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이 SNS의 해악을 다룬 넷플릭스의 다큐멘터리 ‘소셜 딜레마’를 반박하는 입장문을 냈다. SNS가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은 다루지 않고 선정주의에 매몰되었다는 주장이다. 넷플릭스도 이 다큐를 누구에게 추천할 지 결정할 때 알고리즘을 사용하지 않느냐며 알고리즘 문제에 항변한다. 페이스북의 입장문은 다큐의 파급력이 크다는 반증이다.
소셜 딜레마는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 유튜브 등에서 일했던 관계자들의 증언과 SNS에 빠져든 청소년을 드라마처럼 엮어 SNS의 중독성을 고발한다. 소셜 미디어 자체가 끊임없는 자극을 유발하도록 설계되었고, 극단적 사고에 빠지게 만들어 결국 민주주의를 파괴시킨다고 설명한다. 사용자들이 자발적으로 던져주는 데이터는 소셜 미디어 회사들이 막대한 부를 축척하는 원천이 된다.
넷플릭스 홈페이지 캡처
전 구글 디자인 윤리학자 트리스탄 해리스(Tristan Harris)는 다큐에서 소셜미디어는 인간에게 사용되게 기다리는 도구가 아니라면서 인간 심리를 이용해 특정한 목적, 즉 수익을 얻기 위한 수단이라고 말한다. 트위터에서 가짜뉴스가 진찌뉴스보다 전파 속도가 6배 빠르다는 MIT 연구 결과를 인용하며 SNS가 거짓 정보에 편향된 시스템이 되게 했다고 강조한다.
사실 다큐의 내용이 새로울 것은 없다. 그동안 많은 전문가들이 우려하고 경고했던 것들이다. 이것을 전직 SNS 업계 종사자들이 직접 언급하고, 여기에 드라마틱한 내용을 섞어서 충격적으로 다가오게 만들었을 뿐이다. 해악을 집중적으로 부각시킨 만큼 SNS의 선한 영향력 같은 양면성은 다루지 않는다. 어려운 이웃을 돕는 디지털 모닥불 역할이나 중국의 소수민족 탄압을 외부에 알리는 통로, 민주주의를 외친 홍콩 시민들의 연대 같은 민주주의에 기여하는 SNS의 역할은 보이지 않는다.
소셜 딜레마는 소셜 미디어 해악의 해법을 뚜렷이 제시하지는 않는다. 알람 설정을 끄거나 스마트폰을 침실에 들이지 않고, 청소년의 SNS 사용을 규제할 것 등을 제시할 뿐이다. 쉬운 것 같지만 사실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SNS 스크린 너머에는 수많은 첨단 기술 인력과 인공지능이 뭉쳐 사용자들을 유혹한다. 여간한 노력으로는 이 재미와 자극을 뿌리치기 어렵다. 무력한 개인이 당해낼 재간이 없는 것이다.
페이스북 입장문 캡처
그렇다면 SNS 회사들이 달라질까? 페이스북이 ‘좋아요’를 삭제하고, 유투브가 자동 추천 알고리즘을 버릴 수 있을까? 아마 사업을 접으라는 뜻으로 들릴 것이다. 물론 악성 댓글 때문에 국내 양대 포털이 연예 뉴스와 스포츠 뉴스의 댓글을 폐지한 사례도 있지만 SNS의 핵심 기능 포기는 기대하기 어렵다. 가짜뉴스와 극단의 주장을 걸러내는 기능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계속되겠지만 SNS의 원천적 중독성은 앞으로 여전할 것이다.
담배의 해악과 중독성을 알리기 위해 담뱃값에 끔찍한 사진과 그림으로 경고하지만 이게 흡연을 획기적으로 줄이지는 못했다. 디지털 사회에서 기술의 양면성은 더욱 뚜렷해졌다. 해악성을 선명하게 부각하는 것만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렵다. 소셜 미디어의 중독성도 다르지 않다. 소셜 딜레마의 딜레마다.
기술의 해악, SNS의 해악을 줄이려는 안전 장치는 더 촘촘하게 마련해야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인간의 노력, 사용자의 노력이다. 콘텐츠 선별력, 균형 감각, 자제력, 상대방에 대한 배려 등 인간 고유의 역량에 기대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다. 미디어 리터러시는 선택이 아닌 필수인 시대에 살고 있다. 이게 SNS 뿐 아니라 디지털 사회를 살아가는 지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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