즘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입니다. 저널리즘은 왜 존재하는가. 그것은 시민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여 민주주의가 작동할 수 있게 하기 위함입니다. 권력을 감시하고, 사회의 부조리를 드러내며, 공동체가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판단의 근거를 제공하는 것. 이것이 저널리즘이 사회로부터 특별한 지위와 보호를 부여받는 이유입니다.
플랫폼이 바뀌었다고 해서 이 본질이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유튜브에서 콘텐츠를 배포한다고 해서 ‘사실의 정확한 전달’이라는 원칙을 포기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가짜뉴스와 선정주의가 범람하는 디지털 환경에서, 검증된 정보를 제공하는 저널리즘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졌습니다. 공중파가 이 역할을 방기하고 조회수 경쟁에 뛰어든다면, 그것은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공중파는 지금이라도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우리는 왜 저널리즘을 하는가. 그 답을 다시 찾는 것, 그리고 그 답에 맞게 행동하는 것. 이것이 진정한 생존의 길입니다. 알고리즘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저널리즘의 원칙을 디지털 환경에 맞게 구현하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시민들은 여전히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그 갈망에 응답하는 것이 공중파가 가야 할 길입니다. 조회수를 좇아 신뢰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신뢰를 지켜 조회수를 얻는 것. 저널리즘의 본질을 회복하라는 요구는 이상주의적 호소가 아니라, 냉정한 생존의 조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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